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난감하게 하는 민원은 다른 지역구의 주민이 그 구역의 문제에 관해 제기한 민원이다. 이 민원이 구미시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 해당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이 자신을 건너뛰어 전달된 민원에 대해 불쾌해하는 사례도 생긴다. 본디 지역구, 그러니까 선거구란 의원을 선출하는 단위일 뿐 의원의 활동 단위는 아니다. 주민에게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의원을 골라 건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지역구 제도는 주민과 의원을 모두 구역별로 묶어두는 역기능을 낳고 있다. 구역을 ‘대변’하기보다는 ‘분할’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토호’나 ‘유지’라고도 불리는 구역의 주류 위주로 흘러간다. 또 구역 이슈는 대부분, 보편적인 민생이나 복지가 아니라 개발 사업이다. 이에 끌려가는 지방의원은 자연히 ‘개발 예산을 얼마만큼 지역에 따오느냐’에 함몰된 로비스트로 전락한다. 난개발로 인한 예산 낭비는 필연이다. 로비스트는 행정을 견제·감시할 수 없다. 신경이 한쪽에 쏠려 있으니 조례 입안도 부진할밖에. “우리 지역에 예산 많이 따오라”는 주민들은 “지방의원들이 일을 안 한다”라고 책망할 명분이 없다.

ⓒ뉴시스7월21일 민주당 여성위원회가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날 한국 지방자치의 낮은 수준이 ‘토호’와 ‘개발’에 얽혀 있음을 인정한다면 ‘지역 구획’의 정치야말로 제1의 개혁 대상이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개혁 논의는 온통 공천제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물들어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론자들 가운데는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현실을 방지하려는 취지로 폐지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공천제 찬반 논의와는 별개로, 우선 관심사를 선거구제로 돌리라고 주문하고 싶다.

중선거구제, 특정 정당 석권 쉬워

2006년 기초의원 선거부터 한 선거구에 한 명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없어지고, 2~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중선거구제는 분명 소선거구제보다 다양한 주민 여론을 대변한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적어 오히려 이것이 다수 정당의 인센티브로 변질된 탓도 있고, 특히 2인 선거구의 경우 다수 정당의 석권이 변함없이 용이하기도 해서, 의회에 여론의 다양성을 불어넣기에 아직 부족하다. ‘지역구 체제’도 여전히 공고하다.

이제 우리네 정치는 ‘대선거구제’ 검토를 회피할 수 없다. 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5인 이상을 선출하는 제도다. 기초지자체 전체 지역에서 한꺼번에 의원을 선출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선거구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서 지역구 체제를 완화하기라도 해야 한다.

단, 대선거구는 구체적인 선출 방식이 중요하다. n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후보자별 득표로 n등 후보자까지 당선시키는 방식은 후보의 난립과 너무 낮은 후보자 득표율까지 겹쳐지며 선거를 복불복 게임으로 몰아간다. 가장 좋은 대안이 스웨덴식 대선거구제다. 정당별로 후보자 득표 총합을 계산해서 의석을 배분한 다음, 당내 후보자별 득표 순위에 맞춰 당락을 가르는 방식이다. 정당 공천이 폐지된다면 정당의 자리에 ‘지역 내 주민 정당’이나 ‘후보자 조합’을 놓을 수 있다.

제도 수술은 기초의원뿐만 아니라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절실하다. 가령 대구시의회의 교육의원을 제외한 모든 의석은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구시의회 정당 명부에서 얻은 득표율은 55%였고, 새누리당 언저리의 친박연합까지 합쳐도 70%다. 30%의 표심이 의회 구성에서 버려졌다! 국회와 유력 정당이 기득권을 포기했다고 자부하려면, 스웨덴식 대선거구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쯤은 도입하라.

기자명 김수민 (구미시의원·녹색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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