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가까이 일본 제1야당이었던 일본 사회당의 정통성은 현재 중의원 7석, 참의원 5석을 가진 일본 사회민주당에 있다. 사회민주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한다.

ⓒReuters=Newsis 후쿠시마 미즈호(위)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다.

2003년 총선 패배로 도이 다카코 전 당대표가 물러난 이후 후쿠시마 미즈호(53)는 5년째 사회민주당을 이끌며 일본 사회에 진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쿠시마 대표는 변호사 출신에다 유창한 말솜씨로 TV 토론 패널로 유명했으며 남편도 인권 변호사다. 부부 성(姓)을 하나만 쓰게 하는 호적법에 반대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자기 성을 지키고 있다. 일본에 보수 양당제가 굳어가는 가운데 후쿠시마 당 대표가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은 한국 진보 세력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에게 한국 총선을 지켜본 소감을 물었다.

4월9일 한국 총선 결과를 봤나. 한나라당을 포함해 보수 정당이 200석 가까이 가져갔고, 민주당은 81석을 얻었다. 한국의 지난해 대선과 올해 총선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아쉬운 점이 있다. 특히 10년 동안 이뤄낸 몇 가지 성과가  후퇴할 것 같아  걱정이다. 1990년대까지 일본인은 민주주의 성숙도라는 면에서 ‘일본이 형, 한국·타이완은 동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한국은 민주주의·인권 발전에서 일본을 앞서나갔고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을 주목했다. 한 예로 우리 사민당이 관심을 가지는 호적법 개정·차별금지법 제정, 사형제 실질적 폐지 따위가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의 인권 발전 상황을 높이 평가해왔다. 하지만 최근 인권위를 축소하고 사형제 유지를 천명하는 등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소식이 들려와 걱정된다.

4년 전 10석을 얻은 민주노동당은 5석으로 절반에 그쳤고, 진보신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한국 진보 정당이 선거에서 몰락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은 극심한 경쟁 사회다. 비정규직 비율도 상당히 높고, 사회복지 제도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학교 입학을 위한 경쟁도 상당히 치열하다. 이런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패배감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역설적으로 민중은 보수적으로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한나라당을 자민당에 비교하는 이가 많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자민당처럼 장기 집권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자민당을 배우려는 의원이 있다. 자민당이 50년 넘게 국민의 지지를 받은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 자민당은 보수 우파 정당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색채는 약했다. 예를 들어 지방 주민들을 소홀히 하지 않아 도농 격차를 줄였다. 고령자와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 및 사회보장 정책을 추진했다. 소득의 재분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이 수십년간 자민당 정권을 인정해왔던 이유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 등장 이후 자민당은 미국 공화당식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지방 주민이나 고령자, 어린이 등 약자에 대한 배려 정책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국민은 등을 돌렸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최근 일본 정치를 보면, 자민당-민주당이라는 미국식 양당제가 정착될 기미가 보인다. 한국이나 타이완도 마찬가지 구도다.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는 한국 정치도 점점 양당제가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이 있다고 보는가? 

적어도 일본의 경우는 양당 정치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이렇게 된 이유는 소선거구 제도 영향이다. 선거구에서 한 명만 당선되면 다른 소수의 표가 무의미하게 되고 유력한 거대 정당에만 당선자가 몰린다. 유럽은 미국·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유럽은 비례선거 제도가 중심이니까. 예를 들어 녹색당은 전체 표 5%를 얻으면 중앙 의회에 몇 십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양당 정치를 피하려면 비례대표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 사민당도 우리 지지율에 걸맞은 의석 수를 확보하고 싶다.

양당제 정치 체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양당제가 되면 일본 국민은 자민당과 민주당이라는 거의 비슷한 당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될 뿐이다. 양당제가 이미 정착한 미국 의회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예 의회에 없다.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양극화 문제에 다소 관심을 갖고 있지만,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말하는 경제정책도 신자유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양당 제도는 국회에서 다원성이 없어지도록 만든다. 즉, 다수파를 향한 정책만 남는다. 사회 구성원이 다양한 것처럼 국회도 다양해야 한다. 국회가 여러 성향을 지닌 정당이 서로 견제해야지 모든 정당이 비슷하게 사고하면 균형이 없다. 일본 국회에서 당수 토론은 중의원, 참의원 10명 이상의 당만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민당도 공산당도 국민신당도 그것을 못한다. 그러니 사회 소수자나 약자를 위한 의제를 설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Reuters=Newsis 2007년 9월11일 후쿠시마 대표와 지지자들이 대테러특별법 연장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정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일본의 혁신 정당(사민당·공산당·신사회당)을 비교하는 사람이 있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 정당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라 조심스럽다. 다만 한 가지 말하자면 한국 정당은 단박에 그 정당의 지향점을 알기가 힘든 점이 있다. 우리 사민당의 경우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SI(Socialist International·사민주의 성향 정당의 국제조직. 사무국은 런던)에 가입해 있다.  여기에는 영국의 노동당, 스페인의 사회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노르웨이의 사회당 등이 포함된다. 이 정당들은 이름만 들어도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사민당의 목표는 뭔가?  우선 두 자릿수 의석을 얻는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민당 정책을 대중에게 알기쉽게 전파하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 도중 사민당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반도가 긴장하면 일본은 북한을 가상 적국으로 삼아 군사력 강화의 길을 택하게 된다. 남북 문제 악화는 일본 민주주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동북아시아 나라가 어떻게 하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 중시했으면 좋겠다.

또 역사 인식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 전후 보상 문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유골 반환, 재외 원자폭탄 피해자 문제 등은 노무현 대통령 정책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한국 대통령이 강조하면 일본 정부도 마냥 무시하지 못한다. 전후보상 문제와 관련해 외무성이 한국 정부 눈치를 보며 스스로 움직이던 때도 있었다. 한국이나 타이완 최고 권력자의 역사관이 일본의 외교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이런 것들은 물론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바른 역사관을 가지기를 바란다.

기자명 도쿄=김향청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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