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20일 청와대에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업무보고 내용에는 공공기관의 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해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자격기준 소위원회’를 만들어 임원의 자격 요건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나 그리스 등은 5년 이상 관련 업무경력 등 계량화된 임원 자격기준을  보유하고 있다’며 해외 사례도 보고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인사 기준으로 ‘5년 이상 관련 업무 종사자’라는 자격 기준을 법제화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날, 청와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곳이나 다름없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친박근혜 인사로 분류되는 이상권 전 의원을 임명했다.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고 보고받은 날, 낙하산을 내려보낸 것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공사 임원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15대 사장에 오른 이 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인천총괄본부장을 맡았다. 당시 인천 지역 11명 당협위원장(옛 지구당) 가운데 3명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는데,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경재 의원과 친박 실세로 떠오른 윤상현 위원장(현재 원내 부대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이 사장이다. 2010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출했다가 19대 총선 때 낙선했다. 이 사장의 연봉은 1억2000만원(기본급)이다.

ⓒ연합뉴스2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업무보고(사진)에서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지난해 11월14일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라며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년차 국정 과제의 하나로 공기업 개혁을 내걸었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방만 경영의 원인으로 꼽히는 낙하산을 투하하는 ‘유체이탈 인사 스타일’이 계속되고 있다. 보수 언론조차 공기업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쓴소리를 낼 정도다.

〈시사IN〉은 박근혜 정부 취임 1년을 맞아 공공기관 인사를 분석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295개 공공기관의 임원 현황을 조사했다. 기관장 295명을 비롯해 감사 285명, 비상임이사 2119명, 상임이사 385명, 당연직 이사 430명 등 총 3084명이다.

먼저 기관장·감사·이사 등 공공기관 임원이 임명되는 추이를 살펴보았다. 인사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MB표 낙하산’들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자진 사퇴하거나 임기가 만료된 경우, 그리고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따라 책임을 물어 물갈이를 한 경우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추이에 변수가 있었다. 지난해 6월 불거진 관치 낙하산 파문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낙하산 근절을 약속했다. 지난해 12월25일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내는데, 이는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임기 말 낙하산을 내려보낸 이명박(MB) 정부에 대한 ‘경고’였다. 대통령직 인수위도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다. 국정 과제로 ‘낙하산 배제, 전문성 중시, 국민통합’이라는 공공기관장 인사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11일 첫 국무회의 때 낙하산 인사에 대한 복선을 깔았다. “공공기관에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노력해라.” 한 달 뒤 금융권 공기업인 산업은행 금융지주 회장에 인수위 출신인 홍기택 중앙대 교수가 내정되었다. 홍 교수는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대선 당시에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서강학파’로 불리는 거시금융 전문가인 그는 금융 실무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 자신도 “인수위에서 일했으니 낙하산은 맞다. 문제는 성공하는 낙하산이냐, 실패하는 낙하산이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발 낙하산 1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청와대는 주춤했다.


그 틈을 관료들이 파고들었다. 지난해 5월 말부터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김근수 여신전문금융협회 회장,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등 금융 공공기관에 재무 관료 출신들이 채워지면서 모피아(경제 부처 관료 출신 인사를 지칭,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낙하산 논란이 재연됐다. 또 인천국제공항 사장에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에 이재영 전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이,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에 변종립 전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정책관이 잇달아 내정되면서 부처 낙하산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지난해 6월17일 공기업 인사 중단을 지시했다. 관치 낙하산을 막기 위해 민간인 전문가를 후보군에 포함시켜 6배수로 검증하겠다는 새로운 명분을 내세웠다. 공공기관 인사는 3개월 가까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 뒤 민간인 전문가가 누구를 뜻하는지, 기관장 내정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한국도로공사는 지원자 13명 가운데 4명을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이견을 냈다. 후보 4명 모두 국토부(2명)·도로공사(2명) 출신이라 민간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도로공사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마음에 들어하는 인사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 돌았다. 재공모 끝에 지난해 12월11일 친박계 중진인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이 사장 자리에 올랐다. 김 사장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유세지원단장을 맡았다. 한국도로공사 사장 연봉은 기본급만 1억600만원, 성과급이 보태지면 2억6200만원(2012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도로공사는 부채 과다 기관에 포함된 중점관리 대상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 이후 ‘친박 낙하산’ 늘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낙하산은 또 다른 낙하산을 낳았다. 김 사장 취임 한 달 뒤 새누리당 부대변인 출신인 김원덕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취임했다. 그를 추천한 대주주가 바로 한국도로공사였다. ‘관치 낙하산’이 정치인이나 대선 공신 등 이른바 ‘친박 낙하산’으로 바뀐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만 추려보니, 295곳 가운데 121명이었다(오른쪽 도표 참조). 새누리당 출신을 비롯해 박근혜 캠프, 국가미래연구원, 인수위원회 출신이 32명이었다. 관료 출신은 45명, 공기업 내부 인사와 유관기관 인사가 42명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출신 등 친박 낙하산이 늘기 시작한 때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이 바뀐 시기와 일치했다. 지난해 8월3일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는 비서실장에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는 김기춘 전 의원이 임명된 뒤, 친박 낙하산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2006년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해온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한국마사회 회장에 올랐다. 한국마사회 역시 기재부가 방만 경영 중점관리 기관으로 꼽은 곳이다.

