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퇴근하면 보고 자겠다는 큰아들 예찬이를 달래던 어느 늦은 밤, 불쑥 눈물이 났다. “‘아빠는 토요일에 보는 사람이야’라고 달래서 재우곤 했는데, 점점 더 주말도 없이 일하는 날이 늘었어요. 아이한테 거짓말하는 엄마가 되어버렸지요.”

두 아이를 재우고 배춘환씨는 〈시사IN〉을 읽었다. 기사 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에 얹혔다. 지난해 11월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쌍용자동차와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노조에게 47억원의 배상 책임을 판결했다는 내용이었다. 배씨는 계산기를 가져다 놓고 47억원을 찍으며 하염없이 늘어나는 ‘0’을 무력하게 바라봤다.

보증금 2000만원에 80만원으로 시작했던 신혼 생활, 결혼 7년 만에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산 아파트의 원금과 이자,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셋째, 과로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편…. “나는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저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들의 아이들은 또 어떡하지 싶고. 나처럼 저 사람들도 가족이 저녁에 같이 밥 먹고, 밤에는 푹 쉬고,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고… 이런 꿈을 꾸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배씨는 〈시사IN〉에 편지를 썼다. 47억원의 10만 분의 1인 4만7000원도 준비했다.

1월6일 경기 용인에 있는 배씨 집을 찾았을 때, 남편 김영민씨는 3주 만에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부부는 인터뷰 내내 많은 질문을 했다. “파업이 정말 불법인가요?” “정부가 민영화 안 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나요?” “손해배상 소송은 해법이 없는 건가요?”…. 그러는 동안 예찬이는 아빠 다리에 매달려 “아빠, 내일도 회사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아이의 태권도장 비용으로 〈시사IN〉에 4만7000원을 보내온 배춘환(오른쪽)·김영민(왼쪽)씨 가족.

 

“일하는 남편의 아내로서, 애 키우는 엄마로서,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자로서 보낸 돈이에요.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고, 그 정책대로만 되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 리가 없잖아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4만7000원은 첫째 예찬이의 태권도장 비용이다.

배씨의 편지가 ‘편집국장 브리핑’(제329호 참조)을 통해 소개된 후 편집국에는 배씨처럼 돈을 보내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시사IN〉 구성원들도 여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모금 계좌를 열기 위해서는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3주 정도 걸린다. 아름다운재단이 이와 관련된 일을 돕고 있다. 이를 기다리지 못한 성급한 독자 몇 분은 배씨처럼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세상이 쉽게 바뀔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4만7000원×10만명’ 그다지 허황되지도 않은 이 숫자가 감동스럽습니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잔돈이 없어 3000원 더 보냅니다.”

“10만 분의 1 정도의 대답이 되겠지만, 나머지 대답은 이 땅 위에 좀 더 좋은 것, 좀 더 옳은 것을 원하는 분들이 채워주시리라 믿어봅니다.”

때마침 손해배상·가압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위한 사회적 기구를 꾸리자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 학장,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 등이 ‘손잡자’(가칭)라는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배춘환씨가 〈시사IN〉에 보낸 아이디어도 ‘손잡자’의 제안서에 들어갔다. ‘손잡자’는 ‘손해배상·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잡고’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민주노총만으로 좁혀봐도 손해배상·가압류 금액은 엄청나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 총합계는 982억9843만3248원, 가압류 청구 총합계는 63억6300만원이다. 여기에는 철도노조에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은 포함되지 않았다.

‘손잡자’의 공동 제안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파업 한 번 한 대가로 수백억원을 물어야 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보장될 수 없다. 노동자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구속,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당하다가 목숨을 끊는 나라에서는 인권이 꽃필 수도 없다.” 손잡자는 1월23일 손해배상·가압류 대상자들의 증언대회를 열 계획이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손해배상과 가압류 때문에 분신한 지 10년이 넘었다. 사용자인 기업은 더 이상 구사대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농성장을 철거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은 듯 보인다. 기업은 법원에 노사분규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소송을 내는 것만으로도 깔끔하게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정부 역시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소송전에 가담했다.

길고 긴 민사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와해되는 것은 노동조합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이, 그리고 공동체가 차례차례 붕괴됐다. 기어이 손해배상 소송은 저 멀리 캄보디아 노사분규 현장까지 ‘수출’되었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2014년을 손해배상 없는 해로 선언하자”라고 제안한다. “더 이상 이런 일로 누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편지 한 통 한 통이 쌓여 시작된 일은 어떤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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