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던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강의를 하다가 1년간 우리 과에 있던 독일인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 학생들은 왜 자꾸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말하는 거지? 한국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닌데.”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보면 한국은 분명히 꽤 앞쪽에 있는 나라일 것이다. 그 독일인 선생님은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제3자가 본 객관적인 나라의 크기.

하지만 막상 주변국을 둘러보면 한국은 아무래도 약소국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주변국이라는 건 대체로 세계에서 매우 큰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이 작아 보이는 건 주변국들 때문이다. 그리고 안보 이슈를 골랐을 때 이 왜곡은 더 도드라진다.

 
그렇다면 다른 이슈일 때는 어떤 식의 왜곡이 일어날까. 지난달에는 세계 온라인게임 올스타대회가 중국에서 열렸다. 세계대회인 만큼 대회 출전 단위도 굵직굵직하게 나뉘었는데, 그 다섯 단위는 북미,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이었다. 이달에 열린 다른 인기 게임 종목의 세계대회도 출전 단위가 북미, 유럽, 한국으로 사정은 비슷하다. 이 세계에서 한국은 거의 대륙 크기다.


그러니까 문제는 공간의 왜곡이다. 나라 하나만 따로 떼놓고 보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동북아에만 갖다 놓으면 나라 자체의 규모에 비해 훨씬 작아 보이는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땅에 얽매여 있을 때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땅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슈일 경우에는 나라가 좀 더 커 보이곤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안보 이슈에 매이지 않을 방법은 없겠지만, 되도록 안보 문제의 파급력을 줄이고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콕 집어 ‘동북아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지구촌에 속한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별 상관이 없는 어느 나라로 위치가 재정의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나라가 훨씬 커 보이거나 적어도 객관적인 크기에 가까워 보일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편협해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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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나 세계화에는 이런 목표들이 있을 수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땅의 제약을 벗어나 국적에 신경을 좀 덜 쓰고 보편적인 지구인으로 살아가거나. 나라가 꼭 커 보여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단계에서 나라가 좀 더 커 보이려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고 싶은 사람의 증가율보다는 그냥 지구인이 되고 싶은 사람의 증가율이 높은 쪽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존 자체가 지상 목표인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믿는다면.

한국은 안보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강대국을 꿈꾸며 안보나 산업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건 오히려 나라가 작아 보이게 만드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편협해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이런 이상한 공간에서는 보편성과 유연성, 그리고 평화도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 우리는 평화와 인류애를 부르짖기에 가장 적합한 지정학적 위치에 갇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기자명 배명훈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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