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저자 박철수 교수는 사람들의 기억과 관심이 살아 숨쉬는 장소를 모두 쓸어 없애는 아파트를 비판하며 말한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넓은 아파트로, 재개발을 기다리며 갈아탈 준비를 구조화하는 지금의 아파트 단지는 마땅히 찾아갈 고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나고 유년기를 보낸 젊은 세대에게 이 말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아파트가 고향이다. 외국에 갔다가 서울에 돌아와 ‘성냥갑’이라 불리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면 고향에 돌아온 걸 실감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직장인 이인규씨(31)가 그렇다. 이씨는 지난 5월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 일부를 보낸 아파트의 추억을 담은 독립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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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서울 둔촌주공아파트는 이씨에게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시절을 보낸 소중한 곳’이다. 아파트 주차장은 같은 동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눈썰매를 타던 눈썰매장이었고, 발코니는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지였으며, 엘리베이터는 이웃 어른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정겨운 장소였다. 정이 없는 삭막한 주거공간이라고 혹평받는 아파트이지만 이씨는 어릴 적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과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어린 시절 이씨가 친구들과 뛰놀던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 승인을 받고 철거를 기다린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이씨의 추억 속에도 있지만 살벌한 부동산 정보 기사 속에서 3.3㎡당 3000만원이 넘는 재건축 투자 상품으로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아파트는 고향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 동의할 수 없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파트가 아닌 여러 주거 공간에 살아봤지만 꼭 아파트가 더 삭막하고 주택가가 더 정겹지도 않았다. 이씨는 “고향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 자체라기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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