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말 김영삼 정권의 노동부 장관에 불쑥 임명되고 보니 여러 난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복수 노조 인정 문제가 매우 시급했다. 그때는 단수 노조만 인정하는 법제여서 한국노총만 합법 노조로 인정하고, 전국노조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 나중에 민주노총이 된다) 측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법’이 아니라 ‘법외’라고 표현을 시정했다.

그런데 대규모 사업장 노조는 거의 전노대 소속이어서 노동부로서는 노동쟁의 조정을 하는 데 거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론상도 일단 노조가 구성되었으면 인정하는 게 순리일 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도 복수 노조 인정을 한국 정부에 계속 건의해오던 때라 현상 타개가 필요했다. 노동부가 설치한 노·사·공(노동자·사용자·공익) 대표의 연구위원회 소위에서도 이미 기업 단위 노조는 당분간 단수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상위 연합체에는 복수 노조를 당장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자기들만이 유일·합법 노조의 내셔널 센터라고 강력히 내세웠고 기업 측도 복수 노조를 귀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복수 노조를 허용하면 유령 노조를 만들어 진짜 노조 활동을 사실상 금지하는 편법이 안 통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중요한 일을 장관 혼자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대통령에게 거듭 거듭 결심을 해달라고 건의했다. 나의 줄기찬 요청에 대통령은 검토팀 구성안을 내놓았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재무부 장관·상공부 장관·노동부 장관 그리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5인으로 구성되는 팀에 판단을 맡기겠다는 것. 6개월에 걸쳐 5~6차례 모임을 연 것 같다. 그러나 노동부 말고는 요지부동 거부반응으로 일관했다. 아마 재계의 거부 의사를 의식한 것 같다. 그렇게 겉돌기만 하고 나의 임기는 끝이 났다.

오래 뒤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박세일 수석으로 하여금 상위 연합체만의 복수 노조 합법화를 입법토록 허락했다. 법안이 마련되고 내각을 거쳐 여당에 넘겨졌다. 그런데 거기서 탈이 났다. 여당 안의 검토팀에 한국노총 출신 의원과 극우파가 포함되어 있어서 민주노총 합법화를 몇 년 유예하는 것으로 손질해버렸다. ‘노동대란’이라고 언론이 이름 붙인 대대적인 노동 항의의 물결이 일어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에 가까워 큰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상은 지난 일의 스케치다.

지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성 취소 문제로 소란하다. 전교조의 역사는 복수 노조 문제보다 더 기구했다.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계속 인정하느냐 배제하느냐가 쟁점인데, 10월26일자 김태기 교수의 〈조선일보〉 기고와 강수돌 교수의 〈서울신문〉 기고문이 선명하게 대조되어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전교조에 대한 평가와 법제 문제는 별개, ILO 권고 따라야

나의 의견은 간단히 말해 전교조 주장에 손을 들어준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다. 힘이 빠졌다고 조롱받아오던 국가인권위원회도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성명을 내지 않았는가. 여기서 전교조가 활동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평가는 법제 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다.

조용히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볼 일이다. 김금수씨가 쓴 〈세계노동운동사〉가 3권 20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금년 초에 나왔다. 오랜 역사에 걸친 간난의 투쟁 기록이다. 한국만 보아도 근래 〈한겨레〉가 연재한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씨의 자전적 기록이 있다. 계속된 탄압은 물론 심지어 똥물 사건 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노동운동이 있고 노동법제가 있게 된 것이지 노동법제가 있고서 노동운동이 있는 게 아니다. 노동운동은 약자들의 방어 수단이다. 인권운동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민주화의 중요한 세력이다. 노동운동이 잘될 때, 구체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높을 때, 전체 국부에서 노동의 분배 몫이 커졌다는 통계가 있다. 그것은 서민 생활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다.

요즘 정부는 무언가 크게 착각하는 것 같다. 노동에 대한 일대 공세의 낌새가 드러난다. 미국의 한국연구자 그렌 D. 페이지 교수의 글에 이런 요지의 내용이 나온다. “한국인들은 권위주의 체제 스스로가 극단으로 흘러 제 풀에 망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면 파탄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잠깐 동안의 감각적인 해방을 의미할 뿐이고, 그리고 또다시 조여드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예감이 나쁘다.

기자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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