공공기관 사장 자리는 때로 ‘교통정리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오른 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실시된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공천에서 서청원 의원에게 밀렸다. 지난해 10월3일 당 공천심사위원회가 서 의원을 공천하자, 무소속 출마까지 불사하겠다던 그는 순순히 승복했다. 그때부터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말이 돌았다. 재·보선 사흘 뒤 사장 공모가 진행 중이던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김 전 의원 내정설이 구체적으로 돌았고, 그는 12월11일 사장에 내정되었다.

기관장 말고도 감사·이사 자리에 친박 낙하산이 잇따라 내려왔다. 지난 2월17일 한국전력공사는 이강희·조전혁 새누리당 전 의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강희·조전혁 전 의원도 친박계로 분류된다. 이에 앞서 한전은 지난해 12월19일 상임감사로 안홍렬 변호사를 임명했다. 안 변호사 역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경선후보 서울선거대책본부장 등을 지낸 바 있다. 그는 2015년 12월26일까지 임기가 보장되며, 성과급을 포함하면 연봉은 1억4000만원가량이다. 한전은 55조원의 빚을 진, 박근혜 정부가 꼽은 대표적인 경영 부실 공기업이다.

기재부가 낙하산 근절을 보고한 사흘 뒤인 2월23일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새누리당 소속 홍표근씨를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홍 감사는 지난 대선 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여성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자유선진당 출신으로 광물자원공사와 관련된 경력은 전무하다. 앞서 1월에는 대한석탄공사 감사에 황천모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이 선임됐다. 대한석탄공사는 현재 자본잠식 상태다. 예금보험공사는 문제풍 새누리당 충남 서산·태안선거대책위원장을 감사로 임명했다. 예금보험공사가 감사를 공모하며 내세운 자격 요건은 ‘예금보험 업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었다. 하지만 문 감사는 국회사무처 국제국장,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전문위원, 국회 방송통신특별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냈을 뿐, 금융 관련 경력은 역시 전무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정송학 새누리당 서울 광진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상임감사로, 기술보증기금은 박대해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상임감사로 각각 선임했다. 박대해 감사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후보로 당선된 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이 밖에도 한나라당 대표실 출신 조청래 전 청와대 행정관은 코레일관광개발 감사로, 윤태진 새누리당 인천 남동갑 당협위원장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로, 류중하 전 새누리당 부대변인은 근로복지공단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방만 경영의 원인으로 판명되기도

공기업 감사는 경영진의 방만 경영을 감시해야 할 중요한 자리다. 전문 지식이나 경력이 필요하지만, 낙하산 감사는 대부분 관련 경력이 거의 없었다. 기관장에 비해 감사는 상대적으로 언론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눈치 보지 않고 낙하산을 투하한 것이다. 보수 언론까지 가세해 ‘친박 낙하산’을 비판하자 현오석 부총리는 “낙하산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MB 정부를 되돌아보면 낙하산 인사의 위험성은 이미 입증되고도 남았다.

지난해 감사원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9개 주요 공기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담은 ‘공기업 재무 및 사업구조 관리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재 공공기관 부채가 500조원 가까이 되면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203조원에 비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런데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부채 증가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무리한 정부 정책 사업이다. 이를테면 보금자리주택, 4대강 사업, 경인아라뱃길 사업, 인천공항철도 지분 인수 등 사업 타당성 없이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인 정책이 공기업 부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 것이다. 공기업이 정부 정책을 떠안아 추진하면서 부채가 급증한 셈이다. 이런 사업을 총대 메고 추진한 이들이 바로 이지송 토지주택공사 사장, 김건호 수자원공사 사장, 허준영·정창영 코레일 사장, 장석효 도로공사 사장 등 낙하산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방만 경영의 핵심 원인으로 이미 판명이 난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현재 기관장 23명을 비롯해 감사 62명, 상임이사 75명, 비상임이사 369명 등 모두 529명이 공석이다. 앞으로 6개월 안에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장만 50명이다. 본격적인 낙하산 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자명 고제규·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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