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가 된 사형수 ‘표정 관리’
  • 정희상 기자
  • 호수 32
  • 승인 2008.04.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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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여주교도소에 있는 공장에서 재소자가 작업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 이후 2007년 말까지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1100여 명 가운데 무기수로 감형된 경우는 총 48명이었다. 그 중 김대중 정부 시절 13명,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31일 특사에서 6명이 감형 혜택을 입었다.

무기징역 감형 대상은 최소 10년 이상 복역하고, 수감 태도가 좋은 모범수 가운데 선정한다. 오랜 세월 접촉하면서 교화를 맡아온 종교계에서 ‘선량한 성품으로 돌아선 정황을 보증한다’는 취지의 탄원을 하면 유리하다.

지난해 말 무기수로 감형된 사형수 중에는 1996년 괌 해상에서 페스카마 호 선상 반란 사건을 주동해 11명을 살해했던 조선족 중국인 전재천씨도 포함되었다. 2002년 이뤄진 사형수 감형 특사 때 여성 사형수 2명이 포함돼 청주여자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현재 사형수 58명 중에서 여성은 없다.

무기수로 감형돼 생명을 연장한 사형수는 대부분 자신이 거듭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식으로 감형을 받은 사형수는 대개 다른 사형수를 의식해 표정 관리를 한다. 그러나 그 기쁨이야 오죽할까. 그 자신이 사형수였다가 처형 직전 극적인 감형 조처로 목숨을 건진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전소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입을 통해 감형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형수는 처형되기 직전에 생각한다. 설령 겨우 서 있을 만한 여지밖에 없는 좁은 바위, 영원히 가시지 않을 암흑과 고독, 그리고 폭풍의 망망대해에 둘러싸인 그런 바위에 선 채 수천년, 아니 영원한 세월에 파묻혀 산다 해도, 그렇게 사는 것이 지금 바로 죽는 것보다 낫다. 오직 사는 것, 살아나가고 살아내는 그것이 어떤 인생인들 상관없다.” 

1990년대 중반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질러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가 지난해 말 특사 때 무기수로 감형돼 지방의 한 교도소로 이감된 이태진씨(가명)는 최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가 감형돼 무기수이지만 마음은 항상 사형수란다. 한약 가방 만드는 공장에 출역해오다 3월30일 공장을 옮겨 조적 2급 자격에 도전한다. 6개월 코스로 연말쯤 시험이 있다. 열심히 해서 꼭 자격증을 따고 1급에 도전할 것이다. 여기서 작은 돈이나마 번다면 내가 저지른 죄값을 만분지 일이라도 갚는 데 모두 쓰고 싶다. 기쁜 소식 하나 전한다. 어제 목사님과 어머님이 특별 면회를 오셨더구나. 그동안 차가운 철창과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만났는데 11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아보고 품에 안겨 한없이 울었단다. 난생처음 눈물이란 것이 시원하다고 느꼈다. 가슴이 뻥 뚫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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