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곁가지를 걷어내고 보면, 의료 민영화 논란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의료 공공성을 지킬 수 있다며 정부가 준비한 ‘방어벽’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까.

수익을 추구하는 자회사를 허용한다. 자회사의 부대사업 범위를 넓힌다. 자회사가 배당을 통해 수익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도록 한다. 이러면서도 의료기관의 비영리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정부의 차단 능력과 시장의 수익 추구 능력 중에 어느 쪽이 더 강력할까.

정부 방어벽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반대 블록을 ‘괴담론자’로 치부하는 정부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 정부는 의료제도 개정안을 발표하던 지난해 12월 방어벽을 함께 제시했다. 자회사의 직접 의료행위 금지, 자회사 수익 재투자 강제, 모회사의 자회사 출자 제한 등이다.

반면 정부의 방어벽이 뚫린다면, 다시 말해 부대사업의 범위를 넘어 의료 본연의 영역까지 수익 추구 압력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의료 민영화를 경고하는 반대 블록에 힘이 실린다. 반대 블록은 현행 제도가 보장하는 ‘의료법인의 비영리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사실상 의료 민영화라 본다(이상의 내용을 다룬 자세한 논의는 〈시사IN〉 제330호 커버스토리 ‘모골이 송연한 민영화가 온다?’ 기사 참조).

어느 영역이든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일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KTX 민영화 논란에서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의 민간매각 금지 장벽을 충분히 쳐놓았다고 주장했다. 반대 블록은 정부의 장벽을 뛰어넘을 방법이 많다고 맞받았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미래에 대한 예측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고 누구의 예측이 옳을지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논란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집행권을 쥔 정부는 제 주장을 관철한다. 수서발 KTX 법인은 뜨거운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출범했다. 역시 익숙한 전개다.
 

ⓒ시사IN 이명익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차병원그룹의 회원제 병원인 ‘차움’.

해법은 없을까. 〈시사IN〉은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찾아보기로 했다. 의료 민영화 움직임을 감시해온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의 도움을 받았다. 시장은 수익 추구가 원천봉쇄된 현재의 의료체계에서도 어떻게든 수익 추구 모델을 만들어낸다. 이리저리 우회로를 뚫고, 편법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의료시장 개방을 기다리며 준비를 해둔다. 현행 제도에서마저 시장이 빈틈을 공략할 수 있다면, 시장의 침투경로를 더 넓게 열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익 추구 모델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자신감이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총매출 1조8000억원으로 국내 1위 규모

‘이미 와 있는 미래’의 대표주자가 있다. 차병원그룹이다. 차병원그룹은 개별 병원이 별도 법인 형식이어서 정확한 총매출은 공개되지 않는다. 언론 등은 차병원그룹 산하 7개 의료기관, 5개 건강검진센터, 2개 해외 의료기관을 합한 총매출액을 1조8000억원 정도로 추정한다. 대형 종합병원들을 뛰어넘는 국내 1위 규모다.

차병원그룹에는 병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바이오앤디오스텍(차바이오)이라는 계열사가 있다. 차바이오의 2012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0년 5월18일자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자금 300억원을 조달했다. 이 돈은 내부 설비투자 및 ‘차움 안티에이징센터 시설투자비 및 운영비’로 집행됐다.

‘차움’이라는 이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도 장벽을 우회한 영리병원이라는 의혹을 사는 초고가 의료 서비스 제공 병원이 차움이다. 입회비만 1억7000만원에 연회비 45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1대1 주치의와 건강검진 같은 의료행위에 더해, 헬스컨설턴트, 테라피스트, 식품영양사, 운동처방사가 한 팀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파·피부관리·두피관리·푸드테라피·자세클리닉·영양주사·피트니스센터·사우나·아쿠아 재활의학센터도 함께 제공되는 토털케어 서비스다.

차바이오의 홈페이지를 보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미래형 병원 차움”이라며 사업 분야 중 하나로 차움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차바이오는 의료법인이 아니므로 병원 사업을 할 수 없다. 또한 의료법인은 차움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할 수 없다. 즉, 차바이오의 병원 사업과 차움의 영리 추구, 둘 다 현행법상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이 대목에서 차병원그룹 소속 공익 의료법인 성광의료재단이 등장한다. 형식상 차움에서의 의료행위는 성광의료재단이 맡고, 시설 투자와 부대 서비스는 차바이오가 맡는 식이다. 차움은 이런 역할 분담으로 병원의 비영리 원칙을 우회했다. 2012년 1월 당시 차움 임규성 원장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환자 입장에서야 이런 구분이 전혀 무의미하지만 법적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일종의 고백이다. 차움의 서비스 형태를 보면, 의료 영역과 부대사업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사는 영양사나 운동처방사 등과 함께 토털케어 팀의 일원이다. 임 전 원장의 말대로, 환자 관점에서는 의미 없는 구분이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 논란이 괴담이라고 했다. 의료 자회사에 부대사업 허용 범위를 넓히면서도 의료 영역과 부대사업 영역을 제대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도 차병원그룹은 의료와 부대사업을 사실상 한데 섞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차바이오의 사업 분야에서 ‘이미 와 있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장면은 차움 하나만이 아니다. 2012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차바이오는 자회사 11개를 거느리고 있다. 스카이뉴팜은 2012년 차바이오가 합병한 제약 자회사다(합병 후 회사명은 CMG제약으로 바뀌었다). 제약업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부대사업 허용 분야다.

