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담았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낙후되어 있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인도가 IT 강국으로 급부상하는 등 국력이 약한 나라들이 강대국에 비해 좀 더 분명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전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소셜 공간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평등한지, 그 덕분에 얼마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열렬히 설파했다.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아랍 혁명을 이야기했고, 제주 강정과 희망버스,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야기했다. 그들이 바라본 소셜 공간은 토머스 프리드먼이 바라본 세계만큼이나 평평한 곳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몇 년간 국내외 유수 기업과 여러 기관의 의뢰로 진행한 다양한 소셜 미디어 분석 컨설팅 결과들을 뜯어보면, 소셜 미디어가 반드시 평평하다고만 할 수 없다.

ⓒ시사IN 이명익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열린 ‘강남 스타일’ 공연.
소셜 공간의 이슈 형성 및 확산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가 ‘봉건형 확산(feudal diffusion)’이다. 이 경우에는 이슈를 주도하는 영향력자(influencer)가 의제를 설정하고, 영향력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위 영향력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의제 설정 과정에서 하위 영향력자나 일반인들의 이슈 제기가 다소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영향력자의 승인, 즉 리트윗이나 공유를 통한 재확산 기회를 얻지 못하면 곧바로 사그라진다. 군주의 하위에 다수의 영주가, 그 밑에 다수의 기사가, 위계의 최하단에는 농노가 위치했던 중세 유럽 봉건제를 연상시킨다.

대표 사례가 연예인 팬덤이다. 아이돌 스타가 소셜 계정에 글을 올리면 해당 스타의 팬클럽 계정이나 소속사 계정, 혹은 연예 관련 매체 계정이 1차로 퍼뜨리고, 이를 일반 팬들이 2차 확산시킨다. 지난해 총선·대선 때 여야의 주요 논객들이 이슈를 생산하고 소비했던 것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하위 영향력자들을 충분히 거느리지 못한 기업 계정이 생산한 콘텐츠는 ‘봉건형’ 확산 패턴을 따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팬 구성 자체가 이벤트 당첨을 노린 체리피커(cherry picker) 위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유상종형(homophily)’이다. 평소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가, 특정한 이슈가 터지거나 관심을 끌 만한 공감거리가 생기면 갑작스럽게 관계망이 형성되면서 이슈가 확산된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강남역 침수 등 사건·사고 현장 사진이나, ‘레밀리터리블(레미제라블 패러디)’이나 ‘진격의 콜라(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오프닝 패러디)’ 등 기존 콘텐츠를 토대로 ‘쓸고퀄(쓸데없이 높은 퀄리티, 매우 잘 만든 콘텐츠를 뜻함)’로 만들어지는 패러디 영상들이 대표적이다.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비결

‘강남 스타일’의 세계적인 히트는 전반부의 ‘봉건형’과 후반부의 ‘유유상종형’ 이슈 소비가 결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반에는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위계화된 케이팝 팬덤이 ‘봉건형’으로 이슈를 소비하는 동시에 매스미디어 보도 등을 통해 세계 각지의 유명인들을 끌어들이며 확산의 폭을 넓혀갔다. 후반부에는 ‘강남 스타일’ 콘텐츠에 공감하는 일반인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유유상종형’ 확산 패러디물을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봉건형’ 확산과 ‘유유상종형’ 확산이 주를 이루는 소셜 공간은 평평하지 않은 공간이다. ‘봉건형’은 물론이고, ‘유유상종형’ 확산을 이뤄낼 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센스가 불균등하게 분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유상종형’ 확산을 통해 팬을 확보한 일반인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봉건형’ 확산 과정의 주역이 된다.

이처럼 소셜 공간은 끊임없이 ‘권위’가 재창출되면서 위계적인 본질을 유지한다. 그래서 기업이나 기관, 개인은 ‘평평한’ 소셜을 가정하고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안 된다. 그 대신 유력자와 이들을 정점으로 구성된 소셜 역학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동조자로 포섭하기 위한 메시지 전략을 면밀히 수립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대중이 ‘유유상종형’으로 소비하는 뜨거운 이슈가 무엇인지 주목하고 이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이종대 (트리움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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