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면허 쥔 카우보이들 이라크 죽이네
  •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 호수 4
  • 승인 2007.10.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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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간 경호업체 블랙워터 직원들이 이라크에서‘치외법권’을 누리며 만행을 일삼고 있다.

   
 
ⓒAP Photo
블랙워터 경호원(위)들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다.
 
 
16만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 이곳에서 이라크인들이 미군보다 더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약 3만명에 달하는 미국 민간 경호업체 직원이 그들이다. 특히 블랙워터USA 소속의 경호 직원들은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들은 세계 최대의 험지로 꼽히는 이라크 현지의 미국 외교관들과 요인들에 대한 경호가 주임무이지만 종종 미군 구출 같은 군사작전에도 참여한다. 워낙 험지에서 근무하다보니 이라크 내 이들의 인명 피해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의 과잉 경호에 따른 총격 사고로 무고한 이라크인이 희생당하는 일이 속출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이 이라크에서 만큼은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리고 있어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서 이들에 대한 이라크인의 증오는 가히 하늘을 찌른다. 오죽하면 지난 2004년에는 블랙워터 직원 4명이 무참히 살해된 뒤 불에 탄 시체가 이라크 팔루자 거리에서 끌려다니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까. 

이 무소불위의 블랙워터를 겨냥해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가 칼날을 빼어들었다. 지난 10월 2일 하원 정부개혁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고 이 회사의 에릭 프린스 회장을 불러내어 이라크 내 불법·잔학 행위에 대해 꼬치꼬치 따졌다. 이에 맞서 프린스 회장은 “경호직원들이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라면서 언론 보도 내용만 보고 자신들을 단죄하지 말아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의회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프린스 회장의 증언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 용역업체 소속 경호원들은 지난 2005년 이후 최소 195건에 달하는 총격 사건에 연루됐는데 그 중에는 경호직원이 자기 쪽으로 오던 차를 발포해 근처에 서 있던 사람이 사망한 일도 있고, 경호 직원들이 차를 몰고 가다 구경하던 무고한 이라크 행인을 총으로 쏴 죽인 일도 있었다. 급기야 지난달 16일에는 이들 경호업체 직원들이 쏜 총에 최소 11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미국 정부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연방수사국이 수사를 개시했고, 미국 국방부도 부랴부랴 진상조사단을 이라크 현지에 파견했다. 현재 미 정부는 블랙워터의 이라크 내 경호 면허를 취소한 상태다.

민간인 죽인 직원, '해고'가 최고 처벌

미국 의회 보고서에 나타난 이 경호업체 직원의 행태를 보면 그들의 무도한 횡포가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실례로 지난 2005년 6월24일 바그다드 남부의 힐라 시에서 경호업무를 맡던 이 회사 직원이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길가에 서 있던 민간인을 저격해 살해했다. 경호업체 측은 이날 총격을 고용주 격인 국무부에 보고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은폐했다고 당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 보안 담당관의 메모에 나온다. 나중에 이 담당관은 희생자 가족을 만나 ‘횡사’의 경우 지급액이라며 3000달러, 여기에 사건의 성격을 감안해 2000달러를 추가로 제시했다. 이런 일도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날 만취한 블랙워터 경호직원이 이라크 현직 부통령의 경호원을 사살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미국 대사관 고위관리는 블랙워터 측에 10만~25만 달러를 유족에게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보안 담당관이 이런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면 이라크인이 너도 나도 자기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피살 행열’에 나설 것이라며 대폭 금액을 낮출 것을 권했다. 결국 이 업체는 만5천 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AFP
블랙워터의 에릭 프린스 회장(오른쪽)이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 선서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들을 처벌할 방도는 없다. 이라크 현지에 파견된 블랙워터 직원이 설령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못하도록 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들에 대한 최대의 ‘처벌’이 있다면 해고 조처다. 블랙워터는 지금까지 122명을 해고했다. 국무부도 블랙워터가 문제 투성이임을 알고 있지만 이들 직원이 이라크 현지에 근무하는 미국  외교관들의 신변 보호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기에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국무부는 좋던 싫던 이 업체와 한 배를 탄 셈이다. 지난 2005년 이후 국무부가 이 업체에 준 용역 액수는 거의 10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 2003년 이라크에서 첫 경호업무를 시작한 블랙워터는 당시 폴 브레너 미국 행정관에 대한  11개월치 경호비로 2100만 달러를 따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워터는 경호직원 한 명당 하루 1222달러, 1년에 44만5000달러를 미국 정부에 청구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1급 변호사 일당이 부럽지 않은 액수다. 현재 이라크에는 블랙워터 말고도 딘코, 트리플 캐노피 같은 미국 민간 경호업체도 있지만 수주 규모 측면에서 블랙워터와는 비교가 안 된다.

블랙워터는 지난 1997년 해군특전사 요원 출신인 에릭 프린스가 만든 사설 보안 용역업체다. 현재 이라크에만 1000여 명 가까운 직원을 두고 있는데 이중 약 550명이 정식 직원이다. 반면 경쟁 업체인 딘코와 트리플 캐노피는 각각 157명과 250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무부가 유독 블랙워터를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에릭 프린스 회장은 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H. 부시의 대통령 재직시 백악관에서 한때 인턴 생활을 했던 열렬한 공화당 후원자이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공화당측에 낸 헌금액이 22만5000 달러가 넘는다. 그의 여동생인 벳치 드보스는 전직 미시간 주 공화당 의장으로 1994년 대선 때 부시 측에 10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고, 남편은 2006년 미시간주 공화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프린스는 특히 전직 부시 행정부 고위 인사들을 블랙워터에 영입해 든든한 후원망을 쳐놓았다. 그중 중앙정보국에서 반테러 담당 책임자였던 코퍼 블랙은 현재 이 회사의 부회장으로 있다. 블랙은 공화당 대선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미트 롬니의 안보담당 고위 보좌관이기도 하다. 또한 전 국방부 감찰관 출신인 조셉 슈미츠는 이 회사의 최고업무책임자이자 법률고문으로 있다. 부시 행정부와 프린스 회장 간의 이런 끈끈한 관계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부시 행정부가 무슨 기회든지 흥청망청의 수의계약을 정치 동지에게 나눠주려 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문제는 블랙워터건이 가뜩이나 이라크 실정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도 엄청난 정치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이후 5000억 달러 이상의 전쟁 비용에 미군 수만 명의 사상자까지 감수하며 이라크 재건에 매진해오면서도 막상 이라크인에게 욕을 먹어온 미국 정부가 또 블랙워터 때문에 더욱더 이미지를 구겼다. 이라크 현지의 대다수 미국 관리도 블랙워터 직원들의 과잉 행동이 이라크인 사이에 반미 감정을 더욱 부추키고 이라크내 미군 활동에도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판단한다. 민주당 출신의 얀 샤코프스키 의원은 “이들이 이라크에서 카우보이처럼 행세하다보니 마치 이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라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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