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저 밧줄에 내 목이…”
  • 정희상 기자
  • 호수 32
  • 승인 2008.04.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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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사형수 58명이 있다. 평균 나이는 44세이고, 수감 기간은 평균 9년이다. 그들은 지금 죽음의 공포에 떤다. 교수형 집행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사IN>이 ‘사형수 58인의 현주소’를 정&
   
ⓒ시사IN 한향란
“마음을 찌르는 많은 (흉악) 사건을 지켜보며 침묵 안에서 제 가슴을 치고 또 쳤습니다. 불쌍하게 죽은 아이들과 또 마음으로 죽은 가족,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울분을 터뜨리는데 저는 마음을 움켜잡고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수님도 또 함께 죽었습니다…. 2008년 3월29일, 시몬 올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한 사형수가 최근 천주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조성애 수녀에게 보내온 편지의 한 대목이다. 혜진·예슬양 납치 살해 사건으로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가운데 과거 흉악 범죄를 저질러 사형수가 된 그는 요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마음의 두려움에서 나왔다면서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두려움을 이기도록 기도하겠다고 끝맺었다.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된 사형수 58명이 떨고 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부영 전 의원은 사형수에게 허용된 하루 30분 운동 시간에 구치소 내 운동장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는 “사형수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곧 교수형 집행을 지시할까봐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해 차마 옆에서 볼 수 없을 지경이다”라고 전했다. 4월1일 서울구치소의 한 사형수를 면회한 새문안교회 산하 ‘갇피아선교회’ 이인철 목사는 “혜진·예슬양 사건으로 사형수들이 몹시 움츠러들었다. 괜히 자기가 가해자인 것처럼 미안해하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라고 전했다.

   
ⓒ시사IN 정희상
지난해 서울구치소에서 성탄 예배를 보는 ‘붉은 명찰’의 사형수들.

지난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었던 터라 당사자인 사형수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다른 후보와 달리 사형제 폐지론에 유보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혜진·예슬양 유괴 살해 사건을 비롯해 잇따른 흉악 범죄가 고개를 들자 사형제 존치론에 부쩍 힘이 실렸다. 당장 목숨이 걸린 당사자인 사형수로서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단적인 공포의 나날을 보내게 된 셈이다.

그러면 현재 국내 사형수의 실태는 어떨까. <시사IN>은 현재 전국 구치소 교도소별로 수감된 사형수 58명 전원의 명단을 단독 입수한 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사형수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추적해보았다.

유영철 놓고 천주교·기독교 ‘교화 경쟁’

서울구치소에는 16년째 사형수 생활을 하는 원 아무개(51)를 포함해 사형수가 29명 있다. 원씨는 1992년 10월4일 원주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4명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35세로 대한지적공사 공무원이던 그는 아내가 여호와의증인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아내를 찾으러 갔다가 나오지 않자 홧김에 방화했다. 그의 아내와 딸은 피신해서 살았다. 당초 종교가 없었던 그는 사형 선고 뒤 기독교에 귀의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요즘 그에 대한 교화를 담당하는 새문안교회 ‘갇피아선교회’ 이인철 목사는 “피해자 측에서 원씨가 종교를 여호와의증인으로 개종하면 용서하는 탄원서를 내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끝까지 기독교인 처지에 서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수도권 서남부 지역을 무대로 묻지마식 살인 행각을 벌여 13명을 죽인 정남규와 2003년 사회에 적개심을 품고 21명을 무차별 연쇄 살인한 유영철도 서울구치소 사형수다. 또 1996년 지존파를 모방해 ‘막가는 인생’이라는 뜻의 ‘막가파’를 만들어 세상을 경악케 했던 막가파 두목 최정수도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지난해 말 피해자 가족 중 고원정씨가 용서를 선언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요즘 쥐죽은 듯 지낸다. 그도 그럴 것이 안양 어린이 유괴 납치 사건이 터진 직후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그를 직접 지목해 그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의 한 교화위원은 “유영철과 말을 나눠보면 자기가 저지른 연쇄 살인 행위에 대해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는 모양이더라. 오래 보니까 비교적 간사한 마음은 덜한 편이다. 아부할 줄도 모르고 고집과 배짱을 내세우는 기질이었다”라고 전했다. 유영철에 대해서는 천주교와 기독교가 경쟁적이다시피 교화에 힘쓴다고 한다.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 살인범 정남규는 2007년 4월12일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법원 공판 과정에서 “지금도 살인 충동을 느끼는데 독방에 갇혀 있어 답답하다”라고 말해 피해자와 세상을 경악시켰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정남규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분류한다. 알코올 중독인 부친과 살다 학교를 중퇴한 그는 범행 도구를 집안 곳곳에 방치했는데도 식구들이 몰랐을 정도로 가족과 단절돼 있었다.

