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넛잡’의 다람쥐들이 할리우드를 삼킨 비결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는 <넛잡:땅콩 도둑들>은 한국 영화일까, 아닐까. 애니메이션을 만든 레드로버는 원래 3D 모니터를 제작하는 하드웨어 기업이었다. 영화만큼 흥미로운 제작 비사를 소개한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4년 02월 12일 수요일 제333호
댓글 0
애니메이션 <넛잡:땅콩 도둑들>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다. 미국 개봉 첫 주말(1월17~19일) 성적이 1942만 달러(약 209억원)로 박스오피스 전체 3위를 기록했다. 마틴루서킹데이 휴일이었던 1월20일에는 박스오피스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디 워>의 최종 매출액인 1098만 달러(약 118억원)를 단 이틀 만에 뛰어넘는 기록이다. 개봉 스크린 수만 3427관으로 한국의 전체 스크린 수와 맞먹는 규모다.

할리우드 흥행 영화의 경우 보통 8주 정도 극장에 걸린다. 그리고 최종 매출은 첫 주말 수익의 4배 정도를 올린다. 또한 이런 흥행 영화는 북미 시장 흥행 수익의 4배 정도를 전 세계 시장 판권 수익으로 올린다. 낙관적으로 잡은 수치이긴 하지만, <넛잡:땅콩 도둑들>은 부가 판권을 제외하고도 어림잡아 3억 달러(약 3225억원) 이상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넛잡:땅콩 도둑들>은 미국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전체 3위를 기록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넛잡:땅콩 도둑들>은 미국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전체 3위를 기록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넛잡:땅콩 도둑들>의 순제작비는 450억원 정도다. 이 돈은 제작사인 레드로버가 전부 조달했다. 여기에 마케팅 비용으로 3000만 달러가 쓰였는데 이 중 2300만 달러를 배급사인 오픈로드가, 700만 달러를 제작사가 부담했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었지만 수익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사고뭉치 다람쥐 셜리가 공원의 동물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을 보관한 식량창고를 실수로 불태워 추방당한다. 친구들을 위해 땅콩 가게를 털기로 작전을 세우는데, 땅콩 가게는 도둑들이 은행을 털기 위해 위장한 곳이다. 다람쥐들은 땅콩 가게를 털고 도둑들은 은행을 터는 과정이 엉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험심이 강했지만 협동심은 부족했던 셜리가 친구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다람쥐들에 대해 토종이냐 외래종이냐 하는 시비가 일고 있다. <넛잡:땅콩 도둑들>의 제작과 관련해 한국 제작사인 레드로버가 주로 자금을 맡고 공동 제작사인 캐나다의 툰박스가 영화의 크리에이티브를 맡았기 때문이다. 각본도 할리우드 작가인 론 캐머런이 썼고 연출도 캐나다인인 피터 레페니오티스가 맡았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연인원 350여 명이 투입되었는데 그중 한국 측 직원이 120명 정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화의 저작권은 한국 기업에 있지만 한국 영화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을 위해서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영화만큼 흥미로운 제작 과정을 짚어보면 이 영화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넛잡:땅콩 도둑들>을 제작한 레드로버는 원래 3D(3차원) 모니터를 제작하는 세븐데이타라는 회사였다. 2004년 설립한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3D 모니터와, 카메라 두 대를 동시에 촬영해 3D 영상을 만들 때 쓰이는 3D 카메라 전용 리그시스템, 그리고 3D 영상을 상영하는 3D 전용 프로젝터였다. 의료용과 군사용 3D 영상기기도 두루 생산했다. 애니메이션 제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3D 영상기기 전문기업이었던 세븐데이타에 2009년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아바타>의 성공은 기회이자 위기였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3D 산업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기회가 생겼지만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3D 영상기기 산업에 뛰어들면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살리기 위해 하회진 대표는 콘텐츠 제작 쪽에 사활을 걸었다.

2007년 캐나다에서 온 연락


하드웨어 기업 세븐데이타가 콘텐츠 기업 레드로버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캐나다의 레드로버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3D 콘텐츠 제작을 위해 업체를 탐문하다가 세븐데이타를 발견했는데 기술력이 좋다며 북미 판매권을 갖고 싶다고 했다. 세븐데이타의 하회진 대표는 연락해온 캐나다 회사를 직접 방문했는데 3D 애니메이션 전문 회사였다. <미녀와 야수>의 감독이었던 앤디 나이트가 바로 레드로버의 설립자였다. 하드웨어가 필요했던 레드로버와 콘텐츠가 필요했던 세븐데이타의 이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두 회사는 협업을 약속했다.

두 회사가 처음으로 한 공동 프로젝트는 <볼츠 앤드 블립>이라는 텔레비전용 3D 애니메이션 시리즈였다. 앤디 나이트가 감독을 맡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련이 찾아왔다. 앤디 나이트가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레드로버 사무실.  
ⓒ시사IN 신선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레드로버 사무실.

이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사람이 바로 피터 레페니오티스 감독이다. <토이스토리 2>와 <다이너소어>의 제작에도 참여하고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여러 상을 수상한 애니메이터였던 그는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블립’만 제작되어 있던 <볼츠 앤드 블립>의 캐릭터를 모두 완성하고 텔레비전 시리즈물 전편을 제작했다.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나서기 위해 하 대표는 레드로버의 커머셜 부문을 인수하고 회사 이름을 아예 레드로버로 바꾸었다. 레드로버의 애니메이션 부문은 툰박스로 독립해 캐나다에 계속 남았다. 대신 레드로버와 툰박스는 서로 지분을 교환했다. 이때가 세븐데이타가 레드로버로 바뀐 시점이다.

