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은 미국 켄터키 주 버크스빌에 사는 스타크 부인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의 날이다. 그날 그녀의 아들(5)이 두 살배기 동생 캐럴라인을 자신의 장총으로 사살했다. 사고 당시 그녀는 집에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버크스빌의 게리 화이트 검시관은 캐럴라인의 가족들이 총의 장전 상태를 알지 못했다며 “어처구니없는 사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사고로 치부하고 끝내도 되는 걸까? 스타크 씨의 아들이 동생을 죽이는 데 사용한 장총은 이른바 ‘어린이용 생애 첫 총’이었다. 총기 제조업체 ‘키스톤 스포팅 암스’가 제작한 22구경 장총 ‘크리켓’이다. 지난해 스타크 씨의 남편이 아들의 네 살 생일을 기념한다며 선물한 것이다. 키스톤 스포팅 암스 사는 온라인 홈페이지(http://www.crickett .com) 등을 통해 ‘어린이용 생애 첫 총’ 시리즈를 판매해왔다. 나무 장총부터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핑크 총까지, 50달러에서 130달러 사이 가격으로 ‘생애 첫 총’을 팔았다. “총이 젊은 총잡이에게 안전의식을 고취해준다”라는 문구는 이 회사의 광고 내용이다.

이 사고가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치명적 흉기를 버젓이 판매하는 총기 제작업체가 있고, 이런 종류의 총을 선물로 주고받는 세상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AP Photo5월4일 휴스턴에서 열린 미국총기협회 총회에 참석한 열한 살 소년이 라이플 총을 살펴보고 있다.
어린이용 총기 잡지가 나오는 나라

‘총기 보유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는 나라 미국에서는 아이들도 총기를 만질 기회가 많다. 보이스카우트나 4H 클럽 같은 단체가 어린이 사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미국총기협회(NRA)는 2010년 한 해 동안 2100만 달러(약 229억원)를 들여 이 같은 프로그램을 후원했다. 미국 사격스포츠재단(NSSF) 등 다른 총기 단체도 이에 가세했다. 총기 제조사들로부터 연간 100만 달러(약 11억원)의 후원을 받는 청소년사격스포츠연맹(YSSA)은 2011년 미시간 주의 한 청소년 캠프에서 소총 23정과 산탄총 4정 등을 경품으로 나눠주었다. 또 지난해 가을 미국 육군 훈련소가 있는 조지아 주 포트베닝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군용 소총 사격 프로그램도 열렸다. 한 총기 단체에서 어린이들의 사격을 지도하는 교관 매트 씨는 “사격의 의의는 생명을 말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책임감과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기 단체들이 이처럼 어린이 사격에 돈을 퍼붓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총을 다루는 기회를 주어 총에 대한 무서움과 부담감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자난 5월4일, 텍사스 휴스턴에서는 미국총기협회가 주최한 어린이용 총기 쇼가 열렸다. 어린이 수백명이 총을 들고 모였으며 세 살짜리 아이들도 총기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 총들은 사실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흉기다. 그런데도 수많은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 총기 쇼를 즐겼다.

ⓒEPA개브리엘 기퍼즈 전 하원의원이 자신이 총기 사고를 당했던 장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국에는 어린이용 총기 전문 잡지도 있다. 〈주니어 슈터〉라는 잡지는 어린이들에게 총기를 다루는 법과 이벤트 등을 소개한다. 이 잡지는 2009년 여름호에 ‘부시마스터 AR15’라는 반자동 소총 예찬 기사와 함께 해당 총기 할인권을 첨부했다. 기사는 “(어린이 독자에게) 할인권을 부모에게 보여줘라. 혹시 아느냐. 크리스마스 아침에 AR15가 트리 아래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에 총을 받는 어린이들도 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사는 티파니(9)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분홍색 에나멜이 입혀져 반들거리는 생애 첫 총을 받았다. 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생애 첫 총을 받고 내가 어른이 된 듯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내에서 총기 관련 ‘키즈 마케팅’이 번창하는 현상에 대해 “총기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어린이 고객 확보가 필수적이다”라는 외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는 8~17세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한 뒤 “총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총기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또래 총기 전도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라고 권장한 바도 있다. 먼저 아이들에게 BB총이나 양궁 등을 하면서 목표물을 맞히는 데 재미를 들이게 한다. 이렇게 총기에 대한 거부감을 서서히 없앤 뒤 사격 연습을 통해 총을 재미있고 친숙한 필수품으로 여기게 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미국 총기 업체들은 총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비디오 게임을 후원하기도 한다.