사형 확정판결 후 1년 가까이 종교를 거부하던 정남규는 최근 스스로 종교를 찾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구치소의 사형수 교화 담당 교도관은 “정남규로부터 보자는 연락을 받고 만나보니 기독교에 귀의하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아 목사와 연결해주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한향란
서울 구치소 사형수 가운데는 외국인도 한 명 포함돼 있다. 중국인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2001년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서 부녀자를 상대로 두 차례 강도 살인을 벌인 왕리웨이(31)다. 그는 생활비 마련과 성욕 충족을 위해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6년째 수감돼 있다.

서울구치소 사형수 중에는 드물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2001년 4월 경기도 이천의 한 건강원에서 도박을 하다 개평 처리 문제로 말다툼 끝에 이 아무개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사흘 동안 평소 원한을 품었던 박 아무개씨 등 3명을 차례로 살인한 혐의로 구속돼 사형수가 된 천 아무개씨다. 그는 자기가 도박판에서 홧김에 살인은 저질렀지만 나머지 살인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는 최근 기독교계 교화위원에게 내보낸 편지를 통해 “제가 4명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다가 1심에서 2명의 살해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나중에 뒤집혔습니다. 내가 여자라면 환장한 놈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미인으로 소문난 여자를 손대지 않고 왜 죽였겠습니까”라고 적었다. 4명 중 2명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담당 교화위원은 “그는 자기가 다른 사형수에 비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무전유죄라서 중형을 받았다는 억울한 생각으로 자주 난동을 부려서 교화가 힘들지만 조금씩 변해간다”라고 말했다.

부모 살해한 박한상, 종교 받아들이지 않아

부산구치소에는 2000년 부산·울산과 충남 천안을 돌며 9명을 연쇄 살인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 흉악범 정두영을 포함해 사형수 8명이 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란 정두영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며 강도 행각을 벌이다 발각되면 닥치는 대로 둔기로 살해한 흉악범이다.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 7명 가운데는 국민의 뇌리에 ‘패륜 범죄의 대명사’로 선명히 남은 박한상이 있다. 한약상을 하던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박한상은 1994년 부모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뒤 집에 불까지 질렀다. 당시 박한상이 범죄자가 된 배경에는 고3 때부터 시작된 부모와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했다. 부모의 일방적 명령과 지나친 간섭을 못 견디고 유학을 택했지만 그것도 도피성이었다는 것. 결국 귀국 후 도박에 빠진 박한상은 도박빚에 시달리다 부모의 100억원대 유산을 노리고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아무도 동정하는 이가 없었지만 주변 지인들은 그에 대해 연민과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올해로 14년째 붉은색 사형수 명찰을 달고 살아가는 박한상은 아직까지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 많을수록 ‘묻지 마 살인’ 많아

이 밖에 사형수가 8명 있는 광주교도소에는 연쇄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 김해선과 성낙주가 끼어 있다. 김해선은 2000년 10월과 12월 전북 고창군을 무대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을 죽인 데 이어 남매를 살해해 사형이 확정됐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폭력에 못 견뎌 중학 2년을 중퇴하고 가출해 전과 7범으로 사회를 떠돌았다. 범행 당시 김해선은 죽인 소녀의 허벅지 살을 떼어내 먹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수사 과정에서 “살점을 떼어낸 것은 기억나지만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사형수인 성낙주(57)는 1994년 서울 성북구 월곡동에서 내연녀이자 황금장여관 여주인 전 아무개씨와 중학생 딸 이 아무개 양을 살해한 주범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의 한 소수 종단에 입적해 승려 생활을 했던 그는 한때 미아리에서 점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5억원대의 내연녀 재산을 노렸다.

