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니 서울시내 한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독거노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마포구는 아니었지만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영구 임대 아파트의 실상은 어느 자치구든 똑같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우리 동네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3개월간 주민 6명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이 한 일간지에 보도됐다. 언론 보도 직후 구청에서 영구 임대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한 2966명 중 47%가 장애 및 만성질환을 겪고 있으며, 우울 및 불안감을 가진 대상은 9.8%로 나타났다. 구청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 교육을 벌였고, 서울시에서도 연일 관계기관회의를 소집하며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구청과 서울시의 대책을 기다리기엔 하루하루가 절박했다. 또 그 사이 3명이 아파트 복도에서 몸을 던졌다(서울시에서 임대주택 종합대책이 발표된 건 지난 4월이다).

ⓒ오진아서울 마포구 한 영구 임대 아파트의 ‘불만 끄는 주민 모임’. 주민과 활동가들이 각종 불만을 함께 꺼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사와 함께 가정방문을 가기도 하고, 주민 사정에 훤한 통장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추석 때는 딱히 갈 곳 없는 주민들에게 말벗이라도 되자 싶어 연휴도 반납하고 나온 복지관 사람들과 ‘길거리 수다방’을 차려놓고 주민을 만났다. 주민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것은 대물림되는 경제적 빈곤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배제와 공동체 상실의 문제였다. 먼저 경제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자료를 찾다 보니 각 자치구에서 영구 임대 아파트의 공동 전기료와 공동 수도료를 지원하고 있고, 지역의료보험 가입자 중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생계형 체납자에게 보험료를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구정 질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해 올해 1월부터 마포구에서도 지원이 시작됐다.

빈 상가가 생기면 공동 작업장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개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이웃 간의 문도 닫게 만든다. 지난 10년간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한 분은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다며 내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노동’이 사라진 그분의 삶을 ‘알코올’과 ‘무기력’이 채우고 있었다.

온종일 집에 있어도 전화 한 통 오지 않고, 찾는 이웃도 없이 혼자 사는 가구만도 430가구다. 이분들이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영구 임대 아파트 단지에는 SH공사가 관리하는 상가 건물이 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빈 상가가 생기면 그곳에 주민들의 공동 작업장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그곳을 지역의 문화 활동가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줘 마을 공방을 만들어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망가진 의자를 고치고, 작은 소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건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영구 임대 아파트 안에 있는 복지관에서 재미난 이름의 모임이 열렸다. 일명 ‘불만 끄는 주민모임’.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갖게 되는 불안·불만·불편·불통 등 이 모든 ‘불’을 소방관이 되어 함께 꺼보자는 취지로 주민들과 청년들, 동네 구의원, 사회복지사, 마을활동가가 만났다. 먼저 ‘불씨’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 문제에서부터 낮은 소득, 알코올 의존, 자포자기, 관심 부족에 이르기까지 주민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여러 원인이 쏟아져 나왔다. “늦둥이를 낳아서 키우는데 유모차 태워서 데리고 나가면 이웃들이 다 봐줘요. 우리 애를 동네 사람들이 키운다니까. 난 이런 이웃들이 있어서 우리 아파트가 좋아요.” “아파트에 마을 청소를 하는 봉사단이 두 개 있어요. 벌써 10년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서 청소를 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거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그 불씨를 꺼줄 희망의 물줄기는 주민들 안에서 이미 샘솟고 있었다.

기자명 오진아 (서울 마포구의원·진보정의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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