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예산심사에서 삭감한 구미 한국노총(한노총)과 경총의 외유 및 행사성 예산 몇몇이 지난 6월 추경예산안에 다시 올라왔다. 이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지난 연말과 달리 한노총과 친한 의원이 많았다. 겨우 몇 개월 전 몇몇 예산이라도 살려달라던 의원들이 반년 만에 낯빛을 바꿔 통과를 밀어붙였다(결국 그들 뜻대로 되었다). 나는 구미 한노총을 향해 페이스북으로 ‘어용’ ‘양아치’라고 비난했고, 그들은 이를 문제 삼아 거칠게 항의했다. 과연 내 말이 틀렸는지 독자들의 판단을 구한다.

구미 한노총은 돈의 드나듦이 참으로 특이한 집단이다. 동네 곳곳에서 경로당에 텔레비전 넣어주기, 어르신 관광 보내주기, 각종 잔치 후원하기 등 기부 사업을 벌인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조합비에서 나왔다면 조합원의 동의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간 생색을 낸다. 백미는 친한 지방의원을 등장시켜 칭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주민들은 그 의원이 기부를 주선했다 여긴다. 이 기부사업의 핵심에 선 노조 간부 역시 전직 기초의원이며 정당 간부를 겸직하기도 한다.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비판이 자자하다.

ⓒ뉴시스2011년 2월28일 한국노총 창립 33주년을 맞아 열린 고용 안정을 위한 노·사·민·정 어울림 한마당 잔치.
그런데 이들은 동네에 뿌릴 재물은 있을지언정 자신들이 놀고 즐길 돈은 구미시가 대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구미 한노총은 ‘노·사·민·정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중국·베트남·필리핀을 다녀왔다. 담당부서 과장에게 물어보았다. “거기서 노사관계에 대해 대체 뭘 배워옵니까?” 2010년에는 스위스와 독일을 다녀온다며 구미시로부터 1억원을 타낸 뒤, 행선지를 중국·베트남으로 바꿨다. 자신들이 내기로 한 4000만원도 400만원으로 줄였다. 그 400만원 중 일부도 구미로 복귀한 뒤 술 선물과 부식비를 구입하는 용도로 지출했다. 그 밖에도 툭하면 ‘워크숍’이라며 관광성 예산을 챙겨간다. 재작년에는 택시기사 체육대회 예산 1000만원을 멋대로 등반대회에 옮겨놓은 뒤 “구미시의회가 예산을 삭감해서 올해는 체육대회가 없다”라는 허위 대자보를 게시했다.

나는 이들이 탄압받는 민주노조와 연대하거나, 불산 사태처럼 불안정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철저히 고립될 때 나서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구미시 근로자문화센터를 수탁하면서부터는 공공부문 노동자 처우에서도 슬슬 손을 떼는 분위기다(정작 한노총 계열 환경미화원 노조와 적극 연대하는 건 나다). 시를 상대로 투쟁하고 교섭해야 할 공간에서 거꾸로 사업권과 보조금을 받아먹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예산편성지침 위반하며 지지와 특혜 주고받아

구미시 예산편성지침에는 ‘특정 정당이나 공직선거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에는 민간이전경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나온다. 구미 한노총은 2010년에 현 구미시장을 비롯한 지방선거 후보들을,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명백한 지침 위반임에도 구미 한노총과 몇몇 지역 정치인은 ‘기부-지지-예산’이라는 고리로 끈끈하게 유착되어 있다.

이쯤 되면 겉만 노조일 뿐 관변 단체라고 봐야 한다. 노동 계급의식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혜성 예산에 집착하고 제 이권이 손상되면 길길이 날뛰는 구미 한노총은 정권의 하부기관이었던 옛 대한노총의 적장자이다. 이 오욕을 한노총이 전국 조직 차원에서 정리하지 못한다면, 평조합원들이 나서서 깨트려야 한다.

나와 구미 한노총의 대립이 조금 잠잠해진 뒤 한노총의 어떤 간부가 찾아왔다. “내가 구미 한노총 간부들을 사퇴시킬 테니 한노총과의 싸움을 일단락해달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진즉 하지 그랬나. 구미갑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구미 한노총 출신 인사들 몇몇이 출마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속셈이 너무 뻔하다. 나는 당연히 제의를 거절했다. 재선거든 연말 예산심사든, 구미 한노총은 흥정이 아닌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이번 호로 ‘풀뿌리  수첩’ 연재를 마칩니다.

기자명 김수민 (구미시의회 의원·녹색당·kimsoomin.ti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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