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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대표는 잘못을 사죄하라”

7월3일 법원은 정부 전복 사건으로 규정됐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함세웅 신부 등 사건 관련자는 당시 판사였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사과와 의원직·당대표직 사임을 요구한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3년 08월 19일 월요일 제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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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197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삼일절 기념미사가 열렸다. 마무리 기도를 대신해 3·1 민주구국선언문이 낭독됐다. “우리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 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삼일절 기념미사는 조용히 끝났다. 하지만 이튿날부터 사람들이 잡혀가기 시작한다. 서정각 서울지검장이 삼일절 기념미사를 ‘정부 전복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사건은 커져만 갔다. 선언문 서명자는 문익환 목사를 비롯해 함석헌·윤보선·김대중·문동환·이문영·정일형 등 10명. 박정희 정권은 문익환 목사 등 11명을 구속하고, 이태영 변호사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1심에서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문정현 신부는 “검찰에서 닷새 동안 잠을 안 재우고 거짓 자백을 하게 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정희 정권의 쪽지대로 판결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삼일절 기념미사 사건의 판사였다.  
ⓒ뉴시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삼일절 기념미사 사건의 판사였다.

‘정부 전복자’라는 누명이 벗겨지기까지 꼬박 36년3개월이 걸렸다. 지난 7월3일 법원은 “긴급조치 9호의 위헌성에 대해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1976년 재판에서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고 주장한 검찰도 무죄를 구형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는 “피고인들의 인권을 위한 헌신과 고통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이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재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함세웅 신부는 “선배 판사들의 잘못을 후배 판사들이 사과했다. 법률가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선임 판사들이 속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지목했다. “재심 결과가 나오고 한 달 이상 사과를 기다렸지만 당시 판사였던 황우여 대표는 싱글벙글 웃거나 싸우기만 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슬프고 아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font></div>삼일절 기념미사 사건의 법원 판결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삼일절 기념미사 사건의 법원 판결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황우여 대표, 학림 사건 때도 재판부 참여

이런 정서를 반영한 듯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관련 구속자 중 생존자인 문동환·이문영·이해동·신현봉·문정현·함세웅 등 6명은 8월19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에게 공개 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다. “재판부의 일원으로 3·1 민주구국선언 관련 구속자 일동은 당시 판결을 선고한 황우여 대표에게 지난 잘못에 대해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사임할 것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한편 2012년 6월에는 1980년대 초 반국가 단체를 만들어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전민학련·전민노련(속칭 학림)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이 있었다. 피고인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1년 경찰은 피의자들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19~44일간 감금한 채 전기고문 등으로 사건을 조작했다. 당시 고문기술자 가운데 이근안 전 경감도 있었다. 판사는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고인 25명에 대해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했다. 당시 무기징역을 받은 이태복 전 장관은 “재판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판사들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학림 사건 2심 때도 재판부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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