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활동이 마지막 쿼터에 돌입하는 이때쯤 초창기에 만났어야 했던 사람들과 뒤늦게 연이 닿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지역 밴드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를 이어준 것은 ‘예스 록 페스티벌’이다. 예스 록 페스티벌은 구미 지역의 스쿨 밴드, 인디 밴드, 직장인 밴드들이 구미문화예술회관에 총집결하는 장으로 2012년에 제6회를 맞이했다.

정확히는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가 아니라 페스티벌이 취소된다는 제보를 입수하면서 접촉이 시작되었다. 밴드들의 연락처를 파악해 확인하니 그들은 “취소된다고 담당자에게 들었다”라고 했다. 몇몇 밴드는 “예산이 부족해서 취소한다”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안에는 사업비 2200여만 원이 떡하니 잡혀 있다.

ⓒ김수민 제공지난해 7월 열린 ‘예스 록 페스티벌’. 밴드들의 청원으로 올해에도 개최된다.
1년 내내 이 페스티벌을 준비해오다 낙담에 빠진 밴드들에게 나는 청원제도를 안내했다. 청원은 국가나 지자체에 시민의 바람을 접수하는 제도인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 청원은 의회를 통해 접수하는 것이다. 소개 의원이 청원을 의회로 넘겨 심사를 받게 되며, 의회 의결을 거치면 집행부에 바로 접수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더 무게가 실린다.

청원에 돌입하자마자 문화예술회관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공연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이 와전되었다.” 그렇지만 재확인 결과 밴드들은 ‘공연을 잘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을 들은 게 아니었다. 한 밴드 측은 “‘취소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올해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필요하면 증거를 댈 수도 있다”라고도 했다.

서명운동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아니, 그때부터 불이 붙었다. 청원은 ‘밴드 축제의 활성화’라는 전반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음악 하는 사람 우습게보지 말라’는 자존감도 크게 발휘됐다. 서명 용지를 접수한 6월3일과 4일 이틀 동안 1200여 명이 서명했다. 이를 받아든 의회사무국 직원이 놀랐다. 비결은 고교생들의 궐기였다. 조례안 주민 발의와 달리 청원에는 청소년 참여가 가능하다.

조사 결과 출연료 책정부터 문제 많아

회기가 시작되기 전 밴드들과 간담회를 열어 ‘일단 페스티벌을 하기로 했으니 취소 사태에 대한 진실 게임을 벌이는 대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예스 록 페스티벌의 개선 사항부터 인디 밴드 페스티벌을 독립영화제와 연계하는 방안(이는 나의 숙제이기도 했다)까지 2시간이 아쉬울 만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청원은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별 무리 없이 통과되었다.

예스 록 페스티벌은 예정대로 개최되지만(7월19~28일, 경북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 그 외 밴드들이 요구한 사항이 얼마나 구현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밴드들은 행정에 관한 ‘깜깜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들은 밴드들에게 주어지는 행사실비보상금(출연료)의 총액이 1000만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예산안에는 ‘100만원×10팀’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 출연팀은 15팀이 넘고, 각 팀이 수령한 출연료의 총액은 약 600만원이다. 문화예술회관 측은 외부 초청공연을 하지 않아서 잔액이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왜 초청공연이 없었는지, 2년 연속 600만원을 쓰면서 출연료 예산은 왜 계속 1000만원을 계상했는지, 한 팀에 100만원씩 1000만원을 주겠다고 했으면서 실상은 왜 이렇게 다른지 등등 계속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안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밴드들은 또 다른 괴로움과 환멸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들은 이제 주어진 여건 안에서 움직이는 ‘을’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원인들은 로비나 밀실 논의가 아닌 공개적인 절차와 참여 민주주의의 길을 택했습니다. 어려운 여건을 묵묵히 견뎌온 밴드들과 그것을 지지하는 시민이 여기까지 왔습니다.”(나의 청원 소개 발언 중) 로큰롤 포에버, 밴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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