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강준만은 자신의 서울대 비판 또는 학벌주의 비판이 ‘질투’라는 감정으로 해석되는 상황에 대해 분개한 적이 있다. 서울대를 가지 못한 비서울대 출신의 ‘원한감정(르상티망·ressentiment)’으로 이해되어버리는 것이다. 원한감정은 철학자 니체의 말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약자의 강자에 대한 시기심·질투를 가리킨다. 서울대 비판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온갖 종류의 사회적 비판들이 원한감정의 발로로 치환되어버리는 사회이다. 어떤 불평등에 대해 지적하면 당장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반응이 튀어나온다. 우파들은 우리 사회가 ‘잘나가는 사람 발목 잡는 사회’ ‘영웅이 나올 수 없는 사회’라고 개탄하길 좋아하는데, ‘진보’ 또는 ‘좌파’ 역시 종종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다.

진중권은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유저들을 ‘루저’라고 규정한다. 표창원이 최근 ‘일베에 대한 분석’이라고 공개한 글에서도 일베 유저들은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이고 싶지만 경쟁에서 탈락하고, 인정 못 받는 현실에 좌절하며, 이를 약자 공격으로 분풀이하는” 이들로 묘사된다. 이들이 몇몇 선동가에 의해 “사이버 정치 조폭으로 훈련, 양성, 이용”당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일베의 루저들은 루저일 뿐 아니라 남의 부추김에 금세 넘어가는 ‘백치’가 된다. 루저-백치들은 집단적으로 일탈행위를 함으로써, 즉 통제하거나 순치시키기 어려운 인간이 됨으로써 사이코패스 같은 ‘괴물’이 된다. 그리하여 배제하고 “주변화해야 하는”(진중권)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베 유저들은 자신들이 루저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일베 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학력 인증’은 자신들이 루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집단적 의사표현이었다. 자신들을 ‘루저-백치-괴물’로 만드는 시선에 맞서 ‘루저-백치-괴물’이 아니라는 통속적 증거들을 열거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자신의 반대자들과 정확히 동일한 가치관, 즉 원한감정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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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한 존재들, 타고난 ‘괴물’들은 실재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은 극소수다. 일베라는 사건은 그런 이상값(outlier)들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넷우익 세력인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를 추적한 르포라이터 야스다 고이치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서 이렇게 말한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들의 이웃들입니다’.” 일베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대부분은 ‘루저-백치-괴물’이 아니라 한국의 ‘평범한 시민’이다. 극우파·근본주의자들을 괴물화하려는 시도는 자유주의자들의 특기이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사회적 배제의 제스처가 극우파 또는 근본주의 집단의 내부 결속에 봉사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은 루저·백치·괴물이 아닌 평범한 시민

일본의 재특회, 한국의 일베는 공동체 내부의 타자를 규정하고 차별하는 ‘희생양 찾기’다. 그 배경에는 사회적 불평등의 확산과 시민교육의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일베 유저가 ‘학력 인증’을 하면서도 스스로 ‘루저’라 지칭하는 것은 얼핏 모순으로 보이지만 이런 이중성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착취와 피해’의 책임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돌리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대중을 향한 대중의 차별은 그런 ‘피해자 되기’의 제스처를 통해 작동하고 확산되는 법이다. 일베를 비난하는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가 일베와 정확히 동일한 사고방식(이를테면 ‘루저’ 운운하며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인종주의적 태도)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작금의 풍경이야말로 일베가 ‘괴물의 출현’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 증상’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기자명 박권일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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