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목적지는 필리핀 레이테 주 타클로반이었다. 기자는 11월15일 오전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현지에 도착해보니 접근 불가였다. 치안이 불안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태풍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타클로반에서는 죄수 600여 명이 교도소 담장을 무너뜨린 후 탈옥했다. 무장한 이들은 시민을 공격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달아난 죄수들에게 경비대가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굶주림에 지친 일부 생존자는 상점을 부수고 침입해 식량과 생필품을 훔쳤다. 통제 불가였다. 어쩔 수 없이, 취재진은 현지에 함께 들어간 희망브릿지전국재해구호협회의 조언에 따라 레이테 주 오르모크로 목적지를 바꿨다.

세계적 휴양지, ‘낙원의 땅’이라 불리던 필리핀 세부는 ‘죽음의 도시’로 향하는 관문이었다. 세부 공항은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피해 지역으로 이동할 구호품과 구호단체, 취재진이 뒤엉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필리핀 정부는 응급구호 전진기지를 세부에 설치했다. 하지만 피해 지역 대부분에 전기와 통신이 끊겨 정확한 피해 상황조차 집계하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시사IN 이명익
11월8일 필리핀 중부 지역에 상륙한 태풍 하이옌은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가버린 듯했다. 태풍이 쓸고 간 지 일주일째. 집도, 음식도, 전기도, 교통도, 통신도 없었다. 생존자는 ‘지옥보다 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는 주검이 끼어 있었고 먹을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 주변을 뒤졌다. “타클로반에서는 생존자들이 좀비처럼 떠돌고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필리핀 스타’ 등 현지 언론은 시신들을 수습해 담는 가방조차 바닥났다고 보도했다.

타클로반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현지 상황은 풍문으로 전해졌다. 국제구호단체 한국JST 현지 관계자는 “도시 기능이 멈춘 상태라 피난도 중요한 방책으로 보인다. 돈이 많거나 외부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아무것도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은 마냥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옥’을 떠나려는 이들과 반대로 타클로반으로 들어가려는 외지인도 있었다.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비상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타클로반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시사IN 이명익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간 필리핀 타클로반과 오르모크 지역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11월15일 오르모크 공항에 몰려들었다.
ⓒ시사IN 이명익주민들은 오르모크 공항에 물자를 싣고 도착한 수송기에 빈자리가 생기면 이 수송기를 타고 지역을 탈출한다. 군인들이 그 ‘탑승 대기표’를 확인한다.
국제사회의 구호 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생존자들은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기색이다. 건물 잔해들로 막혔던 길이 뚫리면서 세계 각국에서 보낸 구호 물품도 속속 현장에 전달되고 있다. 타클로반 시내 곳곳에는 배급소가 차려져 난민들에게 식수와 쌀 3㎏씩을 공급했다고 한다. 고기와 음료수를 판매하는 가판도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국제구호단체 11곳 관계자들은 타클로반 시청에서 유엔과 함께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는 있지만 상수도는 물론 타클로반의 인프라 시설 80% 이상이 파괴돼 도시가 정상화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치안 확보가 급선무다. 필리핀 정부는 구호품을 실은 국제구호단체 소속 차량을 약탈하는 폭도가 있을 경우 발포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회장 양휘부)는 희망브릿지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최학래)와 공동으로 필리핀 주민을 위해 모금 활동을 시작한다고 11월15일 밝혔다. 케이블TV 채널에서 ‘ARS 060-701-1004(통화당 2000원)’ 모금 안내를 진행하고, 인터넷 홈페이지(www.relief.or.kr)를 통해서도 모금 계좌를 안내한다.

ⓒ시사IN 이명익오르모크 지역은 쓰러진 나무에 담장이 부서지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시사IN 이명익희망브릿지전국재해구호협회 등 한국 구호단체가 현지에 급파돼 교민으로부터 피해 상황을 듣고 있다.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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