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베충, 뭔가 특별한 소수자”
  • 장일호 기자, 김동인·전혜원 수습기자
  • 호수 298
  • 승인 2013.06.05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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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활동이 대학교 축제나 대자보 등 현실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가 젊은 층에 파고들고, 중·고등학교에도 한 반에 3~4명 있는 일베 회원들은 자신이 ‘일베충’임을 우쭐해하곤 한다.
나타나고, 인증하고, 공유하고, 사용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를 상징하며 인터넷상에서만 배회하던 ‘베츙이(일베+벌레 충(蟲))’는 인형 탈을 쓰고 각 대학 축제에 나타나 배회했다. 학생들에 의해 쫓겨나긴 했지만, 존재감을 과시했으므로 상관없다. 베츙이 캐릭터를 상업화해 휴대전화 케이스와 인형 등을 파는 사이트도 생겼다.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 주최로 교내에서 열렸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에서는 한 일베 회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덧붙이고, 5·18이 ‘폭동’임을 주장하는 소동이 있었다. 그 현장을 담은 인증샷은 ‘좌빨천국 고려대 산업화 시전’(‘산업화’는 우파의 논리로 진보 진영을 제압한다는 뜻)이라는 제목으로 일베에

일베 회원을 상징하는 ‘베츙이’ 캐릭터.
올랐다. 서울 소재 ㄱ중학교 동창생 10명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일베 링크를 공유한다. 이들은 홍어(전라도 비하), 운지(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을 비하), 접미사 ‘~노(盧:노 전 대통령 성)’를 표준어로 사용한다.

이 사례들이 특별해 보이는가? 이미 지난해 5월8일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말문이 막히면 무조건 한국전쟁 얘기를 꺼내시던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우리 세대는 반공주의를 혐오하게 됐다. 아무 때나 훈장처럼 80년대 민주화운동 얘기를 꺼내는 우리 세대를 보고 자란 애들이 민주주의를 혐오하게 될까 걱정이다.”

김 교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정치권이 일베의 폐쇄까지 들먹이며 호들갑을 떨지만, 한국 사회는 너무 늦게 일베를 발견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위에 든 사례처럼 일베 사이트 자체가 아니라 일베 밖, 혹은 일베 너머에 있다. 일베 ‘바깥에서’ 사람들은 일베를 일상화하고, 놀이화하기 시작했다. 내면화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지난 5월14일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멤버를) 민주화시키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한 후 홍역을 치러야 했다. “특정 게시판(일베)에서 통용되는 의미로 쓴 것이 아니며, 몰랐다”라고 소속사와 전씨는 사과했지만 후폭풍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는 징후라 부를 만하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의미다. 전씨의 의도와 상관없이 ‘민주화’라는 단어는 특정 게시판의 언어로 오염됐고, 이는 민주화라는 단어의 처지를 시사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독재 세력과 똑같아”

서울 소재 ㄴ고등학교 1학년생인 김민우군(가명)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학생 15명 중 10명과 요즘도 종종 카카오톡 단체 채팅 창을 통해 일베를 논한다. 김군은 직접 일베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나머지 친구들을 통해 일베를 경험한다고 했다. 친구들은 2~3명씩 다른 고등학교로 흩어졌지만, 각 학교에서 ‘일베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김군은 “한 반에 30명 정도 된다고 하면 이 중 2~3명은 일베를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일베 용어는 일상어이고 표준어이다. 그래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우리도 상대에 따른 ‘단어 트러블 정도’를 안다. 이를테면 여성 비하 용어(김치년 등)는 여학생들 앞에서 쓰지 않는다.” 그런 김군도 중학생인 여동생이 게임하면서 “아, 운지했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섬뜩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 창을 통해 일베를 논하고 있다.
김군과 친구들이 꼽는 일베의 장점은 재미다.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다 보니, 어떤 글이 올라오면 이제는 반응과 댓글이 예상된다. 통계·도표·수치·기사 등 자료 제시는 필수다. 나름 합리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베 사람들은 ‘허위 선동이 아니다. 팩트(Fact)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꼭 팩트는 영어로 쓰더라(웃음).”

한 예로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든 ‘구럼비 영상’에 대해서도 “너무 감정에 호소하는 이런 영상을 일베에서는 ‘감성팔이’라고 한다. 이런 거에 대응하는 식이다. ‘좌파는 감성에 호소하지만, 우리는 이성적이다’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에 ‘장난’ 친 걸 비난하는 여론도 의아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그린 쥐 벽서나 전두환 전 대통령 풍자한 그림은 표현의 자유라면서?”