이후 레드로버는 3D 상업 영상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0년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를 위해 27억7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벽루천>이라는 3D 입체 영화를 제작한 것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의 3D 홍보 영상을 여러 편 만들었다. 360° 전면에 3D 영상을 투사하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영상을 주로 제작했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레드로버의 목표는 할리우드 진출이었다. 툰박스 역시 월트디즈니의 하청회사에 머물러 있던 상황이라 의기투합했다. 그때 하 대표의 눈에 들어온 작품이 바로 피터 레페니오티스의 단편 애니메이션 <다람쥐 셜리>(Surly Squirrel)였다.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를 <이탈리안 잡>과 비슷한 ‘케이퍼 무비(범죄 계획과 실행에 중점을 둔 범죄영화)’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장편으로 바꾸기 위해 <브라더 베어> <라따뚜이>의 각본을 썼던 론 캐머런이 합류해 시나리오를 썼다. ‘설치류 애니메이션의 최강자’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설치류 3D 애니메이션의 관건은 털의 느낌을 어떻게 살리느냐인데, 이는 국내 제작진이 기술개발로 만회했다. 렌더링(뼈대에 이미지를 입히는 작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로 제작비를 절감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평균 제작비의 절반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다.

흔히 3D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절반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캐릭터가 중요하다. 캐릭터의 이미지가 곧 영화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땅콩 가게를 털 것 같은 사고뭉치 다람쥐’라는 콘셉트가 나오면 그것을 만족시키는 캐릭터가 나와야 한다. 피터 레페니오티스 감독은 이 부분에서 한국 스태프의 능력을 치켜세우며 “캐릭터 디자인을 총괄한 김재우씨를 발견한 것이 이번 영화의 성과 중 하나다. 연출가의 의도 이상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다”라고 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기술력은 3D 영상의 안정감이다. 의료용과 군사용 3D 모니터를 제작했던 레드로버는 눈이 편안한 3D 영상을 만드는 데 노하우가 풍부했다. 의료용과 군사용 3D 모니터는 사용자가 장시간 들여다보기 때문에 눈의 피로감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3D 영화는 돌출 장면에 주력한다.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이 반복되면 눈에 피로감을 준다. 놀이공원 어드벤처 3D 영상은 대부분 이런 돌출 영상으로 제작하는데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길이가 짧다. 이에 비해 깊이감을 주는 것이 3D 영상의 기술력이다. <아바타>의 3D 영상도 깊이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돌출 영상은 3회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넛잡:땅콩 도둑들> 제작 때도 이 부분이 강조되었다.

제작이 마무리될 무렵 흑기사가 나타났다. 가수 싸이였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싸이 캐릭터가 나와 <강남 스타일>에 맞춰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만들도록 허락해주었다. 일종의 ‘뒤풀이’ 동영상으로 이 뮤직비디오 덕분에 관객들은 흥겨운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선다. 이런 친절이 가능했던 것은 YG엔터테인먼트가 레드로버에 지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넛잡>은 미국 전역의 3000관 이상에서 상영 중이다.  
<넛잡>은 미국 전역의 3000관 이상에서 상영 중이다.

어린이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에 ‘결단’


그렇게 세계시장의 문을 여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장벽이 많았다. 여러 필름 마켓에서 ‘피칭(기획 및 제작 단계에 있는 영화 아이템을 투자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곳이 2011년에 설립한 미국의 신규 배급사 오픈로드다. 메이저 배급사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오픈로드가 가족 영화 라인업을 구축하려고 했던 터라 서로 이해가 맞았다.

레드로버의 안수원 홍보이사는 “오픈로드는 인디 스튜디오 작품 중에서 메이저 영화사 작품과 겨룰 만한 작품을 찾고 있었다.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오픈로드 측에서 적극적으로 배급 의사를 밝혔다.” 2013년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의 스크리닝 시사회를 마치고 오픈로드는 결단을 내렸다. 미국 전역에서 3000관 이상으로 와이드 개봉을 하기로 한 것이다. 3000만 달러(700만 달러는 레드로버가 부담) 규모의 마케팅 비용도 들이기로 했다.

오픈로드가 결단을 내린 것은 어린이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안 이사는 “스크리닝 시사회를 세 번 했는데 뒤로 갈수록 어린이 관객이 많이 왔다. 웃음소리도 커졌다. 시사회가 끝나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타깃 인터뷰를 해보니 세세한 장면까지 기억하고 캐릭터를 두루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대진운이었다. 보통 가족 영화는 주말에 많이 보는데 마틴루서킹데이가 포함된 주말이어서 유리했다. 흥행작인 <겨울왕국>(Frozen)은 한풀 꺾여서 관객이 빠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함께 개봉한 <라이드 어롱> 등의 영화는 대부분 성인 대상 영화라 뚜렷한 경쟁작도 없었다. 순풍에 돛 달듯이 개봉 4일 동안 2500만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레드로버의 심재권 이사는 “조사 자료를 보면 여자 아이들은 확실히 <겨울왕국>을 선호하지만 6~10세 남자아이들은 <넛잡:땅콩 도둑들>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레드로버는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큰 숙제를 풀었지만 아직 다른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 레드로버와 툰박스는 현재 워너브러더스와 합작사인 걸프스트림을 설립하고 3D 애니메이션 <스파크>를 제작 중이다. 가상의 우주왕국에서 아버지가 왕위를 찬탈당하고 버려진 주인공이 고아로 성장해 친구들과 함께 왕위를 되찾는 이야기다. 레드로버의 진짜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