매년 어린이 7500명이 총상으로 입원

그러나 어린이와 총기가 가까워져서 낳은 결과는 총기 사고의 빈발이다. 지난 4월에 뉴저지 주 톰스리버에서 브랜든 홀트(6) 군이 이웃에 사는 4세 어린이와 함께 놀다 그 아이가 쏜 22구경 장총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같은 달 테네시 주에서는 4세 남자 어린이가 친척 아주머니를 권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지난 9월23일 텍사스 주 오렌지카운티의 5세 남자 어린이는 보모가 거실 탁자 위에 둔 권총으로 장난치다 총알이 발사되는 바람에 숨졌다. 얼마 전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페옛빌에 사는 2세 여자 어린이가 아버지의 권총을 가지고 놀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9월에는 미국 네바다 주 리노 시 외곽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급우 2명이 부상하고 제지하던 교사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사건은 한 재학생이 수업 시작 벨이 울리자마자 반자동 권총을 꺼내들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본 8학년 수학교사 마이클 렌즈베리 씨가 총을 내려놓으라고 했으나 학생은 교사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이 학생은 놀라 대피하는 동급생들에게도 4∼5발을 쏘았고, 경찰이 긴급 출동하자 총기로 자살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총기로 숨진 아동·청소년은 1997년 317명에서 2009년 50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총기에 다친 어린이도 같은 기간 4270명에서 7730명으로 급증했다. 2009년부터 매년 7500명 정도의 어린이가 총상으로 입원했다. 이는 1997년에 비해 8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총기 사고가 빈발하자 황당한 상품이 뜨고 있다. 바로 어린이용 방탄조끼나 방탄 가방, 방탄 매트 등이다. 지난해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참사 이후 어린이 방탄 가방 제조업체는 판매량이 이전의 10배로 뛰었다. 이 업체가 파는 남자 어린이용 방탄 가방에는 영화 〈어벤저스〉 캐릭터, 여자아이 가방에는 ‘인어공주’가 그려져 있다. 가격은 150~300달러 선이다. 방탄 매트는 학교에서 평소에는 매트로 깔고 앉다가 유사시에는 담요처럼 둘러서 총탄을 막을 수 있는 상품이다. 어린이용 방탄조끼는 447달러 정도로 아이들의 총기 사고를 우려한 학부모들이 구입한다. 이제 미국은 아이들이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전쟁터 같은 사회가 되었다.

기퍼즈 전 의원의 호소

상황이 이런데도 총기 규제의 목소리는 의회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총기협회의 로비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수정헌법 2조는 국민의 무기 휴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지난 7월, 국회 상원 사법위원회 청문회에는 개브리엘 기퍼즈 전 하원의원이 어눌한 말투의 장애인이 되어 나타났다. 그녀는 2년 전 자신을 혐오하는 ‘반유대주의자’의 총에 머리를 맞고 중태에 빠졌다가 기적같이 회생했다. 애리조나 주의 유망한 젊은 정치인이자 달변가였던 기퍼즈는 당시 사고로 몸 일부가 마비됐고 언어장애를 안게 됐으며 시력도 절반가량 잃었다. 힘겹게 단상에 오른 그녀는 “(장애로 인해)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해야겠다. (총기로 인한) 폭력은 심각한 문제다. 너무 많은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고작 1분간 10여 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이번 연설을 하기 위해 그녀는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단어 하나마다 온몸을 쥐어짜며 남긴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힘든 일이겠지만 이제 때가 됐다. 행동해야 한다. 담대하게 용기를 가지자. 당신들의 손에 미국이 달려 있다.” 미국의 모든 어른들이 들어야 할 중요한 연설이었다. 아이들을 총기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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