나름의 논리로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다. 김군 역시 “일베 하는 친구들은 일베에서 배운 역사로 교과서를 반박한다”라고 말한다. 경기도 소재 ㄷ고등학교 4년차 교사인 최태민씨(가명·30)는 김군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증언한다. “수업 시간에 흐름을 끊기 위해 ‘쟤 일베 해요!’라는 식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한 적 있다. 일베를 하는 친구들이 보통 한 반에 3~4명 있는데, 자신이 ‘일베충’임을 우쭐해하곤 한다.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들이다. ‘너희가 모르는 걸 나는 안다’라는 식이랄까.”

강원도 소재 ㄹ중학교 기간제 교사인 정민희씨(가명·29)는 학생들의 잦은 언급에 일부러 일베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집단적 정서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울리기 위해 유행어를 쓰는 느낌이랄까. 멋으로 ‘진보연’하고 다니던 내 대학 시절처럼 요즘 아이들은 멋으로 ‘극우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문화학자 엄기호씨(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이러한 흐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학교 문화가 이쯤 되면 민주화 세대의 파산까지 진단할 수 있다. 우파냐, 좌파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은 우파가 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적’이 좌파이고 민주주의인 셈이다.”

‘제노포비아’ 담론 폭발할 가능성도

각 대학의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오래전부터 이른바 ‘일베류’와의 전투가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이들과 싸우다 지쳐 ‘게토화’되어 방치된 게시판도 흔하다. 진보 정당 당원인 대학생 박정연씨(가명·21)는 “학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키워(키보드 워리어:악성 댓글을 상습적으로 만드는 누리꾼)를 상대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기껏 공들여서 반박 글을 겨우 하나 써놓으면 논리가 아닌 혐오를 드러낸 글이 다섯 개씩 막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5·18 사진전 훼손 사건을 겪은 고려대 게시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베 회원이 벌인 일에 대해서 성토하는 글만큼이나 이들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담은 글 역시 심심찮게 올라와 논쟁을 양산한다. 예를 들어 ‘전 요즘 민주화가 희화된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좌빨 좀비’라 불리던 이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민주주의를 비꼬는 표현으로 민주화라는 말을 쓴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댓글로 논쟁이 오가는 와중에 눈에 띄는 반응들이 있다. “진보 진영은 무슨 일만 있으면 민주화를 들먹인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또 무조건 일베충이라고 하겠지?” “민주화를 성역화하고, 다른 의견은 무조건 막는다. 이게 군부·독재 세력과 뭐가 다른가. 비판하면서 닮는다.”

이들에게 진보(진영)는 심하게 이야기하면 ‘일베충’과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체념조의 댓글도 보였다. “민주주의가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나.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다.”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학내에서도 대자보를 두고 공방이 오간다. 서강대 내 4개 단체(‘밥은 먹고 일하자 연대’ ‘서강/신촌 알바연대(준)’ ‘서강 퀴어 모임&서강 퀴어 자치연대 춤추는 Q’ ‘생활도서관 단비’)가 요 근래 학내에 붙인 청소노동자, 성소수자, 알바노동자와 관련된 대자보는 몇 차례나 훼손당했다. 붙이고, 훼손하고, 다시 붙이기를 지루하게 반복한다.

그 사이 대자보 사건을 두고 학내 게시판에서도 싸움이 붙었다. 한 학생이 댓글에서 “대자보를 보면 × 싸놓은 느낌이다”라며 찢는 것도 (대자보 때문에) 기분 나쁜 사람이 소통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반박 댓글이 달리자 이 학생은 “민주주의에 대한 내 무지를 왜 파시즘이냐고 묻냐. 내 앞길 가기도 힘들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생활도서관 단비 회원인 김주온씨(22)는 자보를 훼손하는 익명의 학생들이 쓰는 단어에 주목했다. “지난해 우리가 개최한 한 간담회에 자신을 보수라고 칭하는 학생이 왔다. 그는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면서 이를 커밍아웃이라 표현하고, 자신을 소수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의 언어까지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베 게시물을 일정 기간 분석했던 소셜 미디어 분석업체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일베의 담론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여성, 야권 정치인(그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전라도라는 특정 지역), 그리고 아직까지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조선족·다문화 가정 같은 사회적 약자다.”

여성과 지역에 대한 ‘내부 식민지’는 이미 일베 밖으로 넘어와 진행 중이다. 이 이사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역시 일본처럼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담론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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