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서구 석남동 ×××번지 407호.  목재공장이 즐비한 길목에 ○○아파트형 공장이 있었다. 407호에 올라가보니, ○○시스템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컴컴했고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진 또 하나의 문이 나왔다.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창고였다. 출판사가 있어야 할 곳이 창고였다. 자재를 나르던 서 아무개씨(38)는 “오래전부터 창고였고, 5층 회사가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5층 ㅂ사 사장은 “먼 친척이 이사를 하는데 공간이 없다고 역사책을 맡겨서 407호 창고에 잠시 보관해주었다”라고 말했다. 407호 우편함에는 인영사 대표 안 아무개씨 앞으로 온 우편물이 있었다. 서류상으로 인영사는 지난 3월 이곳으로 이전했다. 3월 이전 주소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번지를 찾아가보니, 가정집이었다. 빌라 입주자들은 “여기는 일반 가정집이고 출판사는 없다”라고 말했다.

인영사는 국정원의 위장 출판사라는 의혹을 산 곳이다. 인영사 대표로 이름을 올린 안아무개씨를 두고, 국정원 민간인 협력자라거나, 전 직원이라는 등 추측이 제기되었다. 인영사는 지금까지 5권의 책을 펴냈다.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현대사상연구회, 2009년 4월) 등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 저자는 현대사상연구회와 국정원 소속 이희천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다.
 

ⓒ시사IN 전혜원‘인영사’ 주소지가 있는 아파트형 공장의 407호는 현재 ㅂ사, ㅎ사가 원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반대세…〉는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법원에 낸 증거물 가운데 하나다.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들의 ‘종북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현대사상연구회 부회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인영사에서 나온 책은 대부분 이희천 교수와 관계가 깊은 셈이다.

출판사 주소지는 형의 공장, 대표는 아내

기자가 찾아간 인천광역시 창고 건물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이 공장 407호 소유주가 ‘이희○’이었다. 이 건물을 담보로 이희천 교수는 지난 5월 3000만원가량을 대출받았다. 〈시사IN〉 취재 결과 소유주 ‘이희○’씨와 이희천 교수는 형제 관계로 밝혀졌다. 또 출판사 대표 안 아무개씨는 이 교수의 아내로 밝혀졌다. 안씨의 신분이 처음으로 밝혀진 셈이다. 안씨가 이 교수의 아내로 밝혀지면서, 인영사가 국정원의 위장 출판사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안씨는 출판사 대표로 이름을 올려놓고도, 최근까지 취업알선 회사인 ㅇ사 팀장으로 일했다. ㅇ사 관계자는 “안 팀장이 지금은 그만두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형 공장에 출판사 주소를 두고, 출판사 대표로 아내를 내세운 셈이다.

이 교수가 아내 명의로 된 인영사에서 〈반대세…〉를 출판하는 과정에는 원세훈 전 원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교수는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나왔다. 경북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현대사상연구회 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양동안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다).

이 교수는 1990년대 후반에 국정원 산하 국가정보대학원에 순환교수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국가정보대학원에는 순환교수와 학술교수가 있다. 순환교수는 실무 부서와 교수직을 오간다. 반면 학술교수는 주로 연구와 집필을 한다. 전 국정원 관계자는 “대북공작 분야 실무에서 일을 하다가, 경험을 쌓으면 정보대학원에 가서 교수로 국정원 직원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실무 감각이 떨어지면 다시 실무 부서로 순환한다. 이게 바로 순환교수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이희천 교수는 〈반대세…〉를 집필하기 전에는 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정보기구의 역사를 강의했다고 한다. 이때도 그는 대외 강연을 자주 나갔다. 주로 독도와 관련한 강연이었다. 그런데 그가 강사로 나선 독도 관련 행사에 아내 이름도 등장했다. 독도여행 상품을 판 ㄱ여행사 대표가 아내 안 아무개씨였다. 지난 2006년 한 해운업체가 독도 페리호 사업을 하자, 그 업체 이름을 딴 여행사를 아내 안 아무개씨가 운영한 것이다(2007년 해운업체가 경영난으로 운항을 중단하자, 여행사도 접었다). 이 여행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문을 열었다. 현대사상연구회가 사단법인 설립 때 신고한 주소와 같다.
 

ⓒ시사IN 전혜원3월18일 이전까지 ‘인영사’의 주소지였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왼쪽). 현재 인영사 주소지로 돼 있는 인천광역시 남구 석남동의 한 아파트형 공장(오른쪽).

