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주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깊은 성찰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줄줄 외웠던 시가 있는가 하면, (건방지게) ‘이건 시도 아니야’라며 내친 시집도 제법 여럿 있었다. 시를 단지 시로만 읽던 시절의 못난 치기였다. 세월이 조금 흘러 세상을 단편적으로만 보지 않게 되자 시가 다시 품으로 날아들었다.

그래서일까. 〈시로 읽자, 우리 역사〉는 (식상한 표현이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시로 읽자, 우리 역사〉는 뜨겁게 굽이친 우리 근현대사를 ‘시’라는 창을 통해 읽어낸다. 시만이 표출할 수 있는 “고도의 비유와 상징”의 세계를 통해 “시대와 역사”를 오롯이 재현한다. “시를 짓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역사적인 현실 속에 존재”하기에 시는 이 땅의 현실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비록 시인의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역사적인 환경에 놓이면 그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 또한 시다.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가다’라는 첫 주제에서 지은이는 동학농민운동과 안도현의 데뷔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엮어낸다. 전쟁에서 패한 뒤 관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의 형상은 장군의 위용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는 초라한 모습이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장군의 그것이었다.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는 말/ 오늘 나는 알겠네.” 그 형형한 눈빛은 이 땅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단지 어제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임을 알려준다. 또한 자유와 해방을 향한 민중의 몸부림은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을 통해 소개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 〈/font〉〈/div〉서울로 압송되는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두 번째 주제는 ‘분단과 독재의 굴레에 저항하다’이다. 해방 정국과 분단 과정을 신석정의 〈꽃 덤불〉과 엮고,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에서는 이승만 독재를 깬 4·19 혁명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백미는 5·16 군사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좌절시킨 민주주의의 대의를 시로 승화한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다. 김수영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라고 가슴을 쥐어짜면서 권력에 맞선다. “무엇이 큰일이며, 무엇이 사소한 일인지 분명히 밝힘”으로써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다.

“시는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

지은이가 마지막 주제로 삼은 것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통일을 향해 가다’로, 먼저 김남주의 시 〈학살 2〉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과 미문화원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1980년 12월9일, 전남 지역 농민회와 대학생들이 광주 미문화원에 불을 놓은 이유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김남주의 외침은 그야말로 다급하다. “보아다오. 음모와 착취로 뒤덮인 이 땅을/ 보아다오. 너희들이 팔아먹은 탄환으로 벌집투성이가 된 내 조국의 심장을.”

책의 대미는 하종오의 시 〈야외 공동 식사〉가 장식한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서 다문화 사회로 가는 한국의 현주소를 짚어낸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고통의 시공간이었다. 그래도 시만은 배곯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행복을 노래한다.

이 책은 한홍구 교수의 말마따나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버린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시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시의 비유와 상징이 단지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연대와 연표나 외던 역사에 신물이 난다면 〈시로 읽자, 우리 역사〉가 제격이다.

기자명 장동석 (출판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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