“YS 같았으면 이미 잘리고도 남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구실을 한 어떤 이의 얘기다. 김영삼 대통령 같았으면 증거 조작 논란이 시작됐을 초기 이미 국정원장을 교체했을 것이며, 이 정도로 파장이 커지면 검찰총장 교체까지도 검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너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조직 전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수장을 바꿔 조직을 추스르게 해야 한다는 게 YS의 인사 스타일이었다. 물론 아들에 관한 한은 예외였고 그 때문에 망가졌지만.

그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에서 답답할 정도로 굼뜨다.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이미 보수 언론이 일제히 ‘경질론’을 언급할 정도로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검찰에서도 잘못하다가 검찰총장은 물론 검찰 조직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국정원과 선을 긋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손에 쥔 건 없지만 검찰의 국정원 압수 수색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원장 재임 1년 동안 두 번이나 국정원이 수색 대상이 되었다는 건 빼도 박도 못할 경질 사유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엄정 수사’ 한마디만 해놓고 또다시 입을 닫았다.

최근에 만난 한 청와대 인사는 “박 대통령의 인사가 왜 이리 더디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정부의 인사 파일을 점검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제 정리가 됐으니 앞으로는 빨라질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각의 관측처럼 ‘후임을 고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이리 오래 걸리는 건 아닐 터,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정녕 남재준 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 고르는 데 심각한 ‘결정 장애’가 있거나.

공교롭게도 YS 스타일은 야권에서도 입길에 올랐다.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한 직후 측근인 송호창 의원이 “맨손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각오로 정치개혁을 이뤄 다음 대선 때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윤여준 새정연 의장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정당에 들어간 걸 표현할 때나 맞는 것이고 이번 합당은 사슴이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이라고 비꼰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그렇게 탄생한 민자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따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YS 시절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윤여준 의장으로서는 가뜩이나 언짢은 상황에서 안 위원장이 ‘대권 낚은 호랑이’로 비유되는 게 못마땅했을 법하다.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며칠 뒤 “호랑이 굴에 들어가보니 호랑이가 없더라”고 화답했으니, 정치판이 난데없는 호랑이 선문답 장으로 변했다. 이런 정치판을 지켜보는 YS의 생각이 불현듯 궁금하기도.

기자명 이숙이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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