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 표 하나로 알려주마!
  • 천관율 기자
  • 호수 330
  • 승인 2014.01.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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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논쟁적인 ‘민영화’가 온다. 정부는 지난해 12월13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의료와 교육을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방안을 담았다. 두 영역에 수익 추구 메커니즘을 한 차원 더 들여오겠다는 얘기다. 의료와 교육은 수익을 해당 사업에만 재투자하도록 제한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하지만 4차 활성화 대책에서 정부는, 두 영역에 ‘외부 배당’, 즉 해당 사업 밖으로의 수익 유출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익추구 모델을 도입했다(‘제주발’ 교육 영리화 전국으로 파도치나 기사 참조).

정부 발표 이후, 의료 민영화 논쟁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숱한 민영화 중에서도 의료 민영화가 특히 논쟁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료 민영화는 철도나 공항과도 차원이 다른 생활 밀착형 이슈다. 여론 폭발력이 어마어마하다. 둘째, 한국 의료체계의 특수성 때문에 의료 민영화라는 개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부터가 불확실하다. 고속철도나 인천공항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민간에 파는 민영화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우일 그림</font></div>  
ⓒ이우일 그림
정부 “건강보험은 그대로, 민영화 아니다”

정부·여당은 의료 분야 투자활성화 대책과 민영화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마지막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원격진료 제도 도입과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을 두고도, 의료 민영화니 진료비 폭탄이니 잘못된 주장들로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면서 의료 민영화 비판을 ‘유언비어’라고 단언했다.

대형 포털에서 ‘의료 민영화’를 검색하면 ‘원격의료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정책 바로알기’라는 긴 이름의 사이트가 첫머리에 뜬다. 보건복지부의 홍보 페이지다. 들어가자마자 이런 문장을 볼 수 있다. “의료 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 그러고는 정부 정책이 왜 의료 민영화와 다른지 설명한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20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이 의료 민영화 수순이라는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불순세력 개입 의심을 지울 수 없다”라고 했다. 방송과 보수 일간지 등은 ‘맹장수술 1500만원’ 등 황당한 의료 민영화 괴담이 판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당·정·청에 언론까지 합세한 총력전이다.

정부 논리의 핵심은 이렇다. 의료 공급은 이미 94%가 민간병원에서 이뤄진다(병상 기준으로는 90%). 동네 의원과 거의 모든 대형 병원은 민간이 운영한다. 그러므로 의료 공공성의 핵심은 보험 분야, 즉 건강보험(건보)이다. 그중에서도 건보 의무가입제(시민은 건보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와 건보 당연지정제(병원은 건보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가 핵심 축이다.

   
 
의료를 공급 분야와 보험 분야로 나눠 생각해보면, 공급 분야는 이미 민간의 영역이므로, 보험 분야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이 의료 공공성의 핵심이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정부 정책 브리핑과 복지부 등이 일관되게 이 기조를 유지한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투자활성화 정책의 핵심은 의료법인이 자법인을 만들도록 허용해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의료법인 간의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것이다. 둘 다 건보체계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정부의 설명은 옳다. 즉, ‘민영화=건보체계 붕괴’로 본다면, 이것은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

시민사회 “의료 비영리 원칙 무너질 것”

그럼에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의료계 시민사회는 이번 정부 조치를 의료 민영화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한국 의료체계의 특수성이 이유로 꼽힌다.

위 <표 1>을 보자. 한국 의료체계가 미국에 비해 공공성이 뛰어나다는 세간의 통념이 무너지는 표다. OECD 기준으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민간형 의료체계’로 묶이는 나라다. 전체 의료비 대비 공공 의료비 지출(가로축)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전체 병상 대비 공공 병상 수(세로축)는 아예 최하위권이다. 즉, OECD 기준으로 공급 분야 공공성은 없다시피 하고 보험 분야 공공성이 그나마 버티는 구조다.

그럼에도 한국 의료체계의 공공성이 나름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의 설명은 이렇다. “공공성을 떠받치는 기둥은 셋이다. 건보 의무가입제, 건보 당연지정제, 그리고 의료법인의 비영리 원칙이다.” 앞의 둘은 정부의 설명과 같다.

그런데 마지막이 하나 더 있다. 의료법인이 벌어들인 수익을 배당 등의 방식으로 외부로 내보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의료법인 수익은 의료법인 내에만 재투자가 가능하다), 압도적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의료 공급 구조에서도 공공성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의료 공공성은 이 세 축 중 하나만 무너져도 위태롭다. 공공의료 공급이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 민간 의료법인이 수익 추구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시장화의 충격을 환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반대 블록의 관점이 극적으로 갈라지는 곳이 여기다. 정부는 ‘건강보험=공공성’이라는 전제로 이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반대 블록은 1)건강보험 2)의료법인 영리추구 금지 두 가지가 함께 공공성을 떠받치고 있다고 본다. 의료 공공성의 개념 자체를 달리 보기 때문에, 의료 민영화의 정의도 달라진다.

의료 공공성은 안녕할까

의료 영리화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깊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본격 추진된 영리병원 건립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영리병원은 의료법인 수익을 이자·배당 등의 방법으로 외부 투자자에게 이전할 수 있다. 현재 영리병원은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건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운영하는 병원은 아직 없다.

