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외우기 어렵다. 수차례 들어도 헷갈리는 20음절. “그 뭐지? 색채가 없는 누구의 순례.” 평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른 두 여성이 판매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찾던 책이 눈앞에 허리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한 명은 이미 책을 읽었지만 제목을 외우는 데는 실패했다. 대신 ‘하루키 신작’이라 불렀다. 최민석 소설가는 책 제목을 그렇게 붙인 건 “하루키라는 이름 자체가 곧 제목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도무지 외우기 힘든 긴 제목이 자신감의 다른 이름으로 들렸다.

ⓒ뉴시스7월1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하루키 신작 오프닝 이벤트에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7월1일 국내 출간된 〈색채가 없는 다자키…〉는 초판 20만 부를 인쇄했다(일본 50만 부). 열흘 만에 10만 부를 추가로 찍었다. 민음사가 낸 책 중 단행본으로는 유례없는 기록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출간 전 예약 판매량 역시 전작 〈1Q84〉보다 3배가량 많았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워낙 팬층이 두껍고 지난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힐링 열풍과도 맥이 닿아 보이는데, 다자키 쓰쿠루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20~30대의 성장 담론과 맞물린 것 같다. 여름 소설 시장의 정점에 내놓아 타이밍도 절묘했다”라고 말했다. 문학을 넘어 이미 하나의 기호가 된 하루키와 한국적 상황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이유는 많다. 1990년대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 신드롬을 통과한 ‘하루키 세대’(지금의 30~40대 초반)는 추억과 재미를 찾는다. 당시 하루키 문학은 개인·일상·취향으로서의 대중문화 역시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첫 증거였다. “1997년도 대학 2학년 때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서양 고전들은 너무 지루했고 국내 (후일담) 소설들은 너무 이데올로기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하루키의 책은 사회성을 배제한 읽기 편한 책이었다.(트위터 아이디 ulan**)” 하루키를 읽지 않는 이유도 뚜렷하다. “시대에 대한 고뇌가 없이 철저히 개인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적당히 읽고 킥킥거리다가, 책을 덮는 순간 뭘 읽었는지, 그냥 휘발된다.(dlxo**)” 달리기와 재즈를 좋아하는 64세 소설가, 데뷔 35년째에 서점가에 ‘줄 서서 책 사는 풍경’을 부활시킨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2009년,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일본 문학을 둘러싼 한국 독자의 반응이 열광 혹은 냉소,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이분법에 갇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중 하루키는 그 온도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가다.

대중의 열렬한 반응과 달리 오랜 기간 냉소를 보인 건 문단이었다. 민음사가 제안한 선인세는 16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1995년 〈태엽 감는 새〉가 1만5000달러 수준이었으니 근 20년 사이 100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한국 작가의 경우 1쇄 3000부를 찍는다고 가정할 때 선인세는 300만원 정도. 스타 작가의 경우도 1억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1년에 출간되는 한국 소설의 선인세를 다 합쳐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못 미친다. 그를 바라보는 한국 문단의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한때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수준 낮음’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하루키 문학을 대중소설로 분류하며 순수문학과 선을 그었던 시절이다. 2006년 유종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하루키 소설을 ‘허드레 대중문학’이라 칭하며 그를 최고로 꼽는 대학생을 우려했다. 같은 해 〈교수신문〉의 조사 결과, 젊은 작가들이 꼽은 ‘가장 과대평가받는 작가’로 그가 선정됐다.

문단 내에서 하루키의 위상이 달라진 건 2000년대를 이끄는 작가들의 등장 이후다. 2009년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서 소설가 김사과씨는 “비웃음을 당할까 봐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나에게 하루키는 무엇을 말하든 그 이상이었다. 나는 그의 모든 글-소설·단편·에세이를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라고 말했다. 하루키를 통해 비로소 소설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일종의 커밍아웃이다. 김중혁 등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문화적 소양과 취향이 하루키의 영향권 아래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뉴시스무라카미 하루키(위)는 1990년대 <상실의 시대>로 한국에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은 그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2008년 국내 출간된 〈해변의 카프카〉를 기점으로 하루키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고 짚는다. 하루키에게 영향을 받은 30대 한국 작가들이 등장하던 시기인 데다 그가 세계적 권위의 프란츠 카프카 상(2008)을 수상하고, 노벨문학상 전 단계로 알려진 예루살렘 상(2009)을 받은 시점과 겹친다. 〈해변의 카프카〉는 2005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 10선’에 들었다. 

하루키에 대한 진지한 논의 드물어

국내 문단을 주도하는 주요 문예 잡지의 출판사는 하루키의 판권을 따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문학동네는 〈1Q84〉 출간 이후 동명의 계간지에 150쪽에 걸쳐 하루키 특집을 실었다. 조영일 평론가는 “과거 어떤 문예지에 하루키 관련 글을 기고하려고 하자 왜 남 좋은 일을 하느냐며 거절했다. 하루키에 대한 어떤 글을 실어도 경쟁 출판사를 도와주는 꼴이라는 거다. 그런데 하루키는 한 출판사하고만 계약하지 않는다. 다음 작품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역으로 하루키를 비판하는 일 역시 힘들어졌다. 한 익명의 문학평론가는 “(하루키 열풍이) 병인 것 같다. 이번 책을 우리 작가가 썼다면 빛도 못 봤을 거다. 대중소설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데 대중성과 예술성 다 잡은 것처럼 생각하는 게 문제다”라고 혹평했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는 어렵다. 하루키가 ‘수준 낮음’의 동의어였던 시절이든,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인 지금이든 제대로 된 논의가 나오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본 역시 본격적으로 하루키 문학을 평가한 건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열다섯 살 때 〈상실의 시대〉를 접한 후 하루키의 팬이 된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의 저자 임경선은 하루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20여 년에 걸쳐 체감했다. 그의 팬심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작품 자체도 있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하루키의 성실함 때문이다. “음악·요리·여행 등 다양한 장르를 이 정도 수준으로 파고들면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조영일 평론가는 그가 이룬 문학적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거라고 전망한다. 1990년대 초 우리가 받았던 충격이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 잡는 시기라는 것이다. “가끔 하루키 소설이 지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가 과연 모르고 하는 걸까. 그렇게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초기 에세이를 보면 우리 비평가 중에 그만큼 당대 문화와 문학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내공을 가지고 있다. 한 작가가 20년간 영향을 미친 사례가 없다.”

철도회사에서 근무하는 다자키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이번 작품은 〈상실의 시대〉 계보를 잇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일본과 달리, 전작보다 초기 반응이 좋은 건 〈상실의 시대〉에 대한 열광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빼놓지 않고 읽은 최 아무개씨(32)는 이번 책을 두고 “〈무한도전〉이다. 어쨌든 봐야 한다”라고 촌평했다. 재미가 있든 없든 ‘무한도전’이라 믿고 보는 것처럼 하루키 책이라면 덮어두고 읽을 만하다는 뜻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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