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지금 아베를 쓰다듬고 싶다
  • 정다원 편집위원
  • 호수 336
  • 승인 2014.02.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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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냉전으로 치달으면서 양국은 경쟁적으로 러시아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와 외교를 강화해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푸틴에게는 일거양득의 호재다.
제22차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가 중국과 일본의 외교 격전장이 되었다. 동북아의 신냉전 시대를 대변이라도 하듯 양국의 러시아 구애 외교는 뜨거웠다. 점차 불거지고 있는 중·일 갈등이 동북아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러시아에 어부지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소치 올림픽 개막식 참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환영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인권 및 동성애 문제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독일·영국·프랑스 등 서방 정상들이 개막식 불참을 선언하면서 푸틴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베이징과 도쿄는 모스크바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소치를 찾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아베 일본 총리(오른쪽)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8일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2012년 일본 측으로부터 선물받은 아키타 종 애완견을 선보였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이 소치를 방문하게 된 동기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사건이다. 원래 소치 방문을 고려하지 않았던 아베는 자신의 신사 참배로 러시아에서의 일본에 대한 여론이 험악해지자 소치 방문을 결정했다. 소치 방문을 저울질하던 베이징도 아베가 소치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시 주석의 소치 방문을 결정했다.

최근 베이징과 도쿄의 관계는 ‘동북아 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 이외에 역사 인식 및 타이완 주권 문제 등 다양한 갈등에서 비롯된 양국의 불편한 관계는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이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이번 소치에서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악수는커녕 눈길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지난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과 인도네시아 발리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주고받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중국·러시아, 안보·에너지·통상 등 폭넓게 협의

중국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전략적 밀착 관계를 과시한 중·러 정상회담에서 고스란히 노출됐다. 2월6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푸틴 대통령도 “일본의 군국주의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범한 범죄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맞장구쳤다.

또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내년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70회 기념식을 합동으로 거행하기로 합의했다. 소식통들은 이 합의가 신사 참배, 난징학살 부정 등 우경화 행보로 이웃 국가를 자극하는 일본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며, 아울러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에 러시아가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국 정상은 에너지·안보·통상 등의 의제를 폭넓게 협의했다. 아울러 시베리아 유전 개발, 송유관 건설, 정유공장 합작 등의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논의한 후 베이징·모스크바 간 협력을 강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나아가 시 주석은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24개 도시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 벨트’ 프로젝트에 러시아의 참여를 제안하면서 동서양을 연결하는 이 경제 벨트가 중·러 협력에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양국 간 무역이 870억 달러를 넘어섰고, 내년 말에는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화답하고는 시 주석의 방문을 친지 및 친구의 방문을 반가이 맞이하는 중국 춘절 전통에 빗대면서 “올해가 시 주석에게 위대한 말(馬)의 해가 되길 바란다”라는 덕담까지 건넸다.

시 주석이 소치로 날아간 목적은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고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의 주권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즉 러시아와 손잡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미국을 견제하며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NHK 간부의 난징 대학살 부정 등 우경화 행보로 중국을 도발하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위함이다.

한편 아베 총리의 소치 방문길은 바빴다. 공교롭게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날인 2월7일은 러시아에 쿠릴 열도 반환을 촉구하는 ‘북방영토의 날’이었다. 아베는 이곳 행사에 잠깐 참가하고는 서둘러 소치로 날아갔다.

러·일 정상회담은 소치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인 2월8일 소치에 있는 대통령 별장 ‘보차로프 루체이’에서 열렸다. 식사를 곁들인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일본이 얻은 성과는 적었다. 일본이 의도했던 주요 의제에 관한 논의는 유보된 채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올해 10~11월)만 약속받았다. 아베는 푸틴을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현에 초청했다.

그렇다면 13개월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아베 총리가 소치 외교에서 논의하고자 했던 의제는 무엇일까. 첫째, 러시아와 쿠릴 섬 반환 협상을 매듭짓고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최대 현안인 쿠릴 섬 반환 협상은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소치로 떠나기 직전 아베는 ‘북방영토의 날’ 행사에서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약속하면서 “결코 이 문제를 다음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아베의 두 번째 목적은 고립 돌파다. 도쿄는 모스크바와의 외교 강화로 우경화 행보로 야기된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를 도모했다는 관측이다. 아베 정권의 독선적 행보는 이웃인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따돌림당함은 물론 미국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립된 상황의 돌파구를 일본은 러시아에서 찾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마지막 목적은 중국 견제다. 아베는 영토 분쟁 상대국인 중국을, 우방인 미국과 손잡고 맞서는 한편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로 견제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이 러시아에 줄 수 있는 건 경제적 ‘당근’이다. 이미 도쿄는 러시아 극동 개발 투자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소식통들은 올가을 정상회담에서 투자 협상이 구체화되리라 예상한다. 아울러 일본은 러시아산 천연가스(LNG) 수입을 타진하고 있다. 현재 천연가스 수입량의 10분의 1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일본은 점차 그 양을 늘려갈 전망이다. 천연가스 수입 노선의 다변화로 수입 원가를 절감해 무역적자를 줄여보자는 속셈이다.

러시아에게 일본은 ‘최적의 함수’

러시아에 중국과 일본의 구애는 일거양득의 호재다.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자 투자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과의 협력은 자국 경제에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고, 나아가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최상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G2로 부상하며 점차 국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베이징이 모스크바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크렘린의 모순에 일본은 최적의 함수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중·일 간 갈등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회복을 도모해온 러시아에게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의 극동 개발 투자 또한 군침이 도는 제안이다. 러시아의 싱크탱크는 점차 낙후되는 극동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일본 및 한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스크바와 도쿄가 협력의 장을 열기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먼저 영토 문제 및 평화협정 체결이란 난제를 풀어야 한다.

러·일 정상회담 직전 푸틴의 전매특허인 깜짝 이벤트가 등장했다. 푸틴은 2012년 아키타 현의 사타케 노리히사 지사가 선물한 ‘유메(꿈)’라는 이름의 아키타 종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아베는 물론 세계 언론을 놀라게 했다.

푸틴의 야심작인 소치 올림픽 개막식은 ‘러시아의 꿈’을 형상화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꿈’이란 슬로건으로 인민을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애완견 ‘유메’를 데리고 나온 푸틴의 외교적 제스처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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