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아들이 적도 기니 쿠데타에 낀 까닭
  • 신호철 기자
  • 호수 30
  • 승인 2008.04.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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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낯선 아프리카의 소국 적도 기니가 인터폴에 전 영국 총리 아들의 수배를 요청했다. 그 배경에는 석유 자원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어둠의 업자’의 더러운 음모가 깔려 있다.
ⓒReuters=Newsis대처 전 영국 총리의 외아들 마크 대처(위)가 적도 기니 쿠데타를 도운 혐의로 인터폴에 수배됐다.

서아프리카의 적도 기니(Equatorial Guinea)라는 낯선 나라 이름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때가 1년에 딱 한 번 있다. 미국 언론이 ‘세계의 독재자 10인’ 순위를 발표할 때다. 북한의 김정일과 버마 탄쉐 등이 1~2위를 다투는 이 독재자 순위에 적도 기니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음바소고(66)도 항상 오른다.

최근 적도 기니가 색다른 이유로 전세계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지난 3월29일 적도 기니 검찰이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아들 마크 대처(54)를 쿠데타 동조 혐의로 국제형사기구(인터폴)에 수배 조처했기 때문이다. 마크 대처는 영국의 기사 작위를 가진 인물인 데다, 마거릿 대처의 외아들이라는 점에서 화제였다.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에도 아프리카 작은 산유국의 암울한 정치사가 깔려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비앙 적도 기니 대통령이 권력을 아들에게 넘겨줄 기미를 보이자, 스페인에 망명했던 적도 기니 정치인 세베로 모토와 영국 사업가 엘리 칼릴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다.

엘리 칼릴은 1980년대 나이지리아 석유 사업으로 떼돈을 번 부호였다. 그는 2002년 엘프 석유회사 뇌물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체포되었다 풀려난 적이 있는 ‘어둠의 석유업자’로, 주로 아프리카 독재국가 권력자들과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를 연결해왔다.

엘리 칼릴은 쿠데타 자금으로 500만 달러(약 50억원)를 대는 대신 쿠데타가 성공하면 적도 기니 석유 이권을 갖기로 했다. 이 자금 대부분은 쿠데타 용병을 고용하는 데 쓰였다. 여기에 용병사업가 시몬 만(55)이 등장한다. 영국 공수특전단(SAS) 출신인 시몬 만은 1985년 퇴역한 이후 앙골라·시에라리온 등을 돌며 전쟁 용병을 공급해온 ‘어둠의 군인’이었다. 이렇게 정치가-기업가-군인이라는 ‘어둠의 3각 동맹’이 완성됐다. 시몬 만은 남아프리카에서 용병 100여 명을 모집하고, 짐바브웨에서 무기를 샀다. 쿠데타 용병은 비행기로 적도 기니 수도에 잠입해 오비앙 대통령을 납치하거나 죽일 계획이었다.

만약 성공했다면 역사상 초유의 ‘용병 쿠데타’가 될 뻔한 이 음모는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2004년 3월8일 쿠데타 용병 65명을 태운 보잉747 전세기가 무기를 싣기 위해 짐바브웨 하라레 공항에 내렸는데, 사전 정보를 입수한 짐바브웨 보안군이 용병을 모두 체포한 것이다. 3월9일 적도 기니 정부도 자국 내에 미리 와 있던 쿠데타 용병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Reuters=Newsis대처 전 영국 총리.

영국과 미국은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옵서버〉 2004년 11월28일자는 영국 정보기관이 이미 2004년 1월 적도 기니 쿠데타 모의 음모를 알고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에게까지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석유업자가 쿠데타 자금 원조

쿠데타 용병을 원조한 것이 서방 석유사업가였지만, 오비앙 대통령을 지원했던 것도 석유 메이저 회사였다. 1995년 이래 미국 석유 기업이 적도 기니에 투자한 50억 달러(약 5조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오비앙 대통령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2004년 12월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엑슨모빌·아메라다 헤스·마라톤 오일·셰브론 텍사스와 같은 메이저 석유 기업이 적도 기니 석유 개발 사업을 위해 오비앙 대통령에게 뇌물을 줘왔다고 폭로했다.

오비앙 대통령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4년 오비앙 대통령이 미국 릭스 은행에 예치했던 7억 달러(약 7000억원)가 돈세탁 혐의로 동결된 적이 있었다. 오비앙 대통령은 2006년 〈포브스〉 조사에서 재산이 6억 달러(약 6000억원)로 세계 독재자 중 8위를 차지했다.

호화 생활은 대통령의 아들도 못지않다. 2006년 오비앙 대통령의 아들이 캘리포니아에 3500만 달러(약 350억원)짜리 대저택을 샀다가 미국 부패추방운동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원유 5억 배럴이 매장된 자원 부국 적도 기니는 국민 1인당 하루 생계비가 1달러에도 못 미치는 빈국이다.

적도 기니는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선정 세계 언론검열국 4위, 세계에서 국제 부패지수 1등급(국제투명성위원회)에 꼽히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1979년 쿠데타로 삼촌을 살해하고 대통령에 오른 오비앙은 2002년 대선에서 97.1%라는 지지율로 당선된 이후 아직 물러나지 않고 있다. 야당은 허울뿐이며 고문과 불법 체포가 횡행한다.

서방이 적도 기니를 보는 잣대는 이중적이다. 2006년 중국은 적도 기니 정부 청사를 무료로 지어주면서 이 지역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오비앙 정부에 우호적으로 변했다. 2006년 4월12일 오비앙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오비앙을 ‘좋은 친구’라고 불렀다.
 

ⓒReuters=Newsis오비앙 대통령(위)은 29년째 적도 기니를 지배하며 석유를 팔아 얻은 부를 챙기고 있다.

다시 마크 대처 이야기로 돌아가자. 1995년 이래 남아프리카에서 살아온 마크 대처는 2004년 용병 쿠데타 미수 때 용병 군대에 3억원가량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4년 8월 남아공 특수경찰이 그를 체포했지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보석금 16만5000파운드(약 3억2000만원)를 내 풀려났다. 마크 대처는 헬리콥터 구입 자금을 댄 것을 시인하면서도 “앰뷸런스 헬기로 쓰려는 줄 알았다. 쿠데타는 몰랐다”라고 부인했다.

4년이 지난 뒤 갑자기 적도 기니 검찰이 마크 대처를 인터폴에 수배한 까닭은 두 달 전 짐바브웨 감옥에 수감돼 있던 시몬 만이 적도 기니 구치소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적도 기니 검찰에 따르면 시몬 만은 “마크 대처가 쿠데타 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었다”라고 불었다. 

현재 마크 대처는 스페인 지브롤터에서 살고 있다. 그는 적도 기니 정부가 고문을 통해 억지 진술을 얻어낸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인터폴 수배에도 불구하고 당장 스페인 정부가 그를 체포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다 마크 대처 ‘도련님’이 아프리카 ‘석유 쿠데타’ 사건에 휘말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영국 언론을 통해 본 그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플레이보이 스타일에 자동차 경주를 즐긴 모험광에다, 어머니를 등에 업고 무역 사업을 해오다 몇몇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라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그가 쿠데타 뒷돈을 대준 게 맞다면 그것은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앞당기려 한 목적이라기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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