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는 “5공을 넘어 박통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탄식이 연일 쏟아진다. 일부 네티즌은 포털사이트에 올린 광우병 관련 글이 삭제되는 등 포털에서 여론이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정권이 바뀌고 인터넷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진다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대통령 명예훼손’ 운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비판했다. 시사문화평론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입을 다 막고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대형 포털을 장악해 여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염려도 제기된다.

사건의 발단은 방통위가 인터넷 포털 다음 측에 광우병 관련 댓글을 삭제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면서 시작되었다. 방통위는 말을 바꾸면서까지 포털에 댓글 삭제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의혹만 더 키웠다. 공교롭게도 방통위는 인터넷 실명제 전면 확대 방침도 잇달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포털 등 뉴스를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를 언론중재법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경찰은 광우병 등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린 네티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비슷한 시기에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독과점 지위를 남용하고 자회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2억2700만원을 부과했다. 포털을 둘러싼 일련의 정부 조처와 방침이 쏟아지면서 포털을 장악해 여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점점 커졌다(딸린 기사 참조). “이명박 정부의 신종 언론 통제 시나리오”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명박 정부의 ‘신종 언론 통제 시나리오’가 정말 진행되는 것일까. 물론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청와대 방송통신비서실 황철정 국장은 “인터넷 포털 관련 조처나 행위는 각 부처에서 판단할 일이다. 정부가 조율하고 관리할 생각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라고 잘라 말했다. 황 국장은 이어 “오죽 답답했으면 (방통위가) 전화했겠나. 통제가 가능한 시대가 아니라는 걸 다들 안다”라고 덧붙였다. 포털 업계에서도 ‘글쎄’라는 반응이다. 한 포털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특정한 압력을 받은 바 없다. 포털을 장악하려 해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포털 관련 법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포털 업체에 전화를 걸어 의견을 타진하는 상황인데, 쉽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네티즌의 의구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네티즌은 포털에서 여론이 조작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포털사이트 광고 차단운동까지 벌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포털 장악 가능성뿐 아니라 정부와 포털의 유착 가능성까지 의심하는 것이다. 네티즌이 정부와 포털의 유착 가능성을 의심하는 데는 여러 배경이 있다.

우선은 포털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한국 인터넷은 포털 의존도가 유난히 심해 인터넷 여론이 포털에서 주로 형성된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와 블로그, 토론 서비스 등이 여론의 기폭제 노릇을 한다. 정부가 광우병 괴담을 비롯한 인터넷 괴담의 진원지를 포털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포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론을 돌리거나 조작하기 쉽다는 데 있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TV 뉴스 다음으로 애용된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이 최근 발간한 ‘뉴미디어 창의계층 육성을 위한 뉴미디어 이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포털 뉴스는 TV 뉴스 다음으로 선호되는 뉴스 미디어다. 시사?정치?경제?사회 뉴스 부문에서 가장 선호하는 뉴스 미디어를 고르라는 설문에 응답자들은 TV 뉴스(707명), 포털 뉴스(567명), 인터넷 신문(394명), 일간지(244명) 등의 순서로 답했다.

"'조, 중, 동, 네, 다'가 한 패가 되면 최악"

주요 포털 사이트는 기존 매체가 생산한 기사를 홈페이지 메인 화면이나 뉴스 섹션에 편집하여 배치하는 뉴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경우 국내 100여 언론사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고 뉴스를 서비스한다. 어떤 뉴스를 메인에 배치하고 어떤 순서로 뉴스를 노출시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포털의 권한이다. 국민 대다수는 포털이 골라준 뉴스를 보고 거기에 댓글 형태로 의견을 개진한다. 그래서 포털이 맘만 먹으면 정보를 축소하거나 확대하여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 사이트 미디어몹을 운영하는 이승철 대표는 “광우병과 관련해 포털이 조선?중앙?동아 기사만 메인 화면에 깔아놓는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국민 대다수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포털은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뉴스를 편집하는 기능을 통해 기존 언론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셈이다.

현재 국내 포털 뉴스 시장은 네이버와 다음의 점유율이 70%를 넘는다. 한두 개 포털이 정보 유통을 왜곡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작심하고 네이버와 다음만 한 패로 끌어들이면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기란 너무도 쉬운 구조다. 그래서 네티즌이 보는 최악의 언론 통제 시나리오는 ‘조중동네다’가 한 패가 되는 상황이다.

양대 포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의혹을 사는 것은 네이버다. 네이버의 영향력은 2위 업체인 다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막강하다. 언론계에서는 네이버 메인 화면 노출 여부에 따라 기사의 특종 여부가 나뉘고, 네이버 뉴스 코너에 노출되는 것을 수익모델로 삼은 인터넷 언론사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기업 규모에서도 양대 포털의 격차는 비교가 안 된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중국에 진출한 렌종, 일본의 NHN 재팬, 미국의 NHN USA 등 해외법인 매출까지 합하면 1조 원이 넘는 명실상부한 ‘검색 포털 1위’ 기업이다. 여기에 비해 다음의 매출액은 2000억원이 조금 넘는다. 검색 포털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보면 ‘네이버:다음:기타 포털=7:2:1’의 구도다. “한국 인터넷은 네이버 공화국” “네이버는 포털 업계의 공룡’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네이버의 영향력은 인터넷 산업과 뉴스뿐 아니라 영화?출판 시장까지 쥐락펴락할 정도다. 영화판에서는 배급처를 잡는 것보다 네이버 영화 광고 스케줄을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고, 출판 시장에서 역시 네이버의 출판 서비스 여부에 따라 매출이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네이버는 이미 MB 쪽으로 기울었다?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이버가 특정한 정치 편향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될까.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네이버는 이미 이명박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BBK 논란이 한창인데도 관련 뉴스가 메인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고, 광우병 관련 뉴스 역시 다른 포털과 달리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대선 당시에는 공정한 서비스를 위해 뉴스 기사를 정당 후보별로 배치하고 댓글을 차단시킨 것이었다. 그런 편집 원칙 아래서 BBK 뉴스가 메인 화면에 노출되지 않은 것뿐이다. 광우병 관련 기사가 적게 노출됐다는 것도 오해다”라고 주장한다.

