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회복이 왜 이리 더딜까. 최근까지의 가장 지배적인 설명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걸린 병이 덜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결국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병은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병인(病因)이 2008년 위기가 아니라 좀 더 깊은 곳에 있다면? 더 나아가서 저투자와 이에 따른 실업난이 자본주의 체제의 병이 아니라 ‘체질’이라면? 이런 주장을 요즘 미국의 전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가 펼치고 있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국가의 경제 개입 반대, 재정지출 축소, 금융규제 완화 등의 노선으로 ‘시장 근본주의자’라 불리던, 바로 그 사람이다.

서머스는 지난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영속적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이후에도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세계 유력지의 칼럼을 통해 민감한 반응들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영속적’이라는 형용사가 의미하는 바는, ‘경기침체’가 자본주의(혹은 시장경제)의 병이 아니라 체질, 즉 ‘정상적(normal)’인 상태라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스스로는 충분한 고용과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없는 ‘불구의 시스템’이라는 얘기니까! 이렇게 보면 국가의 경기부양 정책(재정지출, 통화량 팽창)은 ‘필요악’이 아니라 ‘필수 선(善)’이다.

ⓒEPA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국가의 경제 개입 반대, 재정지출 축소 등 ‘시장 근본주의자’로 불렸다.

그렇다면 영속적 경기침체론의 근거는 무엇일까. 서머스는 〈워싱턴 포스트〉(1월14일)와의 인터뷰에서 “실질이자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가 아니라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 줄곧 떨어져왔다”라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실질이자율’이란 무엇인가? 예컨대 당신이 1000만원을 연리 20%로 은행에 예금했다고 치자. 이 시점에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은 100만원이다.

즉, 당신은 스마트폰 10대에 해당하는 돈을 저축했다. 당신은 1년 뒤 원금과 이자를 합쳐 120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스마트폰 12대를 살 수 없다. 물가가 10% 올라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이 110만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당신이 살 수 있는 스마트폰은 11대(정확히는 10.9대)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받은 이자는 20%가 아니라 10%라는 뜻이다. 여기서 은행이 제시한 연리 20%가 ‘명목이자율’이라면 10%는 ‘실질이자율’이다. 이처럼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인상률을 뺀 수치다(실질이자율=명목이자율-물가인상률). 누구나 돈을 빌려주거나(저축) 빌릴 때(투자나 소비를 위해) 물가인상률을 염두에 두므로, 실질이자율이야말로 투자와 저축을 결정하는 진정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실질이자율의 하락은 실제 경제에서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자금 공급)은 많은데 돈을 빌리려는 사람(자금 수요)이 적을’ 때 나타난다.  돈이 투자나 소비가 아니라 저축으로 쌓이면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조적 이유로는 인구성장률 하락(인구가 늘어야 수요도 증가), 빈익빈 부익부(소비 성향이 높은 중산층 이하의 소득이 줄어들어 전체 수요가 하락) 등이 거론된다. 그나마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서 거품을 일으켰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고용이라도 가능했다는 것이 서머스의 견해다.

서머스는 〈파이낸셜 타임스〉(지난해 12월15일) 기고문에서 “미국의 실질이자율은 지난 5년 동안 마이너스 상태였다”라고 주장한다. ‘마이너스 실질이자율’은, 빌려주는(저축하는) 사람이 이자를 받기는커녕 빌리는(대출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상황이다. 저축하면 무조건 손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를 쓰며 저축할 정도로 ‘돈 쓰기(투자나 소비)’를 꺼린다. 그러니 영속적 경기침체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버블경제’를 정상 상태로 인정해야 한다”

서머스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실질이자율을 지금보다 더 낮추는 것이다. 보통 자본 측은 돈을 빌려서 투자한다. 이자율이 높을수록 투자비용이 커지고, 이자율이 낮을수록 투자비용은 작아진다. 지금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마이너스 실질이자율로 빌려서(즉, 빌리는 것 자체로 어느 정도 이익을 챙겨) 투자를 한다 해도 손해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이자율을 더 낮추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난점이 있다. 실질이자율을 떨어뜨리려면 명목이자율을 낮추거나 물가인상률을 높여야 한다(실질이자율=명목이자율-물가인상률). 그런데 이미 미국 정책당국의 명목이자율은 사실상 0%다. 더 낮출 수가 없다. 만약 명목이자율까지 0% 이하로 낮추면(은행이 예금에 대해 이자를 주기는커녕 보관료를 받겠다고 나서면) 사회적 패닉이 불가피할 것이다. 투기 붐을 유발해서 금융안정성을 해칠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물가인상률을 높이는 것이 나은 방안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에서 봤듯이 양적 완화를 통해 아무리 통화량을 늘려도 물가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서머스가 제시하는 대안은 대규모 재정투자다. 국가가, 민간에서 투자(소비)하지 않고 저축해둔 돈을 빌려 사회기간시설과 바이오메디컬 등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하면 수요 부양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정부가 마이너스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기에 대형 공공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국가부채가 더욱 비대해질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서머스는 “경기침체의 정도로 볼 때, 미국 경제에서 재정 팽창이 위험하다는 것은 나에게 다이어트가 위험하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라고 농을 뱉는다. 사실 서머스는 상당히 뚱뚱한 편이다.

ⓒEPA폴 크루그먼(왼쪽)은 서머스의 전향을 반겼지만, 로버트 스키델스키(오른쪽)는 서머스와 크루그먼 모두를 비판했다.
예전부터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서머스의 ‘전향’을 화들짝 반겼다. 크루그먼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영속적 경기침체, 탄광, 거품 그리고 래리 서머스’)에서 “서머스가 좀 흐릿하지만 용감하고 일관되게 논지를 폈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선(저축)이 악이 되고 긴축(prudence)은 바보짓이다. 부채와 적자에 집착하는 것은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지출은 좋은 것이다. 생산적 지출이 최고겠지만 비생산적인 지출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우리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달성하려면 버블이 필요한 경제에 살고 있다. 현재 상황을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적인 상태(new normal)’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글로벌 경제 토론 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서 서머스와 크루그먼을 비판했다. 스키델스키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자본 측이 욕심낼 만한 투자 기회가 줄어들어 세계경제가 침체됐고 이에 따라 국가가 재정지출(적자)로 경제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셰일가스 혁명이 “투자, 수출, 에너지비용 감축 등에서 미국 경제를 자극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대 규모의 투자 기회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영국의 시장주의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지난해 12월17일) 역시 정보기술 혁명이 새로운 경기 붐을 일으키고 있다며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두통은 숙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의 진보 성향 웹진 〈슬레이트〉의 매슈 이글레시아스 기자는 “서머스의 새로운 시각은 전통적으로 좌파에게 친숙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탈한 서머스가 좌파 포스트 케인스주의적 관점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라고 살짝 냉소적으로 논평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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