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태의 우익들이 출현하는 현상은 언제나 진보 담론의 관심 대상이다. 그것은 진보 담론이 언제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퇴장하는 미래에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예언을 유예시키는 새로운 적들을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곤 한다. ‘대체 이것들은 어디서 온 걸까?’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이 조류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뉴라이트와도 구별되는 네오라이트를 처음으로 담론으로 분석하려한 박권일은 네오라이트의 핵심을 반이주 노동 담론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외국인 혐오의 감정은 국정원이 좋아할 사이트인 '일베' 보다는 오히려 국정원이 싫어할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오유)'에서 넘실거린다(가령 결혼 이주여성 이자스민은 새누리당 의원이 되면서 '오유'에서 죄책감 없는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일베'에 올라오는 수사들이 과격하고 끔찍하며 그 중 어떤 것들은 민형사 소송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들이란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부터 민주당이 꾸준히 그들에 대해 대응하며 그들의 담론적 영향력을 더 크게 키웠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일베=네오라이트'라는 등식이 성립되지는 않는만큼, 감이 잡힐 듯 말 듯하는 네오라이트에 대한 분석은 '알베'에 대한 분석과 함께 하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을 두어야 할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지난 5월2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관계자들이 ‘촛불 난동 5주년 대국민 사기극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지난 5월2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관계자들이 ‘촛불 난동 5주년 대국민 사기극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우익의 세 유형을 투박하게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와 네오라이트로 나누어보자. 그리고 이것들에 대해 각각 그 기원 혹은 배경과 성향, 그리고 세대의 측면에서 비교해보자. 그러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먼저 기원으로 볼 때 뉴라이트가 특별히 올드라이트나 네오라이트와 다른 측면이 보인다. 뉴라이트는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시위의 거대한 물결과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에 대한 보수의 위기감에서 탄생했다. 안병직, 이영훈, 신지호 등 한때는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이었거나 운동권이었던 이들이 ‘진보 득세’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보수의 이념을 조직하려 했다. 흘러간 올드라이트와 흘러올지도 모르는 네오라이트가 현상이라면, 뉴라이트는 일종의 운동이었다.

한편 올드라이트라는 현상의 시대적 배경은 광복 이후 좌우 갈등, 6·25 전쟁, 전후의 좌익 숙청 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과 봉기로부터 스스로 존재를 지켜야 했던 이의 정체성, 혹은 그런 위협을 핑계로 좌익들을 학살한 국가 권력에 대한 자기동일시가 그들의 정서를 구성한다. 따라서 그들의 성향은 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일 수 있고,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인질범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일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박정희와 산업화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파의 이념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려는 뉴라이트 운동의 결과 오늘날엔 제법 자본주의의 장점을 말하거나 그전엔 관심도 없던 이승만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대한민국을 긍정’하게 되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2010년 5월 보수 단체 회원들이 ‘친북좌파 척결’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2010년 5월 보수 단체 회원들이 ‘친북좌파 척결’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호남 혐오와 이주노동자 혐오

반면 네오라이트의 경우 확실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민주화 이후 삶의 질이 향상되기는커녕 하강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정서가 주류를 이룰 것 같다. 이른바 ‘386 세대’는 1987년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소수 대학생 운동권에 불과했던 자신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자신들의 세계관에 대한 지지라고 믿는 착각을 저질렀다. 대중은 올드라이트의 정서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386 운동권의 정서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는 바뀌었고 대중은 이에 그럭저럭 적응했지만 1997년 이후 대다수 삶의 질이 하강하는 경험을 하면서 민주 세력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한 의심을 그들의 정체성과 역사관에 대한 의심으로 확장해 가는 이들이 일부 생겨났던 것 같다.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가 ‘종북’이란 말을 무시로 사용하고 ‘광주항쟁’ 등 민주화운동까지 부인하는 상황에 간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호남 혐오’의 문제는 올드라이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겠지만 ‘이주노동자 혐오’나 ‘여성 혐오’의 경우 해외 극우파들과 마찬가지로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를 그들 나름으로 수용하며 형성된 특징일 것이다. 올드라이트의 민족주의와 뉴라이트의 탈민족주의를 모두 물려받은 ‘일베’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원폭은 신의 징벌’ 발언에 열광하기도 하고,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을 폄훼하기도 한다.

아마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세 번 바꾸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 번은 그의 당선을 통해, 다른 한 번은 그의 통치를 통해, 마지막 한 번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다. 첫 번째 것이 일부 386 세대의 재정치화와 일부 386 후세대의 정치화를 이끌어냈다면, 두 번째 것은 상당수 386 후세대를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로 이끌었다. 네오라이트는 말하자면 두 번째 것의 유산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 그의 죽음이 만들어낸 ‘깨어 있는 시민’이라 스스로 칭하는 정치화된 386 후세대 그룹이 첫 번째 유산과 연합해 두 번째 유산에 적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 할 것이다.

 

기자명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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