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노경태씨(가명·23)는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동생과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나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번호 ‘052’로 시작하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그는 울산시 남구 달동에 산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을 노씨는 믿을 수 없었다. “사기인 줄 알았어요. 요즘엔 그런 거 많으니까.”

두 번째 전화는 병원 응급실에서 걸려왔다. 신분증이 있어서 신원 확인이 됐다고 병원 관계자는 말했다. 두 전화의 내용은 같았다. 그의 동생 정안씨(21)가 죽었다는 것. 여름방학을 맞아 삼성엔지니어링 하청업체인 다우테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2학년생 정안씨는, 이날 오후 5시31분께 작업 중이던 물탱크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7월26일 다우테크 공사 현장에서 물탱크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직원 3명이 숨졌다. 사고 수습 중인 직원과 소방관들.

형인 경태씨가 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노씨의 어머니 박경순씨(가명·49)와 아버지 노지환씨(가명·56)는 사고 당일 새벽 울릉도로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났다가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돌아오는 배편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인 7월27일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울산병원 빈소에 도착했다. 전날인 26일 새벽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나눈 게 둘째와의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어머니 박씨는 말했다. “(경찰에서 전화를 받고) 제발 우리 아들 신분증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길 바랐다. 나쁜 꿈이라도 꿨으면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작은 형님이 ‘기절해도 울산 와서 네 새끼 보고 기절하라’고 해서 겨우 정신을 붙들었다.” 말을 마친 박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박씨의 두 아들 중 첫째는 상주가 됐고, 둘째는 하얀 국화꽃으로 장식된 영정사진 속에서 연두색 티셔츠를 입은 채 웃고 있었다.

정안씨는 1992년 2월13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울산에서 나왔다. 울산의 한 대학교 전기공학부에 2010년 입학했다. 2011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강원도 철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제대 뒤인 3월 바로 복학을 해 한 학기를 다녔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정안씨는 ‘애교 많은 둘째’였다. 정안씨를 옆에서 본 이들은 “처음엔 내성적인데 친해지면 활발하다” “밝고 싹싹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스페인 프로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했다.

정안씨는 학교 성적이 좋아 거의 매 학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실했다. 전역한 뒤로는 특히 취업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이나 포스코, 삼성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는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하는 형 경태씨와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 카페 ‘취업뽀개기’에서 주관하는 ‘합격 자소서 24시간 자유이용권’ 이벤트 링크를 공유하기도 했다. 정안씨의 동기인 이 학교 전기공학부 2학년 이인선씨(22)는 “아무래도 친구가 삼성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했으니까 실무 경력을 쌓으려고 그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알바 하던 곳이 삼성 쪽이니까”라고 말했다. 정안씨는 △한국전력 △포스코 △삼성 △GS칼텍스 등 4개 기업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렀다.

아르바이트생 1명 사망, 2명 중상

정안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학교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7월 초 삼성엔지니어링 하청업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알바비’를 등록금에 보태 부모님 부담도 덜고 용돈도 벌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새벽 5시30분에 집을 나서 오후 6시에 퇴근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야간·주말 근무도 했다. 정안씨는 자신의 아르바이트에 대해 “일도 어렵지 않고 돈도 많이 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일당은 9만원이었다. 정안씨는 “일은 안 힘든데 땡볕 아래에서 물이 새는지 안 새는지 봐야 하는 게 힘들다”라고 말했다고 어머니 박씨는 전했다. 정안씨가 사고를 당한 7월26일 울산의 기온은 36℃까지 올라갔다.

ⓒ시사IN 신선영물탱크 사고로 숨진 노정안씨의 장례식장. 노씨는 삼성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길 원했다.

이날 사고로 정안씨 외에 삼성엔지니어링 기계팀장 최만규씨(50)와 다우테크 현장소장 서규환씨(45)가 숨졌으며 1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가운데 중태에 빠진 두 명 역시 정안씨처럼 다우테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청년으로, 현재 울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ㄷ대를 졸업한 최현철씨(28)는 뇌출혈로 중태에 빠졌으나 사고 나흘 만인 7월30일 어눌하게나마 말을 하는 등 상태가 호전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정안씨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준 동아리 선배 정유환씨(26)는 뇌 손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다. 통증 완화를 위해 수면치료를 하고 있다. 정씨는 ㅇ대학 전기공학부 4학년으로 8월에 졸업할 예정이었다. 중국에 있는 한국 대기업의 한 하청업체에 취업이 결정돼 있던 정씨는 오는 12월 출국하기 전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정씨는 사고 일주일 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부산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물 채우는 거니까 찼는지만 확인해주면 된다’는 다우테크 현장소장의 전화를 받고 테스트 작업에 투입됐다. 병원에서 만난 정유환씨의 아버지(55)는 “그때 끝내버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학생들이 뭘 아나. 학비 벌어 부모에게 보탬이 되려 하거나 놀러 가려고, 혹은 책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런 위험한 작업에 아르바이트생을 참여시켜 하나를 죽게 하고 둘을 중태에 빠뜨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개인택시를 모는 정씨는 요즘 다리가 후들거려 일도 못 나간다. 소주 두 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아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전화벨만 울리면 “간이 떨어진다”. 2주에서 한 달까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깨어나더라도 귀 뒤에 골절을 당해 청각을 잃을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삼성그룹은 물탱크 사고 책임을 물어 8월1일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경질하고 후임 대표에 박중흠 운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원청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은 유가족과 보상 합의를 모두 끝냈다. 정안씨 가족은 진통 끝에 보상에 합의했다. 정안씨의 형 경태씨는 “동생을 언제까지 여기에(냉동고에) 둘 수 없어 합의했다. 삼성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안씨 가족은 7월31일부터 사흘간 장례를 치른 뒤 8월2일 정안씨를 화장했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했던 스물한 살 대학생 정안씨의 유골은 경주 하늘마루 봉안당에 안치됐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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