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야구를 좋아하고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평생 지방의 말단 공무원이던 할아버지는 야구광이셨고, 나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내가 야구에 매우 강한 매력을 느꼈던 것은 이 스포츠가 사람의 인생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고, 투수라면 한 시즌 동안 몇 승을 했는지, 방어율이 어떻게 되는지 등의 잣대로 평가받게 된다. 95%의 잘한 수비보다 5%의 의도치 않은 실책이 경기의 결과를 뒤바꿔놓기도 하기에 중계방송을 보면 동료가 실수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선수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곤 한다. 동료들의 실책성 플레이에 벽을 주먹으로 치거나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선수들이 종종 구설에 오르는 건, 본인은 잘못한 게 없는데 다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근시안적으로 반응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연합뉴스2008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배영수 선수(왼쪽)가 안타성 타구를 잡은 1루수 채태인을 격려하고 있다.
내가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수 선수를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게 된 것은 바로 “상수야, 상수야” 사건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9년 후배인 유격수 김상수 선수가 어이없는 실책 두 개를 저질러 뼈아픈 실점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을 겪은 배영수 선수가 투수판을 밟고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김상수 선수에게 “상수야, 상수야”라고 크게 부르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그 장면을 보고 배영수 선수가 지금까지 프로야구 판에서 많고 많았던 1등이 아니라 한 팀의 정신적인 리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1등은 정해진 기준이 있을 때 그 기준에 맞춰 가장 뛰어난 효율이나 성과를 내는 사람 1인에게 주어지는 정량적인 칭호이다. 가장 승률이 높은 선수, 가장 방어율이 높은 선수 등을 말한다.

그에 비해 리더는 정성적인 요소들을 기준으로 공감대를 통해 형성되는 자리다. 구성원들이 “저 사람이 우리 조직을 이끌었을 때 우리가 잘되겠구나”라는 믿음을 가져야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근접하고 대다수가 넘치는 지식을 갖춘 상황에서, 리더라는 위치로 발돋움해 인정받는 게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고등학교 때는 저마다 날고 긴 경력을 가진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리더로 인정받는 것은 다른 팀원들의 열정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연합뉴스배영수 선수는 부상 이후 강속구를 버리고 제구력과 변화구를 앞세우는 투수로 재기했다.
다른 투수들보다 높은 ‘득점 지원율’

야구 통계 중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통계 가운데 ‘득점 지원율’이라는 수치가 있다. 어떤 투수가 등판했을 때 과연 타선이 얼마나 많은 득점을 내어 지원해주었는지 통계로 보여주는 것인데, 배영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다른 투수들보다 매 경기 1점 가까운 득점 지원을 더 끌어내고 있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것이, 야수가 실책을 했을 때 주먹으로 벽을 치는 투수가 마운드에 있을 때와, 큰 실수를 해도 괜찮다며 신경을 써주는 투수가 있을 때 동료들이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

멀리 진시황부터 로마의 술라와 읍참마속의 제갈량까지, 실수를 실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딱딱한 법에만 충실했던 지도자들이 결국 영속적인 사회체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에 비해, 자신이 암살당하면서까지 사람의 허물보다 가능성을 보고자 했던 카이사르가 장기간 이어지는 로마 제정의 체계를 확립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리더들을 많이 보유하지 못한 것이 최근의 여러 사회 불안들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를 ‘꼴통’으로, 다른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낙인찍기 전에 여유와 자신감을 먼저 보여줄 수 있는 리더는 정녕 없는 것일까?

나는 정치를 하면서 많은 전직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훌륭한 경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서민을 위한다는 구호를 끝없이 되뇌면서도 “클래스(계급)는 영원하다”라는 인식을 결코 내려놓지 못했다. 어떤 정책을 놓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던 그들은 전화를 걸었을 때 과연 나와 상이한 의견들이 캠프의 핵심 인사들에게 ‘본인의 이름과 함께’ 전달되는지만을 궁금해했고, 그런 눈도장 찍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우월적 위치를 보장받으려는 데 급급했다. 손아래 사람이 느꼈을 그런 불쾌함 하나 다독이지 못하는 분들이 어떻게 정치를 해왔던 것일까.

배영수 투수는 현역 최다승 투수이면서 2004년과 2013년, 9년 차이를 두고 다승왕의 자리에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실 배영수라는 이름을 다승왕 명단에서 다시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시속 150㎞ 이상대의 공을 던지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던 그는 부상의 여파로 140㎞ 초반대의 평균 구속을 가진 흔한 투수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만을 기억하며 술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많은데, 배영수 선수는 자신의 주 무기였던 강속구를 내려놓고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우는 새로운 유형의 투수로 거듭났다.

1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낙오와 좌절의 체감비용이 매우 커진 것이 아닐까.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원래 시작했던 곳 또는 그보다 못한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재기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사회의 활력소가 되던 시기와 다르게, 요즘은 한 번의 실수로 평생 재기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정치권이 줄기차게 ‘재도전의 기회’와 ‘성실 실패의 개념’을 구호화해보려 해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정치가 구호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누군가의 구호보다 배영수 선수의 행적 자체가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농담 삼아 페이스북에 “배영수 선수가 한국시리즈에서 5이닝 7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겠지?”라는 글을 올려놓았다. 내가 올해 한국시리즈에 입고 갈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 배면에는 25라는 숫자와 배영수라는 이름 석 자가 마킹되어 있다. 나는 그 옷을 입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늘 원하셨던 것처럼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할 테고,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고, 이치로 선수의 엉덩이를 맞히면서 웃음 아닌 웃음을 주기도 했던 배영수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기자명 이준석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