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로 치면 방송 사고 수준이다. 방송 내내 ‘쩝쩝’ 소리가 침묵을 대신한다. 먹는 게 거의 전부인 방송. 닭튀김, 라면을 비롯해 삼겹살, 족발 냉채까지 한입 가득 음식물을 넣고 우물거리며 품평을 하면, 익히 아는 맛인데도 궁금해진다. 맛집 프로그램 리포터처럼 입에 넣자마자 찬사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는 방송, 아프리카TV의 ‘먹방’이다. 시인 김지하가 회상하는, ‘관처럼 몸이 딱 끼는 좁고 캄캄하고 막힌 방’을 뜻하는 교도소의 먹방이 아니라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너무 많이 시켰어. 칼로리가 얼마고?” 햄버거 세트 하나에 버거 하나 더, 오징어링까지 앞에 두고 투덜대는 범프리카. 부산에 사는 20대 남자로,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의 인기 BJ(Broadcasting Jockey·방송 자키)다. 얼마 전 먹방 1주년을 기념해 해운대 바닷물에 입수했다. 누적 시청자가 7300만여 명, 애청자만 약 27만명이다. 아프리카TV에는 먹방을 내세우는 BJ가 2690명에 이른다. 인기 먹방 BJ의 특징은 잘 먹는다는 것. 채팅창을 띄워놓고 시청자와 대화하는 건 여느 방송과 마찬가지다. 지금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칼로리를 계산해 알려주고, 햄버거는 얼마 이상 시켜야 배달이 가능하다는 실용 정보도 남긴다. 또 다른 BJ 왕쥬는 방송 3주년을 기념해 방에 출장뷔페를 차리기도 했다. 군복 차림으로 직접 요리를 선보이는 먹방, 게스트 초청 먹방 등 종류도 다양하다.

ⓒ유튜브 화면 캡처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에서 인기 방송 자키 ‘범프리카’가 먹방을 하고 있다.

‘남이 먹는 걸 구경하는 게 제일 추접한 거’라지만, 요즘은 먹는 구경이 인기다. 인터넷을 넘어 영화, 케이블 방송, 지상파까지 ‘먹방’이 지배하고 있다. 먹방의 아이콘으로 화제가 됐던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 하정우씨. 그는 〈황해〉 〈베를린〉 등 출연작마다 어떤 척박하고 메마른 영화적 설정 속에서도 어묵, 국밥, 라면 등을 맛있게 먹어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에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는 일곱 살 윤후가 타고난 식성을 바탕으로 인스턴트 식품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짜파구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병영 생활을 체험하는 ‘진짜 사나이’의 샘 헤밍턴 씨 역시 군대 햄버거 ‘군대리아’와 ‘짬밥’(잔반이 변한 말로 군대에서 먹는 밥을 일컫는다)을 실로 맛있게 먹어 ‘먹방계’ 연예인 대열에 합류했다.

혼자 밥 먹는 자취생들에게 인기

케이블 방송 tvN의 〈세 얼간이〉는 먹방의 원조 격인 아프리카TV의 케이블 버전이다. 누가 더 잘 먹는지 대결하고,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과 사 먹는 것 중 어느 게 빠른지 내기를 벌인다. 별 의미는 없지만 대결 자체가 흥미롭다. 〈SNL 코리아〉의 인기 코너 ‘이엉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등장하는 신동엽 역시 뭐든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며 ‘못 먹을’ 음식도 삼킨다. 지상파의 대표적인 먹방은 KBS 〈해피투게더〉의 ‘야간 매점’ 코너다. 연예인이 직접 찬밥을 활용한 주먹밥 등 누구나 뚝딱 만들 수 있는 야식을 소개하는데, 등장한 조리법마다 화제가 된다.

영화 <황해>에서 주연 배우 하정우씨가 먹는 장면.
연예 기사에 ‘먹방’이라는 용어 사용의 빈도가 늘면서 먹는 장면 자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베를린〉과 〈고령화 가족〉이 대표적이다. 〈베를린〉의 류승완 감독은 배우 하정우씨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맛있게 먹어 빵에 잼 발라 먹는 장면을 편집했다며 그 편집본을 공개했다. 〈고령화 가족〉에서 먹는 장면은 주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가족이란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걸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된장찌개를 떠먹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영상뿐 아니라 먹는 사진이나 음식 사진만 모아놓은 커뮤니티도 있다. 일반인들도 저마다 어제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고 ‘나 어제 먹방했다’라며 글을 올린다. 맛집에 들러 예쁘게 찍은 음식 사진을 올리는 정서와는 좀 다르다. 폭식을 자랑하는 분위기다. 사람 먹는 거인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은 인터넷에서 ‘먹방 패러디물’이 되었다. 먹는 것과 관련된 전반적인 행위를 ‘먹방’이란 용어로 대체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남이 먹는 걸 구경하고, 또 보여주는 걸까. 인터넷 방송의 먹방 풍경은 대체로 비슷하다. 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배달 음식을 컴퓨터 책상 앞에 두고 먹기 시작한다. 자취방 배경이 많다. 스무 살부터 자취를 한 BJ 범프리카는 끼니를 챙겨 먹고 싶어서 밥을 먹으며 방송을 시작했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던 것. 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창을 띄워놓고 대화하면서 먹다 보면 누군가와 같이 먹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한 시청자는 말한다. 1년 전부터 ‘먹방’을 즐겨 본다는 이정미씨(24)는 “내 자취방과 다르지 않다. 혼자 먹을 때 나도 컴퓨터로 텔레비전이나 만화를 보면서 먹는다. 말을 하는 것만 빼면 비슷한 풍경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먹방의 주 시청자 역시 20~30대다. 여럿이 함께 거실이나 주방 대신, 방에서 밥을 먹는 개인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에서 먹는 장면이 성행하는 건 먹는 게 어떤 콘텐츠보다 공감하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돌 스타도 먹방을 선호한다. 노래나 춤 대신 라면이나 피자 따위를 맛있게 먹는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먹방의 인기 요인으로 연예인이 ‘우악스럽게 보일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주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꼽았다. 야외를 배경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식이 등장하는 건 시청각을 넘어 미각과 촉각까지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MBC ‘아빠 어디가’ 코너에서 ‘짜파구리’를 먹는 윤후. 둘 다 먹방의 아이콘이다.
먹방의 소재가 되는 음식은 모두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메뉴다. 최지은 전 ‘텐아시아’ 기자는 “그전에도 맛집 탐방 프로그램같이 먹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대체로 미식의 영역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먹방은 일상의 끼니를 보여준다는 데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먹방은 흔한 음식이지만 폭식에 가까운 형태로 보여준다. ‘짜파구리’같이 누구나 따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쉬운 요리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케이준 스테이크와 인도풍 샐러드 요리가 대단히 현란하지만 그 맛을 짐작할 수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인1식이나 간헐적 단식을 말하는 시대,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강박의 분위기에서 잘 먹는 영상이 주는 위안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출출한 밤 시간대, 음식 사진을 자주 찾아본다는 한 30대 여성은 “비쩍 말라서 깨작깨작하는 연예인들을 봐오다 잘 먹는 방송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잘 먹는 게 예전처럼 미덕이 아닌 시대, 역행하는 폭식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먹방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인터넷 놀이가 되기도 했다. ‘허기 사회’를 자극하는 먹방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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