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자유를 도시에 심는 마을 공동체
  • 송주민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 활동가)
  • 호수 311
  • 승인 2013.09.0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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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면 소비 욕구가 사라지고 획일적인 소유의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박한 자유다. 마을 공동체는 이런 자유를 지향한다.
휴직하고 산 속에서 쉬고 있는 지금, 절간에 앉아 문득 왜 마을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지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소박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라고 결론 내린다. 군림과 착취가 만연하고 획일적인 소유의 가치에 둘러싸인 사회를 넘어, 존재가 존중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호혜가 그물망처럼 얽혀 어울리는 사회. 과도한 노동(OECD 최장 노동시간)으로 삶을 소외시키는 피로사회를 탈피해, 속도를 늦춰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삶, 자연과 벗하며 일상의 행복이 충만한 삶을 위하여.

비슷한 생각으로 인생을 꾸리려는 사람들을, 우연히 참여한 귀농귀촌학교에서 만났다. 그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도시에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도시에선 품위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고 소박한 삶을 꾸리기 어려웠다” “돈 많은 게 성공의 척도이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에 짓눌리게 되더라” “자연이 없고 여유가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송주민 제공</font></div>남원 귀농귀촌학교 수강생들이 지리산 생태마을을 탐방하고 있다.

시골에서 산 중턱의 절과 작은 마을만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느끼는 점. 소비와 오락의 자극으로 넘쳐나는 서울에서는 필요와 상관없이 사고 싶은 것이, 배고픔과 무관한 군것질 욕구가, 사색의 틈을 허용하지 않는 디지털 오락물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줄리 델피가 한 말이 떠올랐다. “바르샤바에 간 적이 있어. 공산주의 시절이었을 때야. 어느 날 묘지를 걷다가 갑자기 깨달았어. 2주 동안 그간의 내 생활패턴과는 떨어져 있었단걸. TV는 알아들을 수도 없고, 살 것도 없고, 광고도 없고. 그러니 오직 글 쓰고, 사색만 할밖에. 소비 강박관념으로부터 해방되니 자유로워지더군. 처음에는 지루했는데 곧 마음이 충만해지더군.”

귀농귀촌학교에서 얻은 깨달음

나도 작은 마트 하나 없는 시골에서 ‘그동안 나를 지배한 욕구는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마음에서 지워졌다. 그 자리를 수풀과 꽃과 냇물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풍경 관찰, 사색과 산책, 절에서 키우는 개와의 달밤 데이트, 리듬감 있는 굵은 빗소리 감상 등 자연이 주는 소박한 즐거움이 채웠다. 확실히 모든 것이 빠른 도시에 비해 시골은 속도를 늦추는 삶, 여유로이 주변을 둘러보는 관계 지향적 삶이 용이해 보였다. 귀농학교에서 만난 도법 스님은 “농촌 마을에서는 내가 주체적이고 자립적이고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라고 했다.

도시를 떠나야 답이 보일까? 귀농귀촌운동의 취지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 역시 도시 생활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의 현장 그 자체인 ‘지금 여기’서, 모순덩어리의 한복판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대면하며 살아보려는 욕구가 아직은 남아 있다.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든 “소유의 가치에서 존재의 가치로의 전환”(도법 스님)이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소박한 자유인으로 살려면, 서울에서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면, 최소한 지금의 정신없이 삭막한 모습에서 탈피해 더 생태적이고, 여유롭고, 자립적인 분위기가 이식돼야 함을 분명히 체감했다.

곧 서울의 ‘마을’로 돌아간다. 나는 시골에서 느낀 소박한 일상이 주는 평온함, 자연 속에서의 안락함, 느림과 여유, 좀 더 주체적인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감정을 거대 도시에서도 간직하며 살 수 있을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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