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는 한국영화계의 일대 사건이다. 미국 기준으로는 중저예산 영화라지만, 한국에서는 역대 최고인 43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다. CJ엔터테인먼트라는 대기업 계열 큰손이 참여한 덕분이다.

세계화, 해외진출이라는 화두에 목매인 한국민이 흥분할 요소로 차고 넘친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조감독들을 비롯한 다국적 스태프가 체코에서 촬영했고, 거의 전 세계인 167개국에 선판매되며 제작비의 절반을 개봉 전 회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게다가, 봉준호가 누구인가. ‘괴물’, ‘살인의 추억’ 등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하며 해외 시네필들에게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국의 대표감독 아닌가. 여기에 스크린으로만 접했던 크리스 에번스, 존 허트,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턴,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등 쟁쟁한 해외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했다니 가슴이 벅차오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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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언급하는 것조차 실례일 수 있겠지만, 300억원을 들인 심형래 감독의 ‘디 워’(2006)에 대한 무작정적 지지로 요즘 유행하는 ‘국뽕’(국수주의) 논란을 빚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설국열차’ 월드 프리미어 참석차 내한한 틸다 스윈턴은 29일 “예술에 있어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국적 이야기는 그만 물어 달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인’을 강조하는 질문에 넌더리를 대기도 했다.

어찌됐든 ‘설국열차’는 프랑스의 유명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형식)을 원작으로 했다는 국제적 화제성까지 덧입으며 기대만큼의 많은 찬사를 받았다. 봉 감독의 수년에 걸친 공력의 총화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설국열차’를 봉준호의 역대 최고작으로 꼽을 만하다는 일부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과 다른 제작시스템과 타국에서 영어로 씨름하며 겪었을 고생과 고뇌는 충분히 이해가 가나 이번 영화는 대중적 이해와 평단의 평가, 국제적 감각과 한국적 영역을 다 아우르면서 가려다가 나사를 꽉 죄지 않은 열차처럼 어딘지 모르게 삐그덕거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볼 때는 갑갑함을 감수해야한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일단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이 주는 폐쇄공포증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학살극, 그리고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주제의식이 그렇다. 영화가 기차 밖을 향하는 것은 마지막 시퀀스뿐이다. 그 외의 모든 신들이 기차 내에서 벌어진다. 좁은 객차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액션신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한껏 실현한 점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특히 기차가 커브를 돌 때 앞쪽 칸에 있는 프랑코(블라드 이바노브)와 뒤쪽 칸에 있는 반란군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번스)가 창을 통해 마주하며 총격전을 벌이는 구도는 상당히 독창적 미장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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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제약에서 오는 단조로움은 영화의 기본 설정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극중 윌포드처럼 어린시절부터 열차 마니아였다면 미친 듯이 빠져들 수도 있겠다.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불다’도 비행기 같은 기계를 좋아하는 남성팬과 여성팬들 사이에 호오가 확연히 갈렸다는 소식이다)

원작에서는 1001칸으로 구성된 열차가 영화에서는 100칸 정도로 축소되긴 했으나, 각 칸의 모습은 원작에 많이 기댔다. 양갱 같은 단백질블록을 생산공장, 정육냉동칸, 거대한 온실, 터널 수족관을 지닌 스시바, 나이트클럽, 마약·매음굴, 수영장, 사우나, 양복점, 치과, 서랍감옥칸, 윌포드에 대한 찬양세뇌교육을 받는 교실, 신성시되는 영구동력 엔진칸 등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맨 앞 칸부터 꼬리 칸까지 계급 순으로 나눠져 거주하고 개체수를 정확히 조절하는 것이 질서이고 이는 세계와 인류의 축소판이라는 열차의 절대자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친절한 설명에서는 맥이 빠진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쓰거나 번역돼야한 대사인지라 이리 직설적이고 재미없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모자는 머리에 쓰고 신발은 발에 신어야 한다는 이런 ‘순리’를 위해 지배세력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적 세계관도 이제는 진부하다. 국내에서는 특히 KBS TV 사극 ‘추노’ 등을 통해서도 익숙해진 테마다. 그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비유인데다가 돈과 권력을 가진 계층의 횡포에 대한 하급계층의 혁명은 인류역사상 지속돼온 투쟁 아닌가. 물론 결말이 갖는 함의는 다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도 강렬한 메시지나 여운을 남기기엔 만족스럽지 못하다.

