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다큐멘터리 작가 문영심씨(위)는 김재규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 평전을 썼다.

시작이 독특하다. 어쩌면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남자에게 적합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 작가 문영심씨는 김재규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 평전을 썼다. 그가 부산의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위험에 빠진 아이를 도운 일화나 건설교통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쏘려고 했던 장면들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빨리 읽힌다. ‘김재규란 이런 남자였구나’ 하면서 따라 읽다 보면 어느덧 그의 총구가 박정희를 겨냥하는 부분을 읽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법정 공방에서는 집중하며 천천히 읽게 되는데 그의 인간적 고뇌와 함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사이사이 박선호·박흥주 등 그를 따랐던 부관들의 인간됨도 꼼꼼히 짚어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된 지금, 김재규 평전을 쓰기에는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평전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인데 그 ‘동기’와 ‘결과’에 대한 해석이 납득이 안 되었다.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분석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저격 후의 행동인데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라고 말했다.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치밀한’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박정희가 죽어야 했던 이유에 주목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이유는 박정희가 죽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 했던 박정희를 김재규가 역사의 이름으로 처단한 것이 필연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집필 위해 법정 기록 등 방대한 자료 살펴

평전 집필을 위해 방대한 자료를 살폈던 작가는 “재판 당시 변호인들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어떤 자료를 배제할지를 더 고민했다”라고 토로했다. 작가는 배제한 자료로 세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당시 언론 보도다. 그 다음은 전두환의 기록이다. 마지막은 김계원 전 비서실장의 기록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김재규에 대한 정보를 왜곡했다고 보이는 기록은 과감히 무시했다.

저자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 그가 남긴 업적으로 △남산의 고문실을 없애고 강압수사 금지 조치를 한 일 △기구를 축소한 일 △해외정보업무 중심으로 중정을 개편한 일 △부장 판공비를 직원들 퇴직기금으로 만든 일 등을 꼽았다. 낯익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남재준 현 국정원장에게 요구하는 것들과 비슷하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이유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김재규가 평소 자주 인용하던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을 언급하며 힌트를 준다. ‘이치에 어긋난 것은 이치를 이기지 못하고, 이치는 법을 이기지 못하고, 법은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권세는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권세와 법에 의지하는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