그러면 사형수들은 범행 당시 어떤 사람이었고, 왜 잔혹한 범행에 이르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 <시사IN>은 사형수 58명 전원의 범행 당시 연령, 직업, 학력, 전과, 가정환경, 범행 동기 및 유형 등에 대한 분석 자료를 입수했다. 천안대학교 범죄심리학 김상균 교수가 담당한 이 분석은 지난해 말 사형수 전원의 판결문과 신상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사형수 58명의 평균 수감 기간은 대략 9년이다. 사형수 58명의 현재 평균 나이는 44세로 나타났다. 범행 당시 연령으로 보면 20대가 14명, 30대 25명, 40대 17명, 50대 이상 2명으로 평균 34세였다.

전체 사형수의 살인 유형을 분석해본 결과(중복 포함) 보복 내지 묻지 마 살인이 28건으로 가장 많았다. 금품 살인은 27건, 강간 살인은 11건, 유괴 살인이 8건이다. 이어 존비속 살해(2건)와 방화 살인(4건)이 뒤를 이었다. 특히 연령이 어릴수록 경제 목적의 살인을 많이 했고, 나이가 많을수록 보복 내지 묻지 마 살인이 많았다.

사형수 58명 중 32명(52%)이 범행 당시 직업이 없었다. 이는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어서 서비스업 종사자가 16명(26%)을 차지했다. 보험설계사·자영업자·회사원 출신도 9명이었다. 서비스업 종사 경력은 배달원, 술집 종업원 등이 많았고, 회사원도 선원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았다.

전과 3범인 사형수 임태빈(가명·41)은 얼마 전 자기의 교화를 맡은 조성애 수녀 앞으로 편지를 보내 살인 강도를 저지르게 된 동기를 털어놓았다.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불만을 품고 흉악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는 요지다. “처음에는 교도소에서 나와 마음잡고 살아가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과거 내가 저지른 범죄와 비슷한 사건만 나면 경찰이 의심하며 찾아오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감방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또 전과 때문에 취직은 고사하고 웬만한 잡부 자리에서도 거부당하면서 어차피 이 세상에서 나는 버린 몸이라는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흉악범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길러지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듯 대다수 사형수는 전과자였다. 사형수 58명 중 재범 이상 전과자는 73%에 이르는 41명이었다. 초범은 17명이다. 전과 11범 이상은 4명이다. 평균 전과는 4범이다. 초범에 사형수가 된 이들은 대개 정상 가정에서 자랐으나 지나친 물욕이나 아내 및 내연녀의 배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홧김에 잔인하게 일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범행 동기를 분석해보면 이욕(물질욕)이 30명으로 47.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보복이 19명으로 30.2%를 차지했다. 성욕은 6명으로 9.5%, 우발적인 살인과 가정 불화, 현실 불만이 각각 4.8%, 4.7%, 3.3%였다.

사형수 58인의 가정환경을 들여다본 결과 양친이 살아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소년기를 보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편모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8명, 편부 가정은 4명, 계모와 양부모 밑에서 자란 사형수가 각각 3명씩이었다. 특이한 사실은 고아로 성장한 사형수가 9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편모 슬하나 고아로 자란 사형수가 특히 보복 내지 묻지 마 유형의 살인을 많이 저질렀다. 이에 대해 천안대 김상균 교수는 “고아 출신은 성장기에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못 받고 반항심과 증오심을 키우기 때문에 사소한 이유에도 보복 살인을 하는 경향을 띠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 28년간 사형수와 그 가족을 만나 교화 활동을 벌여온 조성애 수녀는 “사형수는 대개 고아가 아니면 계모나 알코올 중독자 노름꾼 아버지 밑에서 자라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막판에 흉악범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사회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 초기에는 언론과 범죄학자들이 요란하게 정신 감정까지 하며 원인을 들이대지만 수감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결국 이들은 정신적 병을 몸에 지닌 채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종국에는 흉악 범죄에 이른다는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사형수가 되면 대부분은 인연을 끊고 다 숨어버린다. 사형수 가족은 ‘3대가 죄인’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 도망다니며 사는 것이다. 다만 친아들이 사형수인 경우 대부분의 어머니가 면회를 다닌다고 한다. 사형수의 어머니는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며 더러는 아들이 수감된 구치소 근처에 방을 얻고 아들 대신 참회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가족은 흩어져 숨어 산다. 결혼했던 사형수는 대부분 이혼당한다. 현재 사형수 58명 가운데 아내가 면회를 오는 경우는 2명뿐이라고 한다.

