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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사랑하라, 동성애자는 빼고

차별금지법이 기독교계의 저항에 부딪혀 좌초 위기에 빠졌다. 한국 교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보수 교인들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건 국민 대다수에 대한 역차별이다”라고 주장한다.

허은선 기자 alles@sisain.co.kr 2013년 05월 09일 목요일 제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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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6일, 김 아무개씨(26)의 전화가 울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전도사가 김씨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 두 개를 보내왔다. ‘동성애 합법화 국회 입법예고 중-반대 의견 실어주세요’ ‘대한민국을 흑암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읍시다. 마음을 같이할 분들에게 전달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받은 메시지에서 ‘동성애 합법화’라는 표현으로 묘사된 법안은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김재연 의원은 지난해 11월,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지난 2월12일과 2월20일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성적 지향뿐 아니라 혼인 상태·전과·언어·성별·정치 성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막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들이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2012년 6월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게이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2012년 6월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게이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진짜 속셈은 법무부 향한 선제공격”


개신교 보수 단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항목은 ‘성적 지향’이다. 법안을 반대하는 대표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홍재철 회장은 4월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이 왜 문제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거기에 ‘동성애’가 끼어들어 갔다. 우리도 학력·전과 등 다른 차별 금지는 적극 지지한다”라고 답했다. 이 인터뷰에서 홍재철 회장은 “이미 1000만명 서명운동도 선포했다. 4월 중순부터는 국회의원들의 전화기가 불이 날 것이다”라는 발언도 했다(4월16일 홍 회장과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한기총 홍보팀은 그가 해외출장 중이라고 밝혔다).

홍 회장의 ‘예고’처럼 실제로 국회의원들의 전화기에 불이 났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뿐 아니라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까지 융단폭격을 당했다. 민주당 최원식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지난 4월17일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발의한 의원들뿐 아니라 새누리당 법사위원, 법사위 행정실까지 ‘종북 게이’ 소리를 듣고 있다”라고 국회 분위기를 전했다. 해외에서 전화를 걸어 ‘목사님이 전화하래서 했는데 여기다가 전화하는 거 맞냐’고 묻는 개신교 신자도 있었다.

손낙구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을 공격해서 법무부의 운신 폭을 좁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라면서 이들의 진짜 속셈은 ‘법무부를 겨냥한 선제공격’이라고 분석했다. 국회의원들의 발의와는 별도로 법무부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교회·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4월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법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보수 교회·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4월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법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성적 지향 항목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개신교도이다. 이들의 논리는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 20장13절)”와 같은 성경 구절을 기초로 한다.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동성애 창궐?

‘차별금지법 반대 국민연대’에서 활동하는 장샤론씨는 “우리 연대의 취지는 동성애자를 차별하자는 게 아니라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자 아닌가. 이 사람들의 성적 지향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은 국민 대다수 이성애(자)에 대한 역차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장씨는 “미국 학생들이 동성애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실상을 너무 모른다”라며 ‘차별금지법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www.face book.com/sign100m)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알려줬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인기가 있는 게시물 중 하나는 미국에서 제작된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동성애자들(Homosexuals Brainwa-shing Children)’이었다. 동영상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제 어머니날을 누구와 기념했는가”라고 묻는다. 학생들은 조부모·새부모·이복언니 등 다양한 대답을 내놓는다. 교사는 “다양한 구성원들과 기념했군요”라고 학생들의 답을 정리한 뒤 레즈비언 어머니 둘을 둔 에밀리를 지목해 어머니날 기념 에세이를 낭독하게 한다.

‘다가오는 한국의 동성애 교육 현실’이라는 동영상도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동성결혼금지 법률 통과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텍트 매리지’(www.protectmar riage.com)라는 단체에서 제작한 이 동영상에는 2004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매사추세츠 주의 한 부부가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동영상 속 부부는 “아들이 유치원에서 <우리 가족 중에 누가 있을까>라는 책을 갖고 왔는데, 아이의 아빠 클리퍼드가 파트너 핸드릭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들의 의도가 아이들로 하여금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를 표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방문자들은 ‘어려서부터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행위로 인식시켜서는 안 된다’ ‘한국도 저렇게 될까 봐 걱정이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나아가 ‘매사추세츠에서는 어린이 성교육 시간에 항문 성교까지 가르친다’는 잘못된 정보까지 공유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개신교도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전도사에게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 김 아무개씨는 “이웃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44)는 이번 사태가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빚어낸 폐해’라고 봤다.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가 왜 미세하냐는 질문에 “한국 기독교 역사 흐름상 90% 이상의 교회가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어서 진보적 기독교인이 묻히는 한계가 발생한다”라고 답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4월10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동성애자들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축하하며 웃고 있다.  
ⓒAP Photo
4월10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동성애자들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축하하며 웃고 있다.

임보라 목사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교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온 천사에게 남자들이 성관계를 요구해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켰다’라고 관련 구절을 해석한다. 하지만 임 목사는 “이것은 동성애라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라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항문 성교를 가르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임 목사는 “에이즈 예방 교육에서 항문 성교가 언급이 될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4월18일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결국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두 의원은 철회 요지서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 대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교단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내용으로 가다듬겠다”라고 말했다.

전략상 후퇴인가, 비겁한 포기인가


두 의원이 재발의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차별금지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논쟁의 구도가 ‘민주당 대 보수 기독교’로 흘러간 데 부담을 느낀 의원들이 결국 백기를 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송희일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leesong heeil)에 ‘의원들이 차별금지법 발의했다가 지역구 목사들이 무서워서 슬그머니 뒤로 철회하는 민주당이라니. 그냥 기독민주당이라고 개명을 하든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트윗을 남겼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곽이경 운영위원장(34)도 “의원들 모두 성적 지향에 대해서 타협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더라. 하지만 차별 금지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는 문제다. 원안 훼손 없이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민주당의 무원칙적인 처사를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발의 철회로 ‘1승’을 거둔 차별금지법 반대 국민연대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밀려드는 권고를 방어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예 한국 정부가 나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할까 봐 염려한다. 차별금지법 반대 국민연대에서 활동하는 김미영씨(북한인권단체 세이지코리아 대표)는 차별금지법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 페이스북 페이지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인권 관련 전문가들이 동성애 문제가 세계적 인권 어젠다가 되는 데 동의하고 있다’면서 ‘유엔과 지역 인권기구들의 공세를 어떻게 차단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세계를 지킬지 한국 교회가 다 함께 기도하고 연구할 때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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