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소송’ 끝까지 책임져라
  •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 호수 32
  • 승인 2008.04.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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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사퇴한 공직자에 대한 소송이 줄을 잇지만 어설프게 소송했다가 패소하면 나쁜 선례를 남겨 뒤집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소송만 제기하고 뒷짐을 져온 관행을 반성하고 치밀하게 소송에 임해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해 시민단체가 봇물처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천안의 한 시민단체는 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한 아산시 의원 4명을 상대로 지난 2월25일 소송을 냈고, 서울 강동구 6개 시민단체는 구민 266명을 모아 지난 6년간 중도 사퇴한 구청장 3명을 상대로 3월20일 소장을 냈다. 경남 지역 시민단체는 전직 남해군수와 거창군수를 상대로 한 소송을 위해 원고인단을 모집 중이다.

개인 욕심을 위해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줄줄이 사퇴하는 바람에 자치단체별로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보궐선거 비용이 들게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용은 중도 사퇴한 사람이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뽑아준 주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개인 영달만 추구하는 사람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그런데 이같은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가 당내 공천에서 떨어지자 다시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에 대해 2006년 이미 같은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2007년에는 비리 혐의로 중도 하차한 서울 양천구청장에게 손해배상이 청구되기도 했다. 이 소송을 낸 단체는 현재 소송을 제기·준비 중인 단체처럼 당시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원고도 모집했다.

결과는 모두 패소다. 열심히 싸웠는데 진 것이 아니다. 맹형규 의원에 대한 소송은 소를 제기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측에서 한 번도 변론 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판결문조차 작성되지 않았다. 전직 양천구청장에 대한 소송 역시 소장과 답변서 이외에 제출된 준비서면이나 자료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단체도 이같은 소송 결과에 자성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좋은 판결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1954년 흑백 인종차별에 관한 미국의 ‘브라운 판결’이나,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다가 세계 지식인의 도움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드레퓌스 사건 같은 판결은 그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역사마저 바꾸어놓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호주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삼성전자 주주대표 소송 등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연합뉴스
지난해 ‘대선 선거감시 특별위원회 출범식’을 하는 공선협.

집요한 소송으로 인종차별 역사 바꾼 ‘브라운 판결’

역사적 판결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습관·제도와 기득권 따위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기 때문에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브라운 판결’의 경우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라는 한 시민단체의 치밀한 준비와 3년에 걸친 집요한 소송 끝에 가능했다. 그 결과 수백 년에 걸쳐 뿌리박힌 인종차별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중도에 사퇴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정치의 자유라는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논란거리가 있다.

이처럼 도덕적으로는 정당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보는 시민단체의 관행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소송했다가 패소 판결을 받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겨 나중에 뒤집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어렵거나 중요한 소송일수록 치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도덕적 정당성만으로 사회를 바꾸던 시대는 지났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소명의식을 갖고 소송에 임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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