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하고 있는 옥외광고물의 게시에 있어, 광고물의 내용이 성 소수자와 관련된 것임을 이유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과,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에 대하여 ‘성 소수자 차별금지’의 인권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지난 6월1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마포구청장에게 내린 결정문이다. 과연 서울 마포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마포에 사는 성 소수자 모임인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지난해 11월 구청이 운영하는 지정 게시대에 현수막을 걸기 위해 현수막 문구와 디자인을 관리업체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광고물관리 및 디자인 심의위원회’에 이를 상정하고, 광고 문구를 수정해 게시하라는 결정을 내렸다(지난해 이 심의위원회에서 광고물 내용을 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건 딱 하나뿐이다. 한 해 동안 마포구에 걸리는 상업성 현수막이 2000개가 넘는데도 말이다).

ⓒ민중의 집 제공마포 지역 인권단체들이 주최한 인권조례 토론회. 마포구의 현수막 규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구청은 심의위원회까지 열어야 했을까.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가 신청한 현수막 내용은 이렇다.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 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성 소수자를 일컫는 말이다).

구청은 이 현수막 내용 가운데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문구가 과장되었으며, ‘LGBT’가 직설적 표현이어서 청소년 보호·선도에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문구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성북구와 은평구 등에서는 똑같은 현수막이 아무런 문제 없이 내걸렸다. 그런데 왜 마포구청만 문제 삼았을까.

국가인권위도 이 문구들이 ‘광고물관리법’에서 규정한 금지 광고물에 해당되지 않으며 “과도하게 광고의 내용을 심사”해 결국 현수막 게시를 못하게 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또 이 문구에 한해 “이례적으로 객관성과 적정성 여부를 따진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LGBT라는 단어가 직설적 표현?

지난 7월25일 마포 지역 인권단체와 진보정당들이 공동 주최한 〈주민과 함께 만드는 마포구 인권조례,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이 사건은 마포구의 인권지수를 드러낸 대표 사례로 언급되었다. 발제를 맡은 정경섭 민중의집 대표는 “이미 유엔 등에서 쓰는 국제적 통용어인 LGBT를 문제 삼는 것은 인권 감수성의 문제 이전에 기본적인 인권 교육이 안 된 사례다”라고 꼬집었다. 토론에 나선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의 한 회원은 “국가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마포구청은 어떠한 반응도, 시정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자체에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을 제시하고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할 것을 권고한 이래 각 지자체들이 인권조례 제정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인권 현안은 뒷전인 채, 몇 가지 원론적인 조항들만을 담아 인권조례를 제정한다면 생색내기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권의 주체는 주민이고, 지자체는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할 책무가 있다. 따라서 인권조례는 그 제정 과정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주민 참여가 기본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인권 전문가, 지역 주민,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인권조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조례 제정을 추진하자는 주민들의 요구에 이제 마포구청이 답할 차례다.

기자명 오진아 (마포구의원·정의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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