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10년 만에 앨범을 낸다는 ‘첩보’를 접한 건 몇 달 전이었다. 외국 스튜디오에서 녹음한다는 정도 외에 구체적인 정보를 듣지는 못했다. 슬며시 예상해봤다.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겠느냐고. 이미, 통념으로서의 대중음악계 바깥에 군림하는 그이니만큼 오페라, 클래식 등 ‘스케일’로 승부하는 음악을 들고 오지 않겠냐고. 계절이 바뀌었다.

4월16일, 신곡 ‘바운스’가 공개됐다. 지난겨울의 예상이 무참하게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조용필이 모던 록을? 반전을 위한 반전으로 그치지 않았다. 편곡과 사운드 모두, 근래 들어본 어떤 한국 모던 록보다 탁월했다. 리듬은 넘실거리고 멜로디는 선연했다. 이 노래를 이끄는 조용필의 목소리는 관록이나 거장 같은 영예로운, 하지만 묵직한 단어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이토록 젊은 감성, 즉 동시대성을 그는 보여준 적이 없다. ‘단발머리’ 시절마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 동시대성이야말로 ‘가왕의 귀환’을 꿰뚫는 첫 번째 키워드다.

ⓒ뉴시스10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 조용필(가운데)이 4월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쇼케이스를 마치며 함께 공연한 후배들과 인사하고 있다.
4월2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쇼케이스는 말하자면,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과 다름없었다.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위해 후배들이 트리뷰트성 공연을 펼친 후, 주인공이 등장해 자신의 명곡을 연주하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구성이 그대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무대에 선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때 조용필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신승훈이라든가, 게스트 없기로 유명한 조용필의 공연에 몇 번이나 출연했던 이은미라든가… 짐작건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든 가왕의 호출에 응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섰던 이들 중 대중에게 널리 통용될 이름은 자우림·박정현 정도였다. 〈나는 가수다 2〉로 갓 스타덤에 오른 국카스텐, 일렉트로니카 신에서는 이미 스타지만 대중적 지명도는 아직 미약한 이디오테이프, 그리고 신인 보컬그룹 팬텀이 무대에 올랐다. 언론이 온통 케이팝의 가능성을 찬미하는 시대에 아이돌은 한 팀도 없었다. 자신의 피는 보컬리스트와 록, 그리고 첨단의 음악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선언함으로써, 동시대와 호흡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의지는 19집 〈헬로〉를 고스란히 관통한다. 앨범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모던 록, 기타 팝, 일렉트로니카 등 지금 이 시대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있다. 앨범에 담긴 유일한 자작곡 ‘어느 날 귀로에서’를 비롯한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음악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절대적인 지분은 전자의 몫이다. 미리 공개된 ‘바운스’, 뒤를 잇는 ‘헬로’는 동시대 리듬을 전면에 내세워 비로소 조용필의 음악 세계에 그루브를 첨가한다. 파워 팝의 리듬과 리프에 송가적 후렴구를 배치한 ‘충전이 필요해’, 댄서블한 록 넘버 ‘서툰 바람’ 역시 ‘인디’로 분류되는 밴드들의 음악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시도들이다. 가장 모던한 멜로디와 사운드를 들려주는 ‘널 만나며’는 이 동시대성의 정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재해석된 음악

이는 외국 작곡가들, 혹은 젊은 프로듀서들과 작업한다고 해서 체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근 대중음악계에는 후배와 선배의 협업이 종종 시도된다.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공동으로 앨범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최근에 있었던 최백호와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콜라보레이션 정도가 박수를 보낼 만했다.

이 의미 있는 시도들이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다. 선배, 즉 지난 세대의 뮤지션들이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 있어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혁신이 필요한 순간에 옛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조용필은 그렇지 않다. 박용찬, 박병찬 같은 젊은 뮤지션과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지만 그는 앞서 말한 트랙들에서 기꺼이 새로움에 융화되었다. 스탠더드 팝 ‘걷고 싶다’, 극적인 구성이 인상적인 어덜트 컨템퍼러리 ‘어느 날 귀로에서’가 이 앨범에서 조용필의 씨줄을 담당한다면, 다른 노래들은 데뷔 45년을 맞는 가왕에게 아침의 거미처럼 풍부한 날줄을 공급한다. 1980년대부터 지금껏 단 한 번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과 확장을 추구해온 조용필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동시대성은 음반이라는 결과에만 머물지 않는다. 반응 또한 그렇다. 10년 전 〈오버 더 레인보우〉를 발표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언론은 그때도 가왕의 귀환을 외쳤지만 그뿐이었다. 〈헬로〉 수록곡 10곡 중 9곡이 발매와 동시에 차트 10위에 올라가는 일이, 그때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그때의 음악이 대중성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가왕의 존재감에 비하면 사실상 미약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최근 몇 년간 조용필의 음악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노래는 계속 재해석됐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서 신인 가수들은 조용필의 명곡을 불렀다. 박정현이 부른 ‘이제 그랬으면 좋겠네’가 대표적인 경우다. 재해석된 명곡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조용필의 음악을 새로 접하게 됐다. 리메이크 곡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원곡을 찾아 들으며 그를 재발견해왔다. 지난 10년간 온라인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게 보편화되면서 축적된 문화다. 그 결과 ‘바운스’는 4050이 주된 수요자가 될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여느 히트곡과 다를 바 없이 2030 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차트를 ‘올킬’ 해버렸다. 안정된 옛 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에게 인정받으려는 조용필의 음악적 선택이 함께 용해됐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1950년생인 조용필은 30대였던 1980년대에도 이미 기록의 사나이였다. 64세인 지금, 그는 기록의 나날을 이어가는 고독한 러너다. 연배를 거론해가며 이 가왕의 성공적 컴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불경이다. 음악과 함께한 조용필의 45년은 언제나 도전과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멈춤은 있었으되 실패는 없었던. 〈헬로〉는 험준고령에 새롭게 솟아난 또 하나의 큰 봉우리일 뿐이다. 단, 누구도 쌓아 올리지 못했을 뿐인.

기자명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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