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도 이곳저곳 걷고 오름도 제법 올라보았다면, 이제 제주에서 어디를 가면 좋을까? 근대문화유산이 있는 곳을 권한다.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제주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정읍을 중심으로 한 제주 서남부 지역을 권한다. 이 지역은 제주도 근현대사의 아픔이 집약된 곳이다.

제주도는 조선 시대에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황사영의 아내이자 정약용의 조카였던 정난주, 면암 최익현 등이 유배를 왔던 곳인데 이들은 주로 서남부 지역에 유배되었다. 이후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돌아올 때 표착(떠돌아다니다 정착함)한 이후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 지역이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알뜨르 공군비행장을 중심으로 오키나와를 잃은 일본군의 최후 방어선이 구축되고 4·3 사건 때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다.
 

ⓒ시사IN 고재열 알뜨르비행장


육지에서 보았을 때는 제주가 그리 큰 섬 같지 않지만 제주 안에도 지역색이 있다. 그래서 생선을 부르는 이름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옥돔을 서귀포에서는 ‘솔라니’라고 부른다. 사투리도 조금씩 달라서 외지인이 듣기에는 다 제주도 방언 같은데, 함덕 사투리 다르고 모슬포 사투리 다르다. 성향도 조금씩 다르다. 남쪽인 서귀포 사람들이 조금 더 느리고 여유가 있으며, 제주시 쪽은 그에 비해 좀 빠르다.

조선 시대 유배길

마라도와 가파도로 가는 배가 있는 모슬포의 이름은 ‘못살포’에서 왔다. 바람이 너무 세서 못 살겠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 모슬포항이 있는 대정은 날씨가 가장 혹독한 곳으로 알려져 조선 시대 주요 유배지였다. 조선 시대 헌법인 〈경국대전〉을 보면 ‘제주에는 죄가 아주 중한 자를 제외하고는 유배시켜서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사IN 고재열 대정여고

 

추사 김정희 선생이 9년여의 유배 생활을 바람 많은 이곳에서 보내며 서체에서 기름기를 쏙 뺀 추사체를 완성했다. 공식적으로는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위리안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강의를 다녔는데 기와집 모양의 단산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추사는 단산을 보고 ‘단산이 정말 산이로구나’라고 말했는데, 그 모양이 뫼산자처럼 생겨서 그랬다는 것이다. 대정 지역의 거친 바람은 ‘세한도’를 탄생시켰다.

추사 말고 조선 시대 제주도에 유배 온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광해군이다. 4년여 정도의 유배 생활을 하고 제주에서 죽었는데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는 처음 도착한 곳에 세워진 표착비뿐이다. 정확한 적거지(유배지)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호송하던 별장들이 윗방을 차지하고 그를 아래채에 재우는 모욕을 당했으며 심부름하는 계집종까지 그를 ‘영감’이라고 부르며 막 대했다.

김대건길과 정난주길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서해를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가 거센 풍랑을 만났다. 그와 일행이 바다를 떠돌아다니다가 표착한 곳이 제주도 용수리 포구다. 이곳은 현재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을 기념하는 성당과 기념관이 들어서고 라파엘 호도 복원 전시되는 등 천주교 성지로 꾸며져 있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된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에 유배당한 인물 중 가장 존경을 받았다. 유배 오는 길에 추자도 옆 관탈섬(관복을 벗어 절하고 제주로 들어오는 곳)에서 돌이 갓 지난 자신의 아기를 몰래 저고리에 싸서 바위틈에 숨겼다고 한다(아이는 이후 오씨 어부가 발견하여 키웠다고 함). 제주목의 관노로 37년간 유배 생활을 했는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위 사람들을 교화시켜 관노의 신분임에도 ‘서울할망’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시사IN 고재열 섯알오름

 


천주교 제주교구는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김기량의 묘, 1901년 희생된 천주교 신자 수백명이 묻힌 황사평 성지,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는 곳 등을 성지순례길로 개발했다. 이중 고산성당에서 용수포구까지 조성된 12.7㎞ 김대건길과 정난주묘에서 모슬포성당까지 7㎞ 구간에 조성된 정난주길이 제주도 서남부에 있다.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

제주도 서남쪽 모퉁이의 송악산은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최후 방어선을 이곳에 구축하면서 많은 일본군이 배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 관동군 주력 부대가 이곳으로 이주해 한때 병력이 7만명을 넘어섰다. 해안선을 따라 진지가 구축되고 미군 함정의 상륙작전을 막기 위한 해안포대가 해안 절벽을 따라 배치되었다.

