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확산될까? 미디어다음의 김태형 소셜미디어팀장은 이에 대해 가장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김 팀장은 온라인 토론 플랫폼인 아고라와 블로거들의 뉴스 서비스 플랫폼인 다음뷰, 그리고 티스토리 블로그 서비스 등 ‘이슈 플랫폼’을 수년째 총괄하고 있어 누구보다 온라인 이슈의 흐름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스타가 되고 어떤 서비스가 대박이 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를 스타로 만든 시스템이나 그 서비스가 대박이 나게 한 마켓이다. 온라인·모바일에서는 이를 ‘플랫폼’이라고 한다. 온라인·모바일에서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유행이 되느냐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흔히 플랫폼 경쟁은 ‘사람들의 시간을 점령하고 빼앗는 전쟁’으로 비유된다. 아고라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김 팀장은 이런 ‘이슈 플랫폼 전쟁’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런 그를 만나 최근의 사이버 이슈 흐름은 어떤지,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리트윗을 통해 대선에 개입하고 ‘일간 베스트 저장소’ 등 보수 우익 플랫폼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이버 여론의 요즘 흐름은 어떤가? 채동욱 검찰총장 퇴진 파동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이전까지는 웬만한 이슈도 확산이 그리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채동욱 퇴진 이후 이슈에 대한 반응 규모가 절대적으로 커졌다. 이런 흐름이 ‘철도 민영화 반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전 상황과 비슷하다.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반응이 격렬했던 것도 이처럼 사회적 불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사IN 고재열김태형 미디어다음 소셜미디어팀장(위)은 “국정원 댓글이 사이버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라고 말했다.
이전 촛불집회 때와 어떻게 비슷한가? 우리는 댓글과 게시글의 증가에 맞게 서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호응은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 때 ‘앙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안단테’가 불꽃을 댕기던 시기와 많이 닮았다. 보통 사람들은 큰 번개가 내려치는 장면을 보지만, 플랫폼 기획자는 그 전에 구름 속의 작은 번개들을 볼 수 있다. 작은 번개가 잦아지면 결국 큰 번개가 온다. 특정 키워드가 떠오르는 양상을 보면 이슈가 폭발하기 위해 7부 능선,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지금이 그렇다. 아고라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아고라는 어떻게 성장했나? 2005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서비스 규모가 크지 않았다. 서귀포초등학교의 부실한 급식이 이슈가 되는 정도였다. 생활밀착형 이슈가 화제가 되는 소소한 공간이었다. 아고라의 성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뗄 수 없다. 폭풍 같은 2008년을 보냈다. 광우병 촛불집회, 4대강 사업,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아고라가 폭발했다. 안단테와 같은 누리꾼, 김이태 연구원과 같은 전문가, 미네르바와 같은 논객이 아고라 스타가 되었다.

아고라 이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이태 박사는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책 연구기관에 근무하는데, 익명이 보장된 공간에서 기명으로 폭로했다. 지금 권은희 수사과장이 주목받는데, 그 이상을 해냈던 사람인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영이 사건’ 때 아버지가 올린 청원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짧은 시간에 100만명의 공감을 받았다. 본인의 아픈 상처를 바탕으로 아동 성폭력 관련 법 개정을 주장했다. 본인이 겪은 끔찍한 일을 단순히 하소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변화로 연결하려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슈 플랫폼으로서 아고라를 관리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미디어적 실험이다. 올림픽이나 대선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몰릴 때 미디어적 실험을 한다. 지난 올림픽과 달리 이번 올림픽 때는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이다. 이런 실험을 해보면 기술적 검증이 되기 때문에 이후 정식 서비스를 만들어낼 때 도움이 된다.

지난 대선에서 벌인 실험은 무엇인가? 세 가지였다. 빅데이터에 기초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 온라인 공간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는 것, 온라인 정치 후원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일간 베스트 저장소’나 ‘오늘의 유머’와 아고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명칭에 답이 있다.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가 명칭에 나타난다. 아고라는 토론 서비스를 지향한다. 아고라에서 건전한 토론은 책무다. 다른 서비스는 그런 책무를 느낄 필요가 없다. 기획한 결과물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다. 사용자들이 그런 패턴으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아고라는 의도된 기획의 범위 안에서 서비스한다.

ⓒ시사IN 자료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다음 아고라 회원들이 깃발을 들고 참석했다.
이런 서비스를 관리하면서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온라인 이슈가 어떤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확산되는지 이제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이슈의 확산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든다. 영향력의 크기와 방향을 잘 모르겠다. 어떤 플랫폼이 성공한다고 보는가? 플랫폼의 역설이 있다. 성공을 예상했던 플랫폼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공급자가 강한 의도를 투영할수록 사용자는 멀어진다. 반면 성공한 플랫폼 기획자들은 공통적으로 ‘나도 이게 뜰 줄 몰랐다’고 말한다. 사용자를 예측하지 말고 행동 양태를 반영해야 한다.

이슈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열린 사이버 사회의 적은 ‘어뷰징(부적절한 방법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행위)’이 아닌가 싶다. 국정원의 댓글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사이버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명확하다. 해당 플랫폼이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너뜨렸다. 이용자가 피로감과 환멸을 느끼게 해서 그런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게 만들었다.

앞으로 이런 인위적인 여론 조작을 막는 것이 과제일 것 같다. 해외도 그렇고 국내도 마찬가지인데,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 IT기업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알고리즘 개발자다. 인위적으로 이슈를 바꾸거나 순위를 바꾸는 공격에 맞서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플랫폼 서비스 기업의 과제다. 기업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이를 공략하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서다.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개입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아고라만큼 메타블로그(일종의 블로그 포털 사이트) 서비스인 ‘다음 뷰’에도 공을 들였다. 블로그 저널리즘이 한참 각광을 받다가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관심이 저조해진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략 세 가지 정도가 후회된다. SNS와의 결합 모형을 놓고 갈팡질팡했다. 경쟁 대상인지 활용 대상인지 빨리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업 블로거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지 못했다. 지속적인 후원 모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활용 가치만 생각하고 파트너로서 대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블로거는? ‘미디어몽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뉴미디어 실험을 한 블로거가 도맡아 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핵심 가치인 독립성에 대한 소신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의지하거나 기대지 않고 자기 영역을 만들어냈다. 매스미디어의 위기라고 하는데 언론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양한 뉴스 소비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간다. 남들이 아는 것을 나도 알아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뉴스를 소비할 때 가장 결정적인 판단은 온라인에 의지하는데, 특히 자신이 연관을 맺은 네트워크의 집합적 판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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