네이버 측에서는 네이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당 부분 왜곡된 정보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1등 기업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고민이 전혀 없지는 않다. 네이버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한 인사는 “네이버 내부에서도 친정부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한다. 대선 거치며 타격이 컸다고 평가했다. 뉴스팀에서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논란거리를 메인에 올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사전에 잡았는데 하필 한쪽에서만 논란이 터져버렸다며 걱정했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우리는 언론이고 싶지도 않고 언론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 우리의 주력은 검색과 게임이며, 뉴스는 유통만 할 뿐이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 우리가 눈치 보는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이용자이기 때문에 이용자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블로거와 네티즌은 ‘네이버가 정치나 시사 이슈와 관련해 너무 몸을 사리거나 알아서 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민경배 교수는 “네이버가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뉴스 편집의 알고리듬을 공개해야 한다. 네이버는 지금까지 뉴스 편집 알고리듬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편의적 해석만 내놓았기 때문에 네티즌의 비난을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광우병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뉴스 편집을 기계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치 편향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다 음란물 관련 이슈가 발생하면 뉴스팀의 필터링 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해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의 뉴스 편집 과정은 기계적이지만은 않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네이버가 ‘친이명박 포털’로 찍혔다고 한다면 다음은 ‘친노무현 포털’이자 ‘좌익 포털’로 의심 받는다. 다음은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의 편에 서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근태 의원의 ‘개성 춤판 사진’을 3시간 만에 내리고 노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사건이 터졌을 때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 등이다. 광우병 파문이 퍼지면서부터는 일부 보수 논객으로부터 ‘좌익 포털’이라는 비난을 산다. 지난 정부 때부터 ‘포털과 정권의 유착설’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미디어 평론가 변희재씨와 그가 소속해 있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가 다음을 좌익 포털로 몰아붙이는 대표 그룹이다. 이들은 최근 ‘광우병 괴담 부추기는 포털의 편향성을 우려한다’는 성명서 등을 통해 “미국 쇠고기 논란은 거대 포털사가 특정 정치 세력을 대변하는 익명의 블로거 글을 메인 화면에 배치하며 여론을 주도한” 것으로 규정했다.

'좌익 포털'로 찍힌 다음이 MB 눈치 본다?

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또 다른 네티즌은 다음마저 이명박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아고라에서 이명박 탄핵 서명에 참가한 이가 100만명을 넘어섰는데도 이명박 탄핵 청원을 베스트 코너에 넣거나 ‘하이라이트’를 준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역시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여론을 주도하거나 할 수도 없다고 강변한다. 다음 관계자는 “아고라에서 이명박 탄핵 청원에 ‘하이라이트’를 주지 않은 것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용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황우석 때와 마찬가지로 이 사안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고, 네티즌이 흥분되어 있다는 판단을 했다. 같은 기준 때문에 여성부 폐지 서명이나 MBC 폐지 서명에도 하이라이트를 준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은 다음이 KT에 이어 차세대 미디어 사업인 IPTV의 시범사업자 허가권을 따낸 터라 앞으로 정부, 특히 방통위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런 행보를 보이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물론 정부와 포털의 유착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도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창민 사무국장은 “포털은 뉴스를 유통하는 곳에 불과한데 진보-보수를 가를 수 있나? 오히려 포털은 곱사등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괴담의 온상지이자 선동 집단으로 보는데 이용자들은 정부 눈치 보느라 댓글 지운다고 비난한다. 포털도 기업이기 때문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용자다. 이용자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은 하기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정치 논리로 비즈니스 논리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포털 업계도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한 포털 관계자는 “정치 논리를 앞세운 말도 안 되는 법안만 아니라면 우리도 포털 관련 정책이나 법이 제정되는 것을 환영한다. 다만 정치 논리에 따라 자의적 규제가 생기는 상황만 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털어놓았다. 민경배 교수는 정부가 포털을 길들이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네티즌에게만 책임을 묻는 각종 규제 사항을 포털에게까지 책임을 묻게 된다면 포털 역시 정부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민경배 교수는 “언론중재법에서 포털의 책임 범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규제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저작권법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저작권 책임을 ‘펌질’하는 이용자에게만 묻지만 포털이 그 콘텐츠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이유로 포털에 책임을 묻는 쪽으로 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 그러면 포털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미디어몹 이승철 대표도 “정부 처지에서 보면 포털을 길들이기는 너무 쉽다. 포털도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침 한 번만 하면 설설 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형 포털을 장악하거나 대형 포털과 정부가 유착해 여론을 조작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형 포털 중심의 인터넷 시장 구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안은주/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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