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의 최씨는 말이 느리고 좀 답답하다. 음식 플레이팅(요리를 보기 좋게 내는 것)이 서투르고 기껏 공들여 만든 요리를 제대로 설명할 줄 몰라 쩔쩔맸다. 항상 긴장하는 모습 때문에 연기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 그가 첫 등장부터 심사위원을 웃게 했다. 일본 요리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통해 요리를 시작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초밥 가게·반찬 가게 실패 거듭
처음부터 우승에 대한 집념이 강한 건 아니었다. 지원 당시 무료하고 힘든 데다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정규 과정을 밟은 게 아니라 ‘장난처럼’ 요리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롤이 아직 한국에 없을 때,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이거다’ 싶었다. 원래 평생 음악을 하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밴드를 하고 드럼을 배운 그는 입시 음악에 실패한 뒤 스페인어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스물네 살, 서울 신촌에 스시 가게를 열었다. 동업이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불화가 생겼고, 혼자 회전초밥 집을 열었다. 손님들의 음식에 대한 식견이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음식보다 나이·경력·출신 등을 물었다. 최씨 스스로도 본인이 하는 음식이 진짜인지 아닌지 몰랐다. 가게를 접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리사 학교에 들어갔다. 돌아와서 서울 잠실에 일본식 반찬 가게를 냈다. 만화가 그를 요리로 이끌었다면 지난한 ‘자영업 흑역사’는 일종의 수행 과정이었다.
〈미스터 초밥왕〉 속 주인공 쇼타 역시 요리 대회에 나가 경쟁자를 물리친다. 그의 요리를 맛본 이들은 ‘맛의 천국으로 혼이 날아갔다 왔다’ ‘최상급 모피로 목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부드러움’ 등 문학적 감탄사를 연발한다. 최씨 역시 만화를 보고 초밥을 만들어봤지만 대개 실패했다. 특히 고등어초밥은 너무 비렸다. 여러 번 반복해서 지금은 웬만큼 맛을 낸다. 언젠가, 만화에서 본 대로 병어 뼈를 얇게 끊어 초밥을 했는데 맛을 본 손님이 감탄하며 ‘셰프’라고 불러준 적이 있다.
탈락자를 보며 막막했다. 촬영 도중, 다니던 참치 무역회사에서 잘렸다. 반찬 가게도 두 달치 월세를 냈지만 결국 폐업했다. 생활이 엉망이 되었는데 지금 돌아가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노희영 심사위원이 그에게 가게가 안 된 이유에 대해 지적했는데 정확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장사가 아니라 조그만 공간에서 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심사위원들에게도 많이 들은 말이 음식 하는 데 들인 공이 결과물에 잘 안 보인다는 것. 장어구이를 하는 데도 손질에 오랜 공을 들여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졸였다. 최씨는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음식보다 그저 오이지에 물 말아먹는 게 좋다는 그. 요즘 그에겐 한판 붙자며 도전을 신청하는 사람이 있다. 상금으로는 일단 빚을 갚고 조그만 요리 전문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 도예가나 만화가, 화가에게 개인 작업실이 있는 것처럼 요리사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다. 당분간은 가게를 열지 않을 생각이다. 만일 하게 되면 테이블이 적은 곳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다. 〈미스터 초밥왕〉을 독파하던 데서 ‘마셰코’ 우승자가 되기까지, 왜 애써 덤덤해하는지 그간의 세월이 말해준다. 그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 〈최강食록〉은 8월 말 올리브TV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카레 하나 만드는 데 7시간이나 걸리는 레시피 등 비범한 그의 요리에, 다소 버벅대는 설명까지 보고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