인근 알뜨르에는 비행장이 구축되었다. 제주말로 ‘알’은 아래를 뜻하는 말로 ‘웃’의 반대말이다. 그래서 ‘알뜨르’는 아랫동네를, ‘웃뜨르’는 윗동네를 뜻한다.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너른 벌판인 알뜨르에 일제는 비행장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밭 가운데 콘크리트로 만든 격납고들이 남아 있다.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괌이나 사이판의 태평양전쟁 유적지와 같은 곳이 생길 뻔했다. 제주 상륙작전은 1945년 9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제주도 전에 점령된 오키나와에서는 일본군 6만5000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12만명이 희생되었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뻔한 흔적을 송악산 해안 절벽의 인공 동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합군 함정을 직접 타격할 ‘인간어뢰정(回天·가이텐)’을 숨겨두던 인공 동굴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제주도민들이 강제징용당해 삽과 곡괭이로 만든 곳으로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시사IN 고재열 백조일손지묘


백조일손지묘와 섯알오름

다행히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대규모 전장이 되는 것은 피했지만 민족의 분단은 제주에 또 다른 아픔을 남긴다. 바로 4·3 사건이다. 서남부 지역도 4·3의 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곳이 바로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다. 그 뜻은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어 시신이 뒤엉키고 같이 묻혀 무덤도 같으며, 제사도 같이 치르니 그 자손은 하나다’라는 의미다. 사연은 이렇다.

1948년 가을 시작된 토벌전이 다소 잦아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국적으로 ‘예비 검속’이 벌어졌다. 제주도에서도 과거 한 번이라도 토벌대에 끌려갔다 온 사람들이 다시 붙들렸다. 무죄로 판명돼 석방됐다 하더라도 한번 붙은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녔다. 그들은 알뜨르비행장 옆 섯알오름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일제 때 탄약고가 있던 자리로 웅덩이가 있었다. 사살된 시체는 뒤엉켜 콘크리트에 눌려 있었다(나중에 발굴된 유해는 백조일손지묘 유해발굴터 149구, 만벵디묘역 62구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몇 년 동안 현장에 접근조차 못했다. 군이 막았기 때문이다. 몇 년 뒤 힘겹게 사체를 수습했을 때는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뒤엉켜 신원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유족들은 뼈를 대충 맞춰 무덤을 조성했다. 그 무덤이 바로 ‘백조일손지묘’다. 이 묘역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파괴했다. 우리 군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일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묘비를 파괴한 것이다(파괴된 묘비가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다시 묘비가 만들어졌다.

자발적 유배지

비운의 유배지였던 제주도는 이제 뭍사람들의 ‘자발적 유배지’가 되었다. 지친 도시인들에게 가장 추천할 만한 섬이 바로 가파도다. 가파도에 내리면 시간이 멈춘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성큼성큼 걷지 말고 목표를 세우지 말고 섬 한 바퀴를 천천히 다 돌아보자.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해발 30m를 넘지 못한다. 이걸 목표 삼아 걸으면 어리석다. 가파도는 에돌아가는 섬이다. 지그재그로 걸어야 한다. 올레길도 그렇게 나 있다.

가파도에 가면 꼭 가파초등학교에 가보고(사실 섬이 너무 작아서 가볼 만한 곳이 몇 곳 없다), 가면 꼭 교가를 보길 권한다. 교가는 이렇다. ‘아침이면 붉은 해가 바다에서 뜨고/ 저녁에도 붉은 해가 바다에 지는/ 가파도는 남쪽 바다 외딴섬이나…/ 보이는 건 넓고 넓은 하늘과 바다/ 일년 내내 바닷바람 세차게 불어/ 나무들도 크지 못하는 작은 섬이나…’ 이렇게 슬픈 교가가 세상에 또 있을까? 그래도 아이들은 티 없이 밝다.

가파도는 이제 슬로시티, 청정섬으로 지정되어 차량이 통제된다. 주민 자동차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것도 곧 전기차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전기선을 땅에 매립하는 공사를 진행해 전봇대 없는 섬이 되었다. 나무도 거의 없는데 전봇대까지 없어서 눈이 편안하다. 골프장 카트가 질주하는 마라도와 스쿠터가 설치는 우도와 달리 가파도는 고요하다. 시간을 역주행하는 가파도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섬이 되고 있다.

 

제주올레에 숨어 있는 명물들

제주올레 10코스 화순금 모래 해변 옆에 배늘모살동산이라는 사구 언덕이 있다. 해변 모래가 바람에 날려 형성된 사구 언덕은 육지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제주에서는 제법 볼 수 있다. 육지에서는 태안의 신두리사구가 유명하다. 

제주올레 12코스 시작점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무인 카페가 있다. 그 무인 카페 2층에서 바다를 보았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토록 가슴 뛰게 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2453-1에 있다. 꼭 들러보길 권한다.

제주올레 14코스 시작점인 월령어촌복지회관 근처에는 ‘해녀콩’의 자생지가 있다.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아열대성 해안 식물인 해녀콩은 콩과에 속하는 덩굴성 다년초로 강낭콩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열매에 독이 있어서 먹을 순 없다. 그런데 해녀들은 이 콩을 먹었다. 왜? 애를 지우기 위해서. 임신한 몸으로는 물질을 할 수 없다. 그러면 남은 아이들이 굶어야 하므로 고육지책으로 해녀콩을 먹고 뱃속의 애를 지웠다.

바다가 거세고 들판이 넓은 제주 서남부에는 맛집이 많다. 사계리의 진미식당(064-794-3639)은 다금바리 요리로 유명한데 가격이 착하지 않다. 하지만 매운탕이나 지리가 좋아서 해장을 위해 들를 만하다. 한림항의 바다이야기 횟집(064-796-3444)은 연예인도 많이 찾는 집으로, 밑반찬이 푸짐하게 나온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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