반대 블록은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사실상 영리병원 효과를 내는 ‘우회로’라고 본다. 여론 저항이 높아 영리병원 전면 도입이 여의치 않자 영리 추구의 우회로를 뚫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옳다면, 반대 블록이 보기에 의료 공공성을 떠받치는 세 축 중 하나인 비영리 원칙이 무너지는 셈이다.

특히 뜨거운 감자가 ‘자법인 허용’과 ‘부대사업 허용범위 확장’이다. 정부안을 보면, 자법인은 민간 투자자에 배당 형태로 수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밖으로 돈을 보낼 통로가 열린다(<표 2>). 영리병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대사업 확장은 자법인이 실질적으로 수익을 올릴 공간을 넓혀준다.

정부는 차단벽을 충분히 쳤다고 주장한다. 첫째, 자법인은 환자 진료 등 직접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자법인 사업은 부대사업으로 제한된다. 둘째, 자법인 수익은 고유 목적사업에 재투자하도록 강제한다. 셋째, 모법인 순자산 일정 비율까지만 자법인 출자를 허용한다(모법인 의료사업 훼손 방지). 넷째, 부당 내부거래를 제한하고 지배관계 기준을 명확화한다(사익추구 남용 차단). 다섯째, 자법인의 리스크를 모법인이 감당하지 않도록 보증과 이사 겸직을 금지한다.

반대 블록은 여전히 허점이 많다고 본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언론 기고문을 통해, <표 2>의 의료 자법인 구조야말로 SOC 민자사업 브로커들이 즐겨 쓰는 전형적인 수익 빼돌리기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자법인이 의료법인에 주는 배당금을 줄이기 위해 투자자의 돈을 고금리로 빌리는 방법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의료 상품의 특수성을 짚었다. 의료는 전형적인 ‘공급자 시장’이자 ‘정보 비대칭 시장’이라는 것이다. 의료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력이 극히 취약한 소비자인 환자는 사실상 공급자인 의사의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법인에 투자한 자본이 수익 추구를 주문한다고 생각해보자(민간 자본의 속성상 당연한 가정이다). 의사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자회사 관련 부대상품을 권유할 경제적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정보 비대칭 때문에, 환자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보체계를 건드리지 않았다뿐이지, 소비자 처지에서 보면 결국 민영화 효과를 낸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는 자법인이 화장품·건강보조식품·건강식품 등을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게 하겠다고 적시했다. 진료 과정에서 이른바 ‘영업’이 이루어지기 쉬운 상품들이지만 부대사업으로 분류됐다. 수익추구 논리가 의사들에게 영업 압력으로 작동할 때, 정부는 어떻게 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일까? “환자 편의를 위해 판매를 허용하되, 부당한 구매 강요 등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가겠습니다.”(2013년 12월30일 정책 브리핑). 하나마나 한 얘기다. 정보 비대칭이라는 의료상품의 특성상 의사는 ‘부당한 강매’까지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정부가 적시한 또 다른 부대사업인 ‘의료기관 임대업’을 예로 들었다. “자본이 들어와서 병원을 지어 의사에게 빌려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발생하는 임대료는 부대사업 수익이므로 허용된다. 임대료 수준을 높이면 의료법원 수익을 쉽게 자법인 수익으로 끌어올 수 있다. 그리고 배당으로 외부에 돌려버리면, 그게 그냥 영리병원과 뭐가 다른가?”

논쟁의 구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보인다. 시장원리 도입을 주장하는 정부와 보수 언론은, 정작 정부가 설계한 방어벽이 시장의 수익 추구를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장에 물꼬는 터주지만, 자법인 남용 방지 장치를 열거하면 시장을 길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수익추구 모델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대 블록은, 정부가 어떤 방어벽을 세우든 시장이 결국 해법을 찾으리라고 본다. 시장은 관료보다 유연하고 빠르다. 피드백이 원활하고 시도도 다양하다. 그러니 아예 물꼬를 터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반대 블록이 오히려 시장의 힘을 더 높이 치고, 정부와 보수 언론이 시장을 과소평가한다.

‘맹장염 괴담’이라는 이름의 괴담

이 논쟁 구도에서는, 반대 블록도 당장 건보체계가 무너지리라는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의료의 영리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부유층을 중심으로 건보 의무가입 폐지를 원하는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어 건보체계를 위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의 불투명한 가능성에 더 가깝다. 당장 반대 블록이 내놓는 주장은 ‘영리병원의 우회 도입’과 ‘의료비 부담의 점진적 가중’ 정도다. 반대 블록의 한 전략통은 “나는 건보 얘기는 일부러 꺼내지 않는다. 지금 단계에서 건보 위협론까지 가는 건 좀 논리가 헐겁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이 입을 맞추어 쏟아내는 ‘맹장수술 1500만원 괴담론’이야말로 실체가 없는 ‘괴담몰이’라는 평이 나온다. 온라인 일각에서 당장 건보체계가 무너지리라는 과민 반응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 논쟁의 장에서는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본격 논쟁을 회피하는 용도로 온라인 일각의 과민 반응을 확대 재생산하는 모양새다. 상대의 논리를 엉뚱하게 상정하고 격파하는 허수아비 논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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