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편집국에도 대자보가 나붙었다. “마감을 눈앞에 두고 안녕들 하시냐”라는, 격려인지 냉소인지 모를 ‘안녕’ 패러디를 보며 뜨끔했다. 지난 1년간 50권의 〈시사IN〉을 만들며 어지간히 기자들을 쪼아댔던 게 지레 마음에 걸려서다.

 
주위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냐고 농을 던지곤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건이 뻥뻥 터져주니 머리 싸매고 앉아 기사거리 만들어낼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시사지 편집 책임자로 지낸 지난 1년은 그다지 안녕치 못했다. 무엇보다 ‘악악’거린 만큼의 ‘응답’이 없어서다.

지난 1년간 끊임없이 뭔가를 지적하고, 잘못된 것이 고쳐지길 바라고, 새로운 희망들이 생기길 바랐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이른바 ‘을의 반란’으로 작은 변화들이 조짐을 보이기도 했으나,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강력한 ‘갑’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청와대와 공권력은 도무지 꿈쩍을 않는다.

오죽하면 〈시사IN〉 기자들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서 창간 이래 처음으로 정치 분야 해당자를 뽑지 못했을까. 그야말로 청와대발 ‘정치의 통치화’가 극에 달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낼 정치와 정치인이 실종된 탓이다.

국정원과 군이 돌렸다는 트위터 건수가 수백만 개씩 발견되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의혹에 청와대 인사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불거질 무렵, 여기저기서 이런 얘기가 들렸다. “예전 같으면 나라가 뒤집어졌어도 몇 번이나 뒤집어졌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부글거리기만 하고 행동은 안 하는 걸까?”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이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 때의 촛불을 염두에 둔 듯한 그들의 의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아마도 실현 가능한 단기 목표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미선이·효순이 때는 미군의 사과와 SOFA 재협상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쇠고기 촛불 때는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요구할 게 박근혜 사퇴밖에 없는데, 그건 실현 가능성이 낮고 너무 부담스러운 이슈다.”

그런데 정부와 코레일이 덜컥 ‘철도 민영화’와 ‘파업 참여자 직위해제’라는 무리수를 두면서, 부글거리던 민심에 스스로 불을 지폈다. ‘민영화 저지’와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 반대’라는 또렷한 목표가 생긴 시민들은 ‘안녕들 하신지요’라는 글 한 편에 일제히 공감하며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던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광장이 꽁꽁 언 12월19일, “서른 살인데 아직도 대학 등록금을 갚고 있다”라며 울먹이던 젊은이의 안녕치 못한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반값 등록금’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던 그 대통령은 도대체 저런 사연들을 듣고나 있는 걸까.

기자명 이숙이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