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의 에피소드가 실마리가 될까. ‘땡전 뉴스’의 악몽을 기억하던 많은 이들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뉴스 화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대통령보다 대변인의 얼굴을 더 자주 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기괴하도록 낯선 광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할 양이면 거의 예외 없이 마주치던 첫 반응이 이랬다. “그래요? 대통령 선거 끝나고부터 텔레비전을 안 봐서요. 통 몰랐어요. 정말 그렇단 말예요?”
사실 순수하게 프로그램의 질로만 보자면, 올해가 특별히 다른 해보다 뒤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언제든 있기 마련인 눈살 찌푸리게 하는 타작이나 졸작이 없지는 않았지만, 꼼꼼히 짚어보면 평년작 정도는 유지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대박’이 없었던 것뿐이다. 어찌 보면 시청자들의 방송 수용 태도에서 활력과 역동성이 전례 없이 위축되었다는 새로운 조건에서, 방송이 이런 분위기를 뒤집어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다시, 이것은 드라마의 가시적 완성도와는 무관해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드라마 바깥에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이 아닌 다른 어느 시기였어도 이 드라마가 이토록 보잘것없는 성적에 머물렀을까. 굳이 제작진이 놓친 것이 있다면, 거창하게 말해서 ‘시대정신과의 교호(交好)’다. 요컨대 지금 이 시점의 대중은 그만큼의 스케일을 마음 편히 조망할, 그만큼의 긴장감을 기꺼이 즐길, 그만큼의 무게와 깊이를 처연하게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엔 그 어느 때보다 꽁꽁 닫혀 있고 너무나 지쳐 있다. 한마디로 〈황금의 제국〉에는 ‘신파’가 없다. 그 그림자조차 어른거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드라마로서의 성취가 오히려 흥행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렇다고 값싼 위로가 능사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낡아빠진 ‘신파’로 버무려진 ‘힐링 코드’조차 공허하기 짝이 없다는 것쯤은 대중이 더 잘 안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는 막막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힐링’이 시대정신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대중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파악한 소치다. 위로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당연히 거짓이겠으나, 언제까지나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이 시대와 조응하는 새로운 트렌드는 활력과 역동성의 불씨를 되살려낼 수 있는 실마리를 건드리는 지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것은 1970년대식 “잘 살아보세”의 재탕이어서도 안 될 것이고,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만연한 ‘희망 고문’의 거짓 선동에 머물러서도 곤란할 것이다. 옛것은 무너졌으되 새것은 오지 않았으니, ‘이성의 비관’과 ‘의지의 낙관’만이 길을 열어줄 것이다.
※ ‘TV 읽기’ 연재는 이번 호가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변정수·유선주 필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