원작 그래픽노블은 1970년대부터 자크 로브(시나리오)와 알렉시스(그림)의 구상으로 시작됐다. 알렉시스가 1977년 타계한 후 장마르트 로셰트가 합류해 1984년 출간됐다. 자크 로브가 1990년 세상을 떠난 후 장마르크 로셰트는 뱅자맹 르그랑과 함께 시리즈를 재개해 2000년 마무리지었다. 처음 원작이 계획되고 나온 70~80년대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상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리 신선하거나 파격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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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디스토피아 SF라고 불러야할 지도 의문이다. 물론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첨단기술이 등장해야만 SF는 아니다. 2014년 온난화 방지를 위한 물질 CW-7을 살포하며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오고, 그 안에서만도 생존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세계 순환열차에 탑승한 사람만이 18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설정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열차는 기술문명의 발전을 상징하나 이미 산업혁명기에 등장한 구물이다. 지배층에 속한 병사들이 지닌 총도 4년 전 반란에서 총알이 ‘멸종’된 탓에 열차 안에서 상당히 구시대적인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초반부는 지난 세기 홀로코스트가 더 연상된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끌고가며 창문도 제대로 없는 동물수송칸을 이용했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그들에게 샤워를 시켜준다며 가스실로 끌고 갔다. 의사, 교수 등 전문직 유대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어느 홀로코스트 영화에는 나치 장교들이 이송 중인 음대교수를 끌어와 식사 중 바이올린 연주를 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화물칸을 개조한 수용소에서 인원점검을 받고 필요에 따라 뽑혀가는 꼬리칸 사람들의 모습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항하면 얼어붙은 열차 밖 공간으로 팔을 내밀게 해 얼어붙게 만든 후 망치로 내려쳐 깨버리는데, 나치와 일본 731부대가 저지른 생체실험이 상기된다. (미국 영화계를 쥐고 흔드는 것이 유대계이긴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유대계 영화사임을 알 수 있는 메이저 스튜디오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북미를 비롯, 영어권 국가의 배급권을 확보했다)

감독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가 꼭 한국어를 써야했는지도 의문이다. 송강호가 연기파 배우임은 틀림없지만 특유의 어투는 다른 배우들과 유독 유리돼 보인다. ‘괴물’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딸 역을 맡은 ‘트레인 베이비’ 요나(고아성)도 향정신성물질 크로놀 중독자라고는 하나 너무 들떠있고 정신이 나가 보인다. 이들 부녀가 영화의 코믹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결의에 차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타배우들과 조화를 이뤘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열차 안에 다인종·다민족이 거주하고 있고, 즉석 통역기를 사용한다는 설정도 그럴듯하나 그를 ‘냄’이라고 부르는 영어사용자들에게 한국어로 “남궁이 성이고 민수가 이름”이라며 무식하다고 타박하는 대사가 꼭 들어갔어야 했는지 역시 의문이다. 문화차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에피소드다.

송강호의 한국어 사용에 대해 봉 감독은 “송강호는 이미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영어 대사를 소화해냈고, 열차 내 다양한 민족이 타고 있다는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어 등도 삽입됐다”고 해명하긴 했다. 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브 박이 맡은 푸위는 중국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괴리감이 몰입을 흩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대한 송강호의 해명도 있다. “남궁민수는 ‘패러다임 전환자’이기에 이질적인 느낌으로 그려지고, 이런 이질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타언어권에서는 그의 개성적 말투가 어떻게 느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커티스 역의 ‘보스턴 엄친아’ 크리스 에번스의 연기는 깊이감이 부족하다. 그가 열차 꼬리칸에서 있었던 잔혹한 일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게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 돼야함에도 전달력이 미치지 못한다. 반면 윌포드의 최측근 메이슨 총리 역의 틸다 스윈턴은 여러 유명배우들 틈에서도 잊혀지지 않을 명연기를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연극배우 출신으로 좁은 공간에서 극적 연기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들창코로 분장하고 두꺼운 돋보기안경에 틀니를 낀 파격적인 외모변신으로 거만하고 히스테리컬하면서도 비열한 메이슨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또 한 명 더 꼭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배우는 만삭의 여교사 역을 맡은 앨리슨 필이다. 우디 앨런의 사랑을 받아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에 연달아 출연한 바 있는 이 캐나다 출신 여우는 아이들에게 윌포드의 업적을 주입시키는 사이비종교 광신도 같은 표정 연기와 열광적 제스처로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코믹함에 바로 이어지는 반전 연기도 인상깊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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