사형 확정판결 후 죽음을 기다리며 종교에 귀의해 뒤늦게야 스스로 ‘벌레만도 못한 삶’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사형수와 정을 나누는 이들은 뜻밖에도 일반 재소자이다. 서울구치소의 한 사형수 담당 교도관은 “혈육보다는 사형수와 같이 살아본 출소자가 꾸준히 면회도 오고 영치금도 넣어주는 경우가 많다. 사형수가 되고서야 사람이 변해 죽기 전에 베풀고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회와 용서’. 지난 수십년간 종교계 교화위원들이 사형수와 그 피해자 사이를 오가며 매달려온 숙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형수에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는 갑자기 들이닥친 상실감과 흉악 범죄에 대한 몸서리치는 기억으로 고통을 받는다. 졸지에 여러 가족을 잃은 경우는 생계마저 곤란해진다.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피해자가 사형수나 그 가족과 화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드물게나마 피해자 중에서 용서하는 경우도 있다. 연쇄 살인마 유영철에게 일가족을 잃은 고정원씨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지난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고씨는 집안에서 곤란한 처지가 됐다. 자녀가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형수와 피해자 가족의 용서와 화해를 추진해온 조성애 수녀는 “피해자의 어머니 중에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분도 더러 있지만 그분들도 자식에게는 이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다. 용서한 분들은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사형 집행해도 살인 사건 안 줄어

안양 혜진·예슬양 납치 살인 사건이 터진 뒤 일반 시민은 물론 정치권 인사까지 분노에 치를 떨며 ‘사형수에게 교수형을 집행하라’는 목소리를 높인다. 형사정책을 다루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흉악범 통제를 위해 사형제 존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사형 폐지론자들은 범죄 억제력이 없다고 통계를 들이밀지만 통계란 해석하기 나름이다. 지능적 흉악범은 대개 자기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사형제가 지난 10년간 사문화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흉악범이 줄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 실상은 어떨까. 천안대 김상균 교수가 법원의 사형선고와 살인율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었다. 1심 기준으로 비교적 사형선고가 많았던 1996년(23건)과 1999년(20건), 2000년(20건)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그 전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형수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던 기간이라고 해서 살인율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1990년대에는 1990년(14명)과 1995년(19명), 1997년(23명)에 대규모 사형 집행이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199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 19명을 사형 집행한 다음 해인 1996년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은 오히려 6% 정도 증가했다. 사상 두 번째 규모의 사형 집행이 있었던 다음 해인 1998년도와 1999년도는 그 전해에 비해 각각 17%와 19%씩 살인 사건이 늘었다.

“피의 보복인 사형은 ‘문화적 야만’ 행위”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사형 폐지론자들이 가장 당혹해하는 문제는 자기들의 주장이 마치 흉악범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호소한다. 흉악 범죄자를 엄벌에 처하고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자는 데는 이들도 이의가 없다. 다만 그 방법이 사형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형이 불가능한 종신형(무기징역) 같은 형벌제도가 흉악범을 영구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면서 세계 보편 흐름인 ‘생명 존중’에 발맞출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려대 법대 김선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수형자의 생명이나 신체를 절단하는 모든 잔인한 형벌이 폐지된 오늘날 사형을 유지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다. 그래도 사형을 유지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오늘날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사형제도가 존치돼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극형을 면하기 위해 완전 범죄를 꿈꾸게 된다면 범죄의 질만 흉포화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형벌을 유지함으로써 피의 보복을 부르는 문화적 야만 대신 고통스럽게 목숨을 부지하는 가운데 자기에게 잠재된 인간성을 구제할 최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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