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에 사는 김서영씨(가명·49)가 도청 공무원한테 처음 전화를 받은 날은 지난 4월8일이었다. 4월10일, 4월18일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진주의료원에 입원한 이모 최 아무개씨(61)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전화였다. 4월18일은 유독 집요했다. 하루 동안 열 차례 전화가 왔다. 공무원이 무심결에 내뱉은 한마디가 걸렸다. “(최씨가) 기초생활수급자시네요.” 그 말을 듣고 김씨는 병원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진주의료원에서 최씨의 한 달 병원비는 70만~120만원. 이 금액에 산소호흡기 비용은 빠져 있었다. 최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소호흡기 값은 따로 내지 않았다. 만에 하나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라도 박탈당하는 날이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4월19일 최씨는 ㅇ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시사IN 이명익3월28일 진주의료원에 입원 중인 한 환자가 경남 사천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검은 비닐에 짐을 싸둔 채 기다리고 있다.


최씨는 루게릭병 환자다. 몸무게가 20㎏을 넘지 않았다. 작은 스트레스도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김씨는 경남도청으로부터 경상대병원과 ㅇ병원을 추천받았다. 경상대병원은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루게릭병 환자가 한 명 있다는 ㅇ병원으로 옮겼다. ㅇ병원 주치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였고, 시설 역시 진주의료원에 미치지 못했다. 진주의료원에서 179일 동안 입원해 생존했던 최씨는 병원을 옮기고 나서 8일 뒤 숨졌다.

지난 2월26일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 발표 이후 퇴원한 환자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시사IN〉 취재 결과 6월11일 현재 최씨처럼 퇴원 뒤 숨진 환자는 11명이다. 지난 2월 발표 이후 진주의료원에서 사망한 환자까지 합치면 모두 24명이다(오른쪽 〈표〉 참조).

이 아무개씨(89)도 지난 4월3일 병원을 옮긴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 따르면, 폐암 말기였던 이씨는 병원을 옮기자 말을 하지 않았고, 식사를 거부했다. 기자와 만난 이씨의 차남 이정철씨(가명·64)는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의료원이 좋았다. 의료원에 그대로 계셨다면 어머니가 그래도 몇 달은 더 살지 않았겠느냐”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강성 노조가 문제면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되지 의료원을 왜 없애냐”라고 덧붙였다.

 

 


병원 옮기는 과정에서 합병증 시달려

폐암으로 입원했던 이규정씨(가명·74)와 급성호흡부전으로 입원했던 이종원씨(가명·68)도 병원을 옮긴 지 각각 17일과 9일 만에 사망했다. 이규정씨는 병원을 옮긴 후 행동제어가 잘 안 됐다.

진주의료원에서는 근육주사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옮긴 병원에서는 거친 행동을 보이며 이상행동이 심해졌다. 이종원씨도 병원을 옮기면서 의사 표현을 멈추었다. 이종원씨의 장남 이윤권씨(가명·45)는 “바뀐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간병인과 의료 행위의 수준이 진주의료원과 차이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동인〈/font〉〈/div〉진주의료원을 떠난 지 44시간 만에 숨진 왕 아무개씨의 아들 박광희씨.
ⓒ시사IN 김동인 진주의료원을 떠난 지 44시간 만에 숨진 왕 아무개씨의 아들 박광희씨.

 

경상남도 하동군에 사는 박광희씨(57)의 어머니 왕 아무개씨(80)도 4월16일 병원을 옮기고 4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2012년 9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왕씨는 경상대병원을 거쳐 지난해 10월18일부터 진주의료원에서 치료해왔다. 박씨는 “어머니가 순전히 퇴원 때문에 돌아가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태를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홍준표 경남도지사, 박권범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 윤성혜 경남도 복지보건국장을 직권남용·업무방해·의료법위반죄로 고소한 상태다. 이에 박 대행과 윤 국장은 박씨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또 경남도는 “사망자 숫자도 폐업 결정 발표 이전의 추이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적고 폐업 조치가 사망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경남도는 폐업 조치 이후 다른 병원으로 옮긴 환자들이 정상적인 진료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국의료보건노조가 폐업 발표 이후 퇴원한 환자 가운데 42명을 추적한 조사를 보면, 13명은 병원이 아닌 집에 있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경남도가 추천한 병원으로부터 입원을 거부당했다. 입원한 환자 29명 가운데 10명도 입원 거부를 경험했다. 이들 중 3명은 3~4곳에서 거부당하기도 했다. 정백근 경상대 의대 교수는 “민간 병원 처지에서는 이윤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장기 입원 환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합병증에 시달리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앓던 김 아무개씨(70)는 병원을 옮긴 후 일주일 동안 호흡곤란을 겪었다. 무산소성 뇌병증으로 입원해 있었던 박 아무개씨(77)도 병원을 옮긴 뒤 곧바로 폐렴과 스트레스성 하혈에 시달렸다. 퇴원 환자 조사를 맡았던 오선영 전국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은 잔병도 중환자들에게는 위험한 합병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료원 퇴원 환자 가운데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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