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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우리 사회는 퇴로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 선진화된 사회의 도전 정신은 패자를 일으켜 세우는 안전망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의 거시 전략은 진로보다 퇴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배명훈 (소설가) 2013년 05월 30일 목요일 제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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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상담만큼이나 중요한 게 퇴로 상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건 아무도 안 해준다.

전략에서 퇴로는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 “보급로가 끊기면 진다”라고 말할 때의 그 길은 보급로인 동시에 퇴로인 연락선(lines of com– munication)이라는 길이다. 그런 격언이 만들어졌을 법한 기간 내내 식량은 현지 조달이 원칙이었을 테니, 끊으면 이기게 되는 선이란 건 사실은 보급로가 아니라 퇴로였던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퇴로가 끊기면 안 되는 이유는, 원치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사태는 퇴로가 끊긴 쪽에도 절망적인 일이겠지만 퇴로를 끊은 쪽에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한쪽을 열어주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것이다.

손자는 아군을 사지에 넣고 스스로 퇴로를 다 끊어서 농민 병사들이 전사로 거듭나는 효과를 활용하라고 충고하고 상대는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하라고 충고하는데, 이때 손자가 노린 건 그 절망적인 순간에 튀어나오는 ‘죽을 힘’이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나 조미니 같은 근대 전략가들은 그 반대를 주문한다. 아군의 퇴로를 절대 끊지 말고 적의 퇴로는 반드시 끊으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손자는 훈련 안 된 농민들로 구성된 군대를 가정하고 있어서 그들을 전사로 만들 방법이 많지 않았던 반면, 2000년 뒤 사람들은 스스로를 바닥으로 몰아넣지 않고도 훈련이나 제도로 사기를 높이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후자에 동의한다. 배수진에서 나오는 ‘죽을 힘’은 딱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 하지만 퇴로에 든든한 요새가 자리 잡고 있는 부대는 작은 전투에서 패해도 계속 다시 일어난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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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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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퇴로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하지 않으면 뭔가 대충대충 하는 걸로 보는 경우도 많다. 일부러 도전자들의 퇴로를 끊기도 한다.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라는 협박은, <손자병법>식 사지(死地) 전략과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기를 일깨우는 가장 손쉽고 저렴한 방법 말이다.

교육과 제도 정비된 사회에서 함부로 배수진 펴서는 곤란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 그 전략은 꽤 유용했을지도 모른다. 굶주린 농민을 전사로 탈바꿈시켰을 테니까. 그러나 사지에 처하지 않고도 교육과 제도로 전문성을 추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회라면 함부로 배수진을 펴서는 안 된다. 요즘 종종 눈에 띄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이미 몇 년 전에 이라크에서 승전을 선언하고도 지금까지 철수를 못하는 미군의 상황에서 보듯이, 퇴로 없이 함부로 뛰어든 승부는, 승자마저도 진퇴양난의 난국에 빠뜨릴 수 있다. 그만큼 뒷감당이 어려운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잃을 게 너무 많은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선진화된 사회의 도전 정신은 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안전망에서 비롯될 때 더욱 지속적이고 활발해질 수 있다. 실패하면 등 뒤에 바짝 죽음이 따라붙는 삶보다는 퇴로가 있는 삶이 더 건강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는 좀처럼 퇴로 상담을 안 해주는 사회다. 아니, 사실은 상담해줄 퇴로 자체가 별로 없는 사회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누군가 우리 사회 전체의 거시 전략을 다시 손보려 한다면 그가 가장 먼저 정비해야 할 것은 진로가 아닌 퇴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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