이희천 교수는 국정원 대변인실을 통해 “신분 보안을 위해서 양동안 회장의 양해를 얻어 부회장 직함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직함만 빌렸을 뿐이라는 해명과 달리, 아내 안 아무개씨도 현대사상연구회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녀가 대표로 있던 여행사와 같은 주소에 현대사상연구회도 설립 신고를 한 것이다. 현대사상연구회 역시 이희천 교수가 주도해 설립한 사실상 1인 단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현대사상연구회 주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한 오피스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스포츠 관련 회사가 입주해 있다.

독도 문제와 정보기관의 역사에 관심이 있던 이 교수는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종북이론가’로 변신했다. 2009년 4월 원 원장 취임 두 달 만에 그는 〈반대세…〉를 집필했다. 이 교수는 이 책을 집필할 때, 교수 신분이 아닌 실무 부서에 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필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그때 홍보 관련 부서에서 집필한 것으로 안다. 원 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종북 좌파 척결에 딱 맞는 책을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대세…〉는 출판하기 전에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들에게 먼저 검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이 출판에 대한 반대 뜻을 내기도 했다.
 

2009년 1월 이희천 교수의 외부 강연 모습.
2009년 1월 이희천 교수의 외부 강연 모습.


출판 전에 원고를 보았던 전 국정원 관계자는 “출판하기 전에 잘못된 부분을 고치거나 문장을 다듬어달라는 요청이 교수들에게 갔다. 그런데 교수들이 이 책은 읽을 가치도 없다고 평가해버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너무 한쪽으로 내용이 편향되어 있어서 정보기구가 내면 문제가 된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위에서 내라고 해서 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순환교수든, 학술교수든, 국가정보원 직원은 외부에 책을 내기 위해서는 ‘보안 검토’를 거쳐 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대세…〉는 출간 뒤, 원세훈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의 교재로 불리면서 국정원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는 국가정보대학원에 순환교수직으로 복귀했고, 〈반대세…〉를 교재로 직원들을 가르쳤다. 또 5급에서 4급으로 승진도 했다. 이 교수의 승진은 원세훈 전 원장의 입김 때문이라는 말이 국정원 안에서 돌았다고 한다. 전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정보기구는 편향된 이념 교육을 시키면 안 된다. 정보원들이 첩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국가정책에 제대로 반영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이나 박근혜 정부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보수적인 인사들도 특강을 했다. 이 국정원 관계자는 “그런데 MB 정부 국가정보대학원 안에는 이념과목이 생긴 것이다. 〈반대세…〉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어떻게 몰고 갔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법상 영리업무 및 겸직 금지 조항 위반

〈반대세…〉는 국정원뿐 아니라 국방부 등에서도 대량 구입해 배포했고, 장병 정신교육 도서로 사용됐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상대로 서평 공모전이 열리기도 했다. 출판한 지 다섯 달 만에 3쇄를 돌파했다. 자연스럽게 이 교수는 종북 전문 스타 강사로 떠올랐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군부대 등에서 57차례의 안보 강연을 한 이 교수는 강사료만 1400만원가량을 받았다. 물론 외부 강연은 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다. 이 교수와 강의를 함께 다닌 한 인사는 “종북이나 보안 관련 강의 때 자주 마주쳤다. 현대사상연구회 부회장 직함으로 나왔지만, 스스로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라고 스스럼없이 소개했다”라고 말했다.

 

 

 

 

이희천 교수는 국정원 대변인실을 통해 “〈반대세…〉는 개인적으로 저술한 것이고, 집필 과정에서 국정원장의 재가라든지 이런 건 전혀 없었다. 개인의 일이고 아내가 출판사 대표가 맞다”라는 해명을 해왔다.

하지만 국정원과 무관한 점을 강조한 이 교수의 해명은 석연치 않다. 그의 해명대로라면, 그는 ‘직원은 직무 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원장의 허가 없이 다른 업무를 겸할 수 없다’는 국정원법상 영리업무 및 겸직 금지 조항을 어긴 셈이 된다.  공무원법도 똑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비록 아내를 출판사 대표자로 내세웠지만, 그의 해명대로라면 사실상 자신의 개인 출판사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 인영사가 펴낸 두 권의 책을 제작한 곳도 실제로는 따로 있었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ㅍ출판사였다. ㅍ출판사 대표는 “인영사 대표가 책을 잘 못 만들었다. 제작을 좀 해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서 제작비를 받고 만들어주었다. 국정원이 (뒤에) 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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