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7.7%로 둔화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2013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제기돼오던 경기 낙관론이 다소 주춤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더불어 정부는 4월16일 17조3000억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국회 의결 없이 정부가 자체 변경할 수 있는 기금사업 확대 2조원을 포함하면 총 19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번 추경의 내용을 크게 살펴보면, 당초 예상치보다 12조원가량 줄어드는 세입을 보전하는 것과 당초 342조원이던 총지출을 349조원으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뉴시스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건설 현장. 부동산 거품도 저성장 구조의 원인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정부는 2013년에 0.3% 포인트, 2014년에 0.4% 포인트 정도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부족한 재원의 대부분은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따라서 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당초의 0.3%에서 1.8%로 높아지게 되며, 정부 채무 규모도 464조6000억원에서 480조5000억원으로 GDP 대비 34.3%에서 36.2%로 높아진다.

이번 추경으로 상당 규모의 정부 지출을 확대했으니 많든 적든 경제성장률은 반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빚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으므로 재정 수지가 악화되고 정부 채무가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따라서 이번 추경과 같은 경기부양책은 경기 부양 효과가 미미하거나 일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부터 계속 하락해오고 있다. 김광수연구소가 2010년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고, 2010년대 후반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락할 위험까지 높아지고 있다. 2010년대 후반이라고 해봐야 앞으로 4~5년 뒤다. 박근혜 정부의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적인 면에서 실패한 정부로 끝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 현상을 일시적이거나 특수 요인에 기인하는 단발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무언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장기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명박 정부는 경기 부양과 수출 증대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환율과 대규모 토건사업 및 부동산 부양책, 재정 확대 및 조기 집행 등을 추진해왔다. 그런데도 실질성장률은 계속 둔화되었다(아래 그래프 참조).

각종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실질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고 있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추경은 비록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다 하더라도 일시적이고 단락적인 것에 불과해 저성장 기조를 바꿀 수는 없다.

부동산 대책도 조삼모사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는 원인은 총체적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2010년부터 빠르게 위축되어 왔다. 기업의 설비투자 추이를 보면 국내 투자보다는 오히려 대외 직접투자가 확대되고 있다(그래프 참조). 내국인의 대외 직접투자는 2006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해 2012년에는 236억 달러를 넘어섰다. 26조원가량이 대외 직접투자로 나간 것이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내국인의 대외 직접투자 누적액은 무려 1365억 달러에 이른다. 내국인 대외 직접투자의 대부분은 대기업들의 해외 현지 투자 확대가 차지한다. 2005년 이후 국내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구조가 가속되었다. 이에 비해 외국인의 대(對)한국 직접투자는 2005년 이후 감소하다가 정체가 지속되고 있다. 2011년과 2012년에 다소 반등했지만 50억 달러에 불과하다.

저성장 고착의 또 다른 원인은 부동산 투기 거품으로 인한 자원 배분의 왜곡과 거품 붕괴를 들 수 있다. 2001년부터 본격화한 부동산 투기 거품은 한정된 자원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빚까지 동원해가면서 발생했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규 사업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7년부터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그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또 투자한 부동산 자산이 부실화되면서 저축은행 부실과 가계부채 부실이 계속 늘었으며 건설 경기도 위축되고 있다.

대규모 추경 편성 발표에 앞서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해 취득세 및 양도세의 한시적 감면을 주 내용으로 하는 4·1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건설투자 활성화 방안도 담겼는데, 공공 부문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민간 건설업체의 분양을 촉진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경제 전체로 보면 건설투자 활성화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조삼모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주택 공급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한 공공 부문의 보금자리주택을 줄이고 그만큼을 민간 건설업체가 공급한다고 한들 한국 경제 전체의 실질 GDP 성장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4·1 부동산대책은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기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거품 붕괴를 가속화하는 위험만 높여놓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성장 고착의 또 다른 요인으로 2011년부터 정체가 지속되는 수출을 들 수 있다. 아시아·유럽·중남미·북미 등 경제권역별 수출이 총체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그동안 수출 증가를 주도해온 대(對)중국 수출이 2011년부터 급제동이 걸리면서 정체를 보인다. 이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의 수출 상품이 경쟁 상대인 중국 기업과 타이완 기업 등에 밀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선·철강·석유화학·기계류 등을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이 막힌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 말은 심각한 자원 배분의 왜곡과 시장의 분배 구조 왜곡 그리고 혁신 및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적 요인을 추경과 같은 일시적이고 단락적인 대책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차라리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추경 편성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국민행복’ 공약인 0~5세 무상보육, 고등학교 의무교육 및 대학 반값등록금, 60세 이상 기초연금 조기 도입 등을 실시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 이런 복지 강화 대책들이 가계의 실질소득을 항구적으로 개선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가계의 실질소득이 개선되면 내수를 다소나마 활성화할 수 있다.

기자명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