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으로 예정된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 50주년 기념행사를 놓고 새해 벽두부터 비판이 거세다. 국가보훈처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호국보훈 정신을 기리고 군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국군 파병 50주년을 맞아 정부 예산으로 대대적인 전쟁 기념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공식적인 행사 자제를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에 누리꾼을 포함한 대다수 시민은 크게 우려하고 나섰다. 명분 없는 전쟁으로 판명난 베트남 전쟁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국군 파병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한국·베트남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부적절한 행위라는 것. 더구나 미군의 용병 성격을 띤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양민 학살과 ‘라이따이한 양산’ 등으로 베트남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피해국인 베트남도 과거의 아픈 상처를 덮고 가자는 마당에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로 베트남을 자극하는 것은 일제 침략 범죄를 미화하는 일본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우리 처지에서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시사IN 정희상베트남 호찌민 시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군 폭격기.
ⓒ시사IN 정희상기념관 2층에는 고엽제 피해의 참상을 다룬 전시 공간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베트남 정부와 국민은 참전 한국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해 11월 중순, 보름에 걸쳐 육로로 베트남 국토 약 3000㎞를 종주하면서 이 문제를 가까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는 호찌민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전쟁기념관이다. 이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사방에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수많은 전투기와 폭격기, 탱크와 대형 폭탄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1973년 미군이 20년 동안 개입한 베트남전에서 서둘러 발을 빼면서 북베트남군에게 노획당한 30억 달러 상당의 군수품과 무기류 중 일부라고 한다. 그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미국인 단체 여행객의 모습이 무상한 세월을 실감케 했다.

기념관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승전국 전쟁기념관이니만큼 으레 전승을 자축하는 내용과 베트남군의 용맹성을 자랑하는 기념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1층에서 첫눈에 들어온 것은 베트남 어린이들의 평화 기원 글짓기 대회를 알리는 플래카드였다. 그 뒤쪽으로는 근현대에 베트남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강대국들의 역사적인 국제회의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설명과 함께 빼곡히 들어차 있다.

2층부터는 전쟁 승리 기념관이라기보다 ‘전쟁 참상 기억관’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한쪽은 항공을 이용한 미군의 대대적인 네이팜탄 투하와 고엽제 살포 장면들, 이로 인해 초토화된 베트남 정글과 참혹한 고엽제 후유증 피해자들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다 된 오늘날까지 대물림되는 고엽제 피해자는 얼굴이 문드러지거나 사지가 녹아내린 사람들, 곱사등이, 샴쌍둥이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시사IN 정희상베트남 전쟁기념관에 사진이 걸려 있는 고엽제전우회 이완수 대표.
2층의 또 다른 방에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저지른 대표적인 양민 학살 현장의 끔찍한 사진이 즐비했다. 1968년 무고한 민간인 504명을 집단 학살한 밀라이촌 학살 현장,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생포해 미군 탱크에 사지를 묶은 채 끌고 다니며 참혹하게 죽이는 장면, 참수한 베트남 민간인의 머리를 어깨에 걸치고 웃고 떠드는 미군 병사들의 광기 어린 모습을 담은 사진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진 밑에 베트남 당국이 달아둔 특별한 주석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들 미군 병사 개개인을 미워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이 사진을 전시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군도 미국에 의한 피해자라고 본다”

3층에는 베트남전 기간에 파견된 세계 각지의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 가운데 참혹한 전쟁 현장을 다룬 작품성 뛰어난 사진들과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했던 다양한 인명 살상 무기류가 전시돼 있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은 1964년부터 8년8개월에 걸쳐 연인원 32만명을 파병했다. 전사자만도 5000여 명에 달했고, 미군이 무차별 살포한 고엽제로 피해를 입은 장병도 부지기수였다. 전쟁의 이면에서는 일부 한국군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도 적잖이 벌어졌다. 또 한국군이 베트남 여인들을 무책임하게 임신시키고 몰래 귀국하는 바람에 현지에는 ‘라이따이한’이라는 그늘도 생겨났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기념관에는 한국군의 잘못에 관한 자료는 한 장도 없었다. 베트남인 안내자에게 이곳에 파월 한국군 관련 사진은 왜 한 장도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참전한 한국군도 베트남인들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도 결국은 미국에 의한 피해자라고 보기 때문에 한국군 관련 사진을 전시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뒤 기자의 소매를 끌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2층 한쪽에 자리한 고엽제 피해 전시관이었다. 뜻밖에도 이곳에는 한국군에 관한 사진이 딱 한 장 전시돼 있었다. 1969년 베트남전에 참전해 고엽제 피해를 입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고엽제전우회 이완수 대표의 사진이었다.

ⓒ연합뉴스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호찌민 전 국가 주석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과거의 전쟁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
호찌민 시의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참전 한국군으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 아픈 역사를 ‘기억은 하되 용서하겠다’고 말하는 베트남 정부의 포용력에 새삼 놀랐다. 이는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 이후 역대 정부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선린 우호관계를 강화해온 덕분이라고 할 만하다.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을 첫 표명한 데 이어, 2001년에는 방한한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원수와의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거듭 위로했다. 2004년 베트남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라며 에둘러 사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

정부뿐 아니다. 그동안 한국 내에서 베트남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자는 운동이 일면서 각종 현장 조사와 보도가 뒤따랐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참전 군인도 화해 노력에 대승적으로 동참했다. 베트남 중부 도시 냐짱에서 관광업을 하는 한 참전 한국군 출신 사업가는 “‘월남전 참전 복지회’ 등 NGO에서 그동안 베트남전에서 산화한 한국군과 베트콩, 민간인의 영혼을 추모한다는 취지에서 격전지 마을에 위령비 건립 지원사업을 벌여왔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 밖에도 고엽제 피해자를 위한 병원 건립사업 등도 벌임으로써 양국 관계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했다.

이런 대승적 화해 기조에 화답해 베트남 정부는 2000년 여름 국영 베트남 방송이 제작한 한국군 청룡부대의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한 방영을 보류하기도 했다. 당시 백낙환 주베트남 한국 대사는 이 프로그램이 한국·베트남 선린 우호에 부정적 인식을 상기시킨다는 우려를 담아 정중하게 방영 중지를 요청했고, 베트남 외교부는 회의 끝에 한국 요청을 받아들여 국영방송에서 이 프로그램의 방영 보류를 결정해 한국에 통보해준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시절과 대통령이 된 뒤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월남전에 참전해서 월남인들에게 고통을 줬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과연 무엇인가”라며 사과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도 호찌민 묘소에 참배 헌화하면서 불행했던 과거의 전쟁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 그렇게 사과를 해놓고 이번에는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파병 기념행사를 벌이겠다는 것인데, 만약 정부가 이 행사를 강행한다면 역주행도 이만저만한 역주행이 아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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