차케어스는 차바이오의 또 다른 자회사다. 사업 영역 중 ‘의료기기 및 의료소모품 판매’와 ‘IT 의료관리’ 영역이 눈에 띈다. 전자는 정부가 발표한 부대사업 허용 분야다. 후자는 이번 정부 대책에서 또 하나의 논란거리인 원격의료 시장과 직결된다.
 

차바이오매드라는 자회사도 있다. 이 회사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개발해 판다. 의료기기도 취급한다. 모두 정부가 새로 열어주는 부대사업 영역이다.

이미 미국에서 영리병원 운영 경험

차바이오는 이미 병원 운영 경험도 축적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영리병원인 로스앤젤레스 장로병원을 병원경영지원회사(MSO) 형식으로 운영한다. MSO는 현 정부 이전부터 의료 민영화의 유력한 경로로 주목받아온 경영 형태다. 2010년 5월 미래에셋은 의료시장 리포트에서 “MSO 사업자가 다수의 체인 병원을 소유하는 병원지주회사 형태로 배당금 수익 등을 취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리포트는 이를 ‘의료 민영화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MSO에 대한 설명은 20~21쪽 기사 참조).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차병원그룹 계열사 차바이오는, 정부가 추가로 허용하겠다는 부대사업 대부분을 이미 갖춘 기업이다. 정부 계획과 차바이오의 사업 영역이 신기할 정도로 겹친다.

이런 상황에서 부대사업을 추가 허용하는 정부 계획이 실제로 집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차바이오의 각종 부대사업은 차병원 네트워크 안에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차병원그룹이 제약·의료기기·의료소모품·화장품·건강식품을 주로 차바이오 에서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자회사로 이전할 길이 열린다. 자회사는 배당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이제 의료 현장의 수익이 밖으로 나갈 길이 열렸으니, 시장의 압력은 의료 현장에도 작동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의료법인은 영리 자회사를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비영리 의료법인인 성광의료재단이 차바이오를 자회사로 둘 길이 열린다. 차바이오의 최대 주주는 차광열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이다. 6.34%를 갖고 있다. 성광의료재단도 지분을 갖고 있지만, 현행법상 제한에 묶여 지분은 0.43%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회사 설립의 길이 열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차씨 일가와 차병원그룹 계열사·임직원 등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 비율이 모두 합해 30.44%에 이른다.

“사실상 영리병원 전면 도입되는 것”

차바이오가 성광의료재단의 자회사가 되면, 차움 병원의 기형적이고 편법에 가까운 구조가 상당히 해소된다. 의료법인과 그 영리 자회사가 운영하는 초고가 병원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사실상 영리병원이 전면 도입되는 거지요. 차움 모델이 이미 있으니까요.” 분석을 총괄한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 김태훈 정책위원(보건의료팀)의 평가다. 그동안 탈법논란이 거셌던 비정상적 수익 추구 모델들은 이제 제도적으로 한결 보장받는 모델이 된다.
 

ⓒ연합뉴스지난해 11월 6개 보건의료단체가 영리병원 도입 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부 방어벽이 유효한지가 의료 민영화 논란의 핵심인 이유는, 정부가 내세운 방어벽이 뚫리면 부대사업 영역을 넘어 의료 현장이 직접 수익 추구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민간병원이 절대다수인 한국 상황에서 의료 현장이 영리 추구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는 순간, 시장화의 충격은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을 전망이다. 수익 추구 인센티브가 작동할 때, 의료기관은 수익이 나는 쪽으로 자원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의료 공공성을 지탱할 자원은 자연히 쪼그라든다.

가설이나 예측이 아니다. 이 역시 ‘이미 와 있는 미래’다. 입원 병실을 예로 들어보자. 병실은 6인실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 특실과 1~4인실(상급 병실)은 비급여 항목이라 병실비가 훌쩍 뛴다. 의료 공공성을 생각하면 6인실을 늘려야 하지만, 수익 추구 압력을 받는 의료기관은 반대로 움직인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실태조사를 보면, 5대 대형 병원(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 병실의 41.1%가 상급 병실이다. 제도적으로 상급 병실이 50%를 넘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허용치의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환자들의 수요보다 6인실이 턱없이 모자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병실에 가는 경우가 흔하다. 5대 병원에서 상급 병실에 입원한 환자 중 83.7%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상급 병실을 택했다. 환자의 요구와 병원의 셈법이 완전히 어긋난 풍경이다. 수익 추구의 길이 열릴 때, 공공성에 배당되는 자원은 이렇게 쪼그라든다.

차움은 최상층을 상대로 하는 최고급 병원이다. 정부 정책이 이대로 시행된다고 해도, 전국의 수많은 병원이 차움처럼 바뀌고 당장 의료비가 차움만큼 뛸 리는 없다. 차움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이고, 차움만 콕 찍어 비판할 이유도 없다.

보편적인 것은, 차움이 아니라 ‘차움 모델’일지 모른다. 사회진보연대 김태훈 정책위원은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정책은 이와 같은 유사 영리병원 모델에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차움 모델’이 완전히 합법이 될 것이고, 다른 병원들도 이 고수익 모델을 마음 놓고 따라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상층·상류층·중상층 등 공략 대상이 다른 ‘차움 모델’이 여럿 나오겠지만, 수익 추구 원리가 정부 방어벽을 넘어 의료 현장에 침투할수록 공공성은 위협받는다는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수익 추구 원리로부터 보호되는 병원도 